매포서지맥
<무암사~성봉~작성산갈림길~동산~갑오고개>
○ 2021.12.11(토)
○ 지산님과 함께
○ 8km?/4시간 50분
0650 청량리역
0820 제천역
0835~0905 952번 버스/성내리마을 버스정거장 하차
1000~1025 무암사
1040 남근바위
1143 이정표(우측 성내리)/좌측 동산/국가지점번호 금수산-01
1205 상봉/이정표/돌탑
1238 중봉(892)/이정표(성봉 0.92km/동산 0.8km)/돌탑
1243 이정표(중봉 0.2km/무암사 1.3km/동산 0.6km)
1247 매포서지맥 시작점/작성산갈림길/이정표(새목재 0.4km/중봉 0.45km/동산 0.4km)/삼면봉
1255 동산(896)/정상석/삼각점(309복구 77.6건설부)/이정표(새목재 0.8km/상학현 3.0km)
1420~1440??? 점심
1450 갑오고개/포장도로
1450~1535 치유의숲
1550~1705 상학현마을 버스정거장
산행기>>>>>>>>>>>>>>>>>>>>>>>>>>>>>>>>>>>>>>>>>>>>>>>>>>>>>>>>>>>>>>>>>>>>>>>>
교통편이 편한 산을 찾다보니 이번에도 제천 쪽의 산들이 눈에 들어온다.
금수산,,,그러다 그 옆 작성산,,,매포서지맥의 산이다.
교통도 알아보니 제천역 앞 버스정거장에서 900번대 버스가 상당히 많은데
작성산 들머리가 되는 무암사로 들어가는 성내리 버스정거장을 거쳐서 간다.
일단 가는 교통편만 확인되면 올때는 상황맞춤하면 되니 결정하기가 쉬워진다.
작성산은 충북 단양군과 제천시의 경계의 산이고
원래 명칭은 까치산성이었다가 일제시대에 한자화하면서 작성산이 되었다고 한다.
작성산-금산-금수산을 가는 것으로 하고 일단 가 보기로 한다.
신산경표에서는 금수지맥이라 하고 산자분수령에 따른 대한산경표에서는 매포서지맥이라고 한다.
매포천을 남한강으로 이끌어 주는 산줄기인데 수헌님 산행기에서 가져 온 지도를 보면
신산경표에서는 영월지맥,백운지맥,갑산지맥 등이라는 불리지만
대한 산경표에서는 각각 섬강지맥,제천지맥,매포서지맥이라고 한다.
신산경표는 지맥 산줄기에서 가장 높은 산의 명칭에서 지맥의 명칭을 부여하고
대한 산경표에서는 산경표의 산자분수령에 따른 강의 명칭에 부여한다.
[가는길]
일단 작성산-동산-금수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목표로
지산님과 청량리역에서 만나 제천역에 도착,,,그 앞 정거장에서
900번 버스를 기다려 제일 먼저 도착한 952번 버스를 타고
무암사 입구인 성내리 버스정거장에 도착한다.
도착해서 무암사까지 약 2.7km,,,걸어 들어간다.
히치를 시도하려다 무암사가는 길이 운치도 있고 한적한 오솔길이라서 그냥 슬슬 걸어 올라간다.
생각보다는 무암사 방향으로 들어가는 차량들이 많다.
무암사에 도착해서 무암사 경내구경을 한다.
무암사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나 조선 초기 이전부터 있었으며, 지붕 위의 망와(望瓦)를 통하여 1740년(영조 16)에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절의 서남쪽 1㎞ 지점에는 늙은 중을 뜻하는 노장암(老丈巖)이 있는데, 풍수설에 따르면 절 입구에 중모양의 바위가 있으면 그 절의 사맥(寺脈)이 끊기지 않을 뿐 아니라 식량이 넉넉하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이 바위는 안개가 끼었을 때만 나타났다고 하여 이 절의 이름을 바위와 안개에 관련시켜 무암사라 하였다고 전한다.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칠성각·산신각·요사채·객실·수호실 등이 있으며, 극락전 안에는 높이 1m의 목조아미타불좌상이 목조연화대(木造蓮花臺) 위에 봉안되어 있다. 이 밖에도 극락전에는 1930년에 금어(金魚)인 삼천(三千)이 그린 후불탱화(後佛幀畫)와 신중탱화(神衆幀畫)가 있다. 문화재로는 부도(浮屠) 12기, 불기류(佛器類), 촉대와 위패 등이 있다.4기의 부도 중 수월당(水月堂) 부도는 1959년에 발견된 조선시대의 것이며, 우부도(牛浮屠)는 이 절의 창건 당시 재목과 기와 등을 운반하였던 소가 죽은 뒤 화장하였더니 오색 영롱한 사리가 나와서 조성하였다는 190㎝의 사리탑으로 그 주변을 소부도골이라 부른다.
[네이버 지식백과] 무암사 [霧巖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무암사를 구경하고 밑으로 내려와 계곡 쪽으로 가는 길에서 잠시 머믓거린다.
지도를 보니 계곡따라 올라가는 길인데???
이천에서 오셨다는 60대 후반 3분 중 한 분이 계곡길로 가다가 좌측으로 작성산 가는 길이 있다고 한다.
그 분은 40년의 산행경험이 있는데 이 곳을 10년만에 찾았다고 하신다.
일단 계곡 쪽으로 간다.
잠시 들어가니 우측으로 이정표가 나오는데 지산님의 의견에 따라 우측 남근석 능선으로 올라선다.
이 길로 올라가면 작성산으로 가던가 아니면 금수산 방향으로 가던가 양자택일해야 한다.
일단 금수산 방향으로 가기로 하고 올라가니
좌측으로 작성산이 보이는데 지금 이 길에 나오는 이정표에 나오는 산 명칭은
동산만 표기되어 있다.
동산은 작성산 중의 하나의 봉우리에다 산 명칭만 붙인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이천분들과 올라가는데 뒤로 남여4인이 뒤따라 오고,,,
[지맥길]
1247 매포서지맥 시작점/삼면봉
무암사에서 산행 시작한 지 2시간 20분이 지나서야 지맥길과 만난다.
만나는 지점에 있는 이정표에는 새목재 0.4km/중봉 0.45km/동산 0.4km라고 적혀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지점이 상당히 재미있는 곳이다.
삼면봉,,,이른 바 3개의 면 경계지점이 되기 때문이다.
즉 제천시 금성면과 청풍면 그리고 충북 단양군 적성면의 경계 지점
그래서 매포서지맥길인 결매령-작성산-동산-금오산의 동쪽면은 충북 단양군 적성면이고
그 서쪽으로 제천시에 속하는 금성면과 청풍면 그리고 수산면이 있다.
좌측 새목재와 작성산 정상은 포기하고 우측으로 튼다.
10분도 채 되기 전에 동산에 도착한다.
1255 동산(896)
동산 정상에는 검정의 작은 정상석이 있고 삼각점에는 309복구 77.6건설부라고 적혀있다.
전망은 꽝이다.
이 곳을 오기 전에는 작성산과 금수산에만 시선이 갔었는데
이 곳 동산이 작성산 보다 오히려 높은 산이다.
무암사와 작성산은 제천시 금성면에 속하고
이곳 동산은 제천시 청풍면에 속한다.
또 금수산은 제천시 수산면에 속하고,,,,
1420~1440??? 점심
동산 정상을 지나 한참 길이 순하다가 어느 순간 부터 길이 제법 까칠해 진다.
밧줄없으면 내려가기가 까달스럽고 위험한 곳도 더러 있지만
산을 타는 재미는 오히려 더 하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점점 늦춰지고,,,
앞에 보이는 금수산 자락이 더 멀고 높아 보인다.
갑오고개를 얼마 남지 않은 곳에서 점심을 하기로 한다.
배낭 안의 것을 주섬주섬 꺼내어 보니,,,
아뿔싸!!!!
라면 끓일 코펠이 없다.
지난 주는 바람이 불어 설 익은 라면을 먹었는데 오늘은 그마져도 없다.
오늘은 제대로 해 볼 생각이었는데,,,불 없이도 먹을 만한 것만 먹고
앞의 금수산을 보니 너무 높아만 보인다.
이런저런 이유로 갑오고개까지만 산행하기로 한다.
금수산을 가서는 집으로 돌아올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1450 갑오고개/포장도로
식사 후 10여분 걸었나,,,
포장된 도로가 나온다.갑오고개라고 한다.
오늘 산행은 여기까지만
[오는길]
버스를 타고 제천역에 도착,,,
그 앞의 제천역전 한마음시장 해장국집에 들어가니 계모임을 하는 단체분들,,,
확진자가 만명이 육박한다고 다시 코로나방역지침이 강화된다는데 저러도 되나 싶을 정도다.
먹는둥마는둥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향한다.
올해의 사자성어 선정을 위한 교수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고양이 ‘묘’, 쥐 ‘서’, 함께할 ‘동’, 있을 ‘처’라는 네 자로,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
도둑 잡을 사람이 도둑과 한패가 됐다'는 뜻이라고 하는 ‘묘서동처(猫鼠同處)’를 1위로 선택했다고 한다.
내년 대선,,,
최선을 선택하는게 아니고 최악을 피해야 하는 선거가 될 전망이라고 한다.
도대체 왜들이러나.
그나마 최근 차일혁이라는 분의 업적에서 지금도 이런 분들이 있으리라 희망을 가져본다.
1951년 5월, 8사단 대대장 방득윤 중령은 상부로부터 녹음기 때 빨치산들의 근거지가 될 만한 사찰 및 암자를 소각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당시 방득윤 대대장과 같이 지리산 화엄사 일대를 방어하던 차일혁 18전투대대장은 화엄사를 불태우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차일혁은 "절을 태우는 데는 한나절이면 족하지만, 절을 세우는 데는 천 년 이상의 세월로도 부족하다. 문화를 잃으면 우리 마음을 잃고 우리 마음을 잃으면 우리나라를 잃는다"고 항명했다.화엄사를 지키기 위해 작전 명령을 불이행했던 차일혁은 감봉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각황전을 비롯해 화엄사 전각들은 소각을 피할 수 있었다. 전라도는 빨치산의 주요 근거지였고 산악에 자리 잡은 많은 사찰과 그 속의 문화재가 빨치산과의 전투 중에 소실될 가능성이 높았다.
화엄사 외에도 깊은 산중에 자리 잡은 사찰은 토벌 작전에 방해가 되기 일쑤였지만, 차일혁은 부하와 동료들을 설득해 가며 사찰들을 지켜냈다. 화엄사뿐 아니라 지리산의 천은사, 쌍계사와 모악산의 금산사, 장성 백암산의 백양사, 고창의 선운사, 덕유산의 크고 작은 사찰 등 전라도의 많은 고찰들을 전쟁의 피해로부터 구해냈다.
그런가 하면 동족 간에 총부리를 맞대야 하는 비극적인 혈투 속에서도 민족애와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아 가급적 귀순을 유도해 많은 빨치산의 목숨을 살렸다. 그는 빨치산 토벌이 끝나면 "깊은 산속의 절로 들어가 이념의 대결 속에 짓밟힌 무주고혼의 명복을 빌고 내 몸에 스며든 피비린내를 씻고 싶다"고 했다.
차일혁 총경은 후에 자신의 자서전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새벽부터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들에게 물어봐라. 공산주의가 무엇이며, 민주주의가 무엇이냐고. 과연 몇 사람이 이를 알겠는가? 지리산에서 사라져간 수많은 군경과 빨치산들에게 물어보라. 너희들은 왜 죽었느냐고. 민주주의를 위해서, 혹은 공산주의를 위해서 죽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자 몇 명이나 있겠는가?"
지리산에서 총성이 잦아들 무렵 전투경찰에서 물러난 차일혁은 1954년 충주서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충주경찰서에 근무하던 당시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을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학업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충주직업소년학원을 설립, 후학의 길을 열어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사니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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