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21차 (12구간)
<늘재~청화산~조항산~대야산~불란치재>
<산행 일시> 2007.7.22(일) / 오전 흐리고 오후 맑음
<산행 거리> 약 19 km (접속 구간 3 km 포함)
<산행 시간> 12시간 40분 (접속구간 소요시간 50분 포함)
<교통편> 왕복 360 km
의정부IC->외곽->중부->증평IC->510->34->19->49-> 32번
참고) 중부보다는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준비물> 먹거리: 점심, 간식(커피,오이,초코파이 약간)
물 : 약 5리터 (1.5리터 2병 + 500ml 4병)
휴대품 : 모자,수건,장갑,스틱,지도(1;50,000 조선일보 백두대간 제공)
비상용 물품 : 비상약품(대일밴드+스프레이파스,신경근육이완제)
헤드렌턴2+디카+건전지(핸폰,디카,헤드렌턴)
휴지,비닐봉지(쓰레기),비상 밧줄 5m
<소요경비> 9만 <유류비(약 58,000),톨게이트비(12,000),택시비(20,000),기타>
<주요 지점별 산행 시간/거리>
늘재 05:10 (0 km)
정국기원단 05:35
청화산 06:50 (2.49 km)
갓바위 09:05 (6.19 km)
조항산 10:10 (7.34 km)
고모령 10:52
집터바위 12:25
밀재 13:25 (11.69 km)
대야산 14:37 (12.94 km)
촛대재 16:24
촛대봉 16:43
불란치재 17:00 (약 16km ??)
산행완료 17:50
* 거리 : 누계거리 / 포항 셀파 산악회 실측거리
<산행기>
21번째의 대간길입니다.
2006.3.25일부터 시작해서 2007.2.9일의 20번째 대간길 이후
약 5개월반 만에 다시 시작해 봅니다.
진행 순서상 갈령~늘재 구간을 가야 하지만
가을의 속리산을 보기 위해 그 다음 구간을 이어 가기로 합니다.
구간 결정의 가장 큰 이유는 대간 거리가 짧다는 마눌 생각에 따른 것인데
ㅎㅎ
짧다는 이유로 선정한 구간,,,
글쎄,,,그 유명한 대야산의 험난한 직벽 구간이 있는지도 모르는 마눌,,,
오랜만의 대간길이라 어릴 적 소풍가기 전날의 두근거림으로
잠도 오지 않고 뒤적 뒤적 거리다 새벽 1시반에 일어나
우왕 좌왕하다가 2시반경 출발합니다.
네비게이션에 늘재를 입력해 보지만 나오지를 않고
지도상의 "청화산농장”으로 세팅하고 출발합니다.
중계동-> 외곽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증평IC에서 빠져 나오자 마자 좌회전해서
510-> 34 -> 19 -> 49 -> 32번 도로를 번갈아 가며
청화산 농장을 거쳐 늘재에 새벽 5시에 도착합니다.
늘재에 도착하기 전 사건 하나 있습니다.
네비게이션의 길은 가까운 길임에는 맞지만 49번(?) 도로가 유실되어
공사 중이었고 도로 방향표지기도 없고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 한참을 뺑뺑 돕니다.
할 수 없이 공사장 식당 주인을 깨워 물어 길을 알아냅니다.
식당 주인이 아니었으면 감리단장까지도 깨울 판이었습니다.
울퉁불퉁한 포장 안된 길,,,
아마도 비가 오면 다니기 힘든 산길로 산 하나를 넘거나
아니면 한참 돌아야 한다는 식당주인의 설명,,,
으이그,,,
겁이 많은 마눌과 처형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합니다.
“날이 밝으면 가자”
“돌아가는 것이 어떠냐?”
그러나
운전대 잡은 자의 맘대로 무식하게 산길로 돌진합니다.
울퉁불퉁한 흙 길을 한참을 지나면서 네비게이션에 대고 한마디 합니다.
“너 죽어!!!”
돌아오는 길도 택시기사분이 증평IC에서 중부고속도로로 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여
증평IC에서 592-> 19 -> 37 -> 32번 도로를 이용해서 왔지만
거리상으로는 멀어도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여간
포장안된 흙 길을 깜깜한 새벽에 오르고 돌고 돌아 어렵게 어렵게 힘들여
진행한 끝에 포장도로가 나오니 얼마나 반갑든지,,ㅋㅋㅋ
포장된 길을 얼마 달리지 않아
날은 밝아 주변이 보이기 시작하고 왼쪽을 보니 청화산 농장이 보입니다.
주변을 살펴보니 저 앞쪽 산자락에 대간길이 있으리라 짐작하고
가보니 왼쪽편 산길을 오르려는 남자 2분을 만납니다.
“대간 가시나요”
“예”
<<늘재~청화산 <05:10~06:50> 1시간 40분>>
늘재 05:10 (0 km)
정국기원단 05:35
청화산 06:50 (2.49 km)
들머리 바로 들어서니 어둑어둑한 평지에 작은 건물이 하나 나옵니다.
성황당인가 보다,,,짐작하고 올라갑니다.
나중에 알게됬지만 도로에 있는 귀신을 쫓는다는 음나무와 성황당.
구색이 맞는 듯 합니다.
새벽 5시 10분경에 시작된 대간길은 오르막의 연속입니다.
오랜만에 온 초보 대간꾼을 반기기는 커녕 무자비하게 30분 동안 쉬지도
못하게 줄기차게 올라치게 하더니 사진에서 많이 본 장면이 나옵니다.
정국기원단.
산행기를 보면 정국기원단 뒤로 속리산이 병풍처럼 드리워 져
있어야 하는데 오늘은 시야가 꽝입니다.
여기서 처음으로 들머리에서 만났던 남자 두분,,
부산에서 오셨고 죽령까지 가면 대간을 마치신다고,,,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신데 오늘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게 됩니다.
정국기원단에서 청화산에 다을 때까지 계속 오름길 연속입니다.
가파른 경사길 오름에,오랜 만의 대간길에 초반부터 진이 빠집니다.
출발한 지 1시간 40여분만에 도착한 청화산.
▼ 정국기원단
날이 좋으면 속리산이 병풍처럼 쫙 펼쳐져 있었을텐데.
▼ 아래 청화산 농장과 오늘의 들머리가 바로 아래에 보이고
▼ 청화산 정상
▼ 청화산을 출발하며,,
<<청화산 ~ 조항산 <06:50~10:10> 3시간 20분>>
청화산 06:50 (2.49 km)
갓바위 09:05 (6.19 km)
조항산 10:10 (7.34 km)
청화산 정상석을 뒤로 하고 나서의 대간길은
계속된 오름길은 끝났는 지 다소 평탄한 숲길로 이어집니다.
빗물을 가득 머금은 나무와 풀잎의 빗물로 옷이 축축해지고
간간이 이슬비도 내리는 듯한 길을 가다 보니 쌀쌀하고도 습한 느낌입니다.
숲길도 귀곡산장의 음산한 느낌.
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의 대간길이라 마냥 좋기만 합니다.
축축한 흙냄새,싱그러운 풀잎,원추리,하늘나리,까치수영,며느리밥풀꽃 ,,,
오랜만에 산에 들어선 마눌,,,잘도 갑니다.
아침식사를 하지 못해 전망이 좋은 곳을 찾지만 계속되는 숲길,,,
가다 지쳐 대충 앉을 만한 곳에 앉아 아침식사를 하지만
추워 오래 있지 못하고 다시 길을 나섭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보니 갓바위재가 나옵니다.
바로 앞의 헬기장이 없으면 아무런 특징이 없어 보이는 곳입니다.
갓바위재를 지나자 헬기장이 바로 나오고 20여분 더 지나자
전망이 좋고 멋진 바위군들이 걸음을 즐겁게 만듭니다.
마치 덕유산의 할미봉에서 남덕유산을 오를때의 느낌,그 느낌입니다.
수 많은 잠자리들이 머리 위를 날아 다닙니다.
갓바위재에서 1시간 정도 지나자 조항산 정상이 나옵니다.
정상석은 대간길에 수줍은 듯 약간 뒤에 있어 자칫 못보고 지나 칠수도 있을 듯합니다.
새조(鳥),머리 항(項).
새의 머리 모양을 닮은 산인가???
▼ 우중충한 분위기지만 이런 행복이 있어 즐겁기만 하고
▼ 오랜만에 왔는데 아직은 볼 것 다 보고
여유있는 듯한 마눌,,,
▼ 덕유산 구간의 할미봉에서 남덕유산 올라갈 떄의 느낌과 비슷한,,,
재미있고 눈요기할 것도 많은 곳.
▼ 하늘엔 많은 잠자리가 날아다닙니다.
▼ 조항산입니다. 새조 + 머리항,,,새머리를 닮았나???
<< 조항산~밀재 < 10:10~13:25> 3시간 15분>>
조항산 10:10 (7.34 km)
고모령 10:52
집채바위 12:25
밀재 13:25 (11.69 km)
조항산을 내려 오면서 무릎이 아프기 시작합니다.
그 동안 산을 괴을리해서 그런가??
무릎보호대라도 해야 될 판인가 보다.
질떡거리는 등로,가파른 내림길,,시간이 점점 지체 되기 시작하고.
조항산에서 출발한 지 40여분만에 도착한 고모령.
고모령 샘터는 10여미터 아래에 내려가야 합니다.
물을 채우고 다시 출발하여 10여분 지나니
저 멀리 커다란 바위산 봉우리가 나옵니다.
무릎도 아프고 몸도 지쳐 가까이 높다란 산이 앞을 가로 막고 있어
빠짝 긴장이 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높은 봉우리가 마귀할멈통시바위이더군요.
채석으로 몸살이 난 마귀할멈.
대간길은 마귀할멈을 향하다 급좌회전하며 마귀할멈을 따돌리며 진행이 됩니다.
휴!!!,,다행이다.
고모령을 출발한 지 1시간 반이 지난 오름길에 하늘 가득 메우는 바위 하나가 턱하니 나옵니다.
집채바위구나,,라는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갑니다.
대문도 있더군요.
오름길이 있으면 오르고 내림길이 있으면 내려갑니다.
저 멀리 커다란 산이 숲길에 살짝 보이고 점점 가까워 짐에 따라 사람소리도 들리고,,,
씨끌뻑쩍한 소리가 바로 가까이 들릴 무렵 안부 하나가 나옵니다.’
밀재입니다.
조항산 출발한 지 3시간 15분이 지난 시간.
▼ 석간수 샘터가 있는 고모치,,,그리고 채석장으로 몸살나고 있는 곳.
▼ 아직 익지않은 천남성,,,빨간놈이 보기는 더 좋은데,,,예쁠수록 독하다???
▼ 충분하리라 생각했는데 여기서 물을 잔득 채우고 가야 했습니다.
▼ 대간길에서 10미터 아래에 있어 약간의 발품이 필요.
▼ 서서히 힘들어 하는 마눌
▼ 힘들데 저 높다란 봉우리가 턱하니 나타나니 기운이 다 빠지는 듯,,,
▼ 뭐 이리 높노???
▼ 알고 보니 마귀할미통시바위라는 봉우리인데 꼬부랑하지 않고 기세가 등등합니다.
▼ 다행히 마귀할미 손아귀에서 벗어났지만 또 나타나는 저 산들은 뭔고,,,
▼ 폼 한번 잡고
▼ 오르막에 하늘을 뒤덮는 그 무엇이 있어 보니
▼ 집채바위인데 과연 집채보다도 더 큰 바위
▼ 저 앞에 있는 산은 높기만 한데 길은 또 한 없이 내려갑니다.
무픞도 아프고,길은 질턱대는 들로로 미끄럽고,,시간은 자꾸 지체대고.
▼ 밀재 이정표,,용추로 내려가고 싶은 충동이,,,
▼ 밀재는 차량 통행은 안되며 많은 등산객이 종기종기 모여 한가로운 담소를 나누고 있습니다.
<<밀재 ~대야산 <13:25~14:37> 1시간 12분>>
밀재 13:25 (11.69 km)
대야산 14:37 (12.94 km)
용추계곡으로 내려 가고 싶은 유혹.
한가로이 자리를 잡고 희희덕 거리는 소리.
뭐하러 이런 고생을 하나,,,라는 생각도 들고
물기 마른 바지가랭이에 묻은 흙,,,
무릎이 아퍼 쩔룩되며 가파른 대야산을 오르자니 별생각 다 들더군요.
그래도 가야지,,,하며 오릅니다.
진이 다 빠진 상태에서 높고 가파른 산을 오르자니 죽을 맛입니다.
더구나 내려오는 사람들이 많아 짜증도 나기도 하고.
대간길에 많은 사람들이 오는 산을 지나는 것,,재미없습니다.
밀재에서 1시간 12분이 지나 어렵게 오른 대야산.
정상석 사진 한방 찍지도 못할 만큼 사람이 많습니다.
포기하고 촛대봉으로 가기로 합니다.
▼ 앞으로도 가야할 길은 멀기만하고
▼ 대야산 정상,,,사람들이 엄청 많이도 왔다,,
▼ 대야산 정상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정상석도 못찍고
대야산 정상에서 알바까지 하고,,,
<<대야산~불란치재 <14:37~17:02> 2시간 25분>>
대야산 14:37 (12.94 km)
촛대재 16:24
촛대봉 16:43
불란치재 17:02 (약 16km ??)
지칠대로 지치고 에너지도 다 떨어졌는데,,,
내림길,,,
느낌이 이상해서 앞서 가시는 처형에게
“잘 보고 진행하세요”
“네”
위험한 직벽길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갈리가 없는데,,,
이상하여 여러 사람에게 물어 보지만 아는 사람이 없고,,
“다시 백,원위치”
지치고 힘들고 짜증도 나는데
오름길에 누군가 큰소리로 그 많은 사람들에 자랑하고 싶은지
동해물과 백두산이~~돼지 멱따는 소리로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고만 됐다 아이가”
다시 대야산 정상
다시 봐도 길이 없어 보입니다.
대야산 정상 안내판의 촛대봉을 가르키는 방향은 분명 그 내림길인데,,,
그 내림길 외에 있는 것이라곤 바위위로 올라가는 것 밖에 없는데,,
일단 바위로 올라 가보자 하며 올라 보니 길이 나있더군요.
다시 정리하면
대야산 정상에서 촛대봉 방향은 정상석 뒤 바위 위로 올라 가야 합니다.
바위 밑으로 가는 길은 용추계곡 하신길이니 혼돈하시지 마시기를.
집에 돌아와 여러 산행기를 보니 저와 같이 알바를 한 분이 많더군요.
주의 진행해야 할 곳입니다.
지친 몸에 알바까지 하고 다행히 길을 되찾아 가니 에너지도 다 떨어지고
그 유명한 급경사 직벽 내리막 시작하기 전 바위에 걸터않아 늦은 점심식사를 합니다.
물에 찬밥에 김치라도 꿀맛입니다.
누워 한잠 자고 싶은 유혹이 밀려 옵니다.
한 잠도 제대로 못한 여파가 밀려옵니다.
하지만 또 가야 하기에 자리를 떨고 일어 납니다.
대야산 직벽인 지 모르고 내려가시던 처형
“어떻게 내려가지 ???^”
잠시 방황과 망설임.
조심조심 내려갑니다.
다 내려가는 것을 확인하고 마눌을 내려 보냅니다.
주의, 또 주의, 신신당부하고,,,
아마 오늘 이 곳 오기 전 이런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아마도 오지도 않았을 듯한 마눌과 처형.
그래도 조심조심 잘 내려가더군요.ㅋㅋ
첫번째,두번째,세번째,네번째,,
모두 조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낭떨어지 절벽입니다.
바위벽에는 물기있는 진흙이 묻어 등산화를 밀착시키거나
발디딜 곳 찾기가 그리 싶지 않더군요.
밧줄을 잡은 손에 힘이 저절로 들어갑니다.
무사히 다 내려갔을 때 처향과 마눌이 이젠 대간 졸업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 것 같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 어렵게 내려와 절룩대며 촛대봉가는 길.
왜 그다지 멀게만 느껴지는 지,,,
촛대봉 가는 길에 나온 안부 하나 표지판이 나옵니다.
촛대재.
버리미기재 1시간 30분, 월경대 1시간 20분이라고 하는 군요.
대간을 포기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든 대간길입니다.
그 동안 연습을 괴을리한 결과이지만,,,
대야산에서 출발한지 2시간이 넘어서야 촛대봉에 도착하니
버리미기재는 아직 1시간 20분 더 가야 한다는 표지기.
오늘은 버리미기재를 포기하고 불란치재에서 탈출하기로 합니다.
촛대봉에서 20분경에 도착한 불란치재.
불란치재에서 좀 더 가면 버리미기재이지만 더 이상 진행하기가 어렵다 판단하고
불란치재에서 진행방향 오른쪽으로 뚜렷한 길이 나있습니다.
평탄한 길로 길게 길게 이어지며 50분만에 포장된 도로에 이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버리미기재가 있는 도로이더군요.
오랜만에 나선 대간길에 혼줄이 난 뒤
당분간은 7~8시간의 대간 코스로 계획해야 할 듯합니다.
힘들어서,,,
빨리가기 보다는 즐기며 가자.
▼ 멀리 촛대봉,곰넘이봉,멀리 보이는 희양산
▼ 좌측으로는 괴산 방향
▼ 대야산 직벽 바로 전 여기서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 에너지 보충했으니,,,힘내서 함 가보기로 하는데,,
보기만 해도 아득하군요.
▼ 다음 마눌 차례.여기서 못내려간다고 하면 어쩌나 했는데,,
▼ 그래도 내려가고 그 다음 내 차례
요기는 그래도 밟을 곳이나 있어 그나마 괜찮았는데,,(내려와서 위를 보고 찍은 사진)
▼ 요기는 밟을 곳도 마탕찮고
바위가 미끄럽고
진흙이 묻어있어 등산화가 미끄러져 어려웠던 코스
키가 적어 더 불리했던 곳.ㅋㅋ
▼ 조심조심 차분차분 한발 한발 주의 진행
▼ 다 내려왔나 봅니다.
그 유명한 대야산 직벽도 넘었으니 앞날이 훤해야 하는데,,
▼ 대야산을 뒤 돌아 보고
▼ 무릎도 아프고 기운도 다 빠지고,가야 할 산들은 아직 높기만 합니다.
▼ 촛대봉가기전에 만난 촛대재
탈출하고 싶은 맘이 굴뚝이지만 아무데서서 탈출하면 큰일 납니다.
▼ 별 특징없었던 촛대봉
대야산 1시간반,버리미기재 1시간20분,,대야산과 버미리기재 중간 위치,,
▼ 불과 얼마 가지 않으면 되는 버리미기재를 앞에 두고 불란치재에서 탈출을 합니다.
평탄하지만 길기만 했던 탈출로,50분 거리,만난 곳은 버미리기재가 있는 도로로 빠지더군요.
▼ 오른쪽 위로 올라가면 오늘의 목표지점인 버미리기재가 있습니다.
뒤편이 탈출구로가 있었고 계곡물이 있어 불붙은 발을 잠 재재우고 택시를 불러 다시 늘재로 갑니다.
▼ 늘재 초입에 있는 음나무
품격: 면나무
지정날짜 1982.10.26
수종및수령 음나무 320년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 64번지,,,라고 적혀있군요
면나무???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전국 각지별 보호수종 일람표
가. 시·군·도나무(1등급)
나. 시·군나무(2등급)
다. 읍·면나무(3등급)
라. 마을나무(4등급),,라고 나오더군요.
<인터넷에서 퍼온 자료들입니다.심심하고 따분할 때 읽어 보세요>
음나무(엄나무) (Kalopanax ricinifolium)
옛부터 음나무의 가시가 귀신의 침입을 막아 준다 하여
가지를 대문이나 방문 위 등 출입구에 꽂는 풍습이 있었고
지금도 충청도,전라도에는 이 풍습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간혹 이 나무를 정자나무나 신목(神木)으로 받들기도 하여
마을 들목이나 동네 가운데 음나무를 심으면
전염병이 비켜 가는 것으로 믿기도 했다고 한다.
음나무처럼 가시가 있는 나무는 독이 없고 염증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어서 찔레나무·아까시나무·탱자나무 등
날카로운 가시가 있는 나무는 갖가지 암, 염증 치료에
귀중한 약재가 될 수 있다는 전해져 오고있다.
불란치재/버리미기재/
불란치재는 경북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完章里)와 충북 괴산군 청천면 관평리(官坪里)를 연결하는 옛 고개이며, 지금은 새로 우측으로 비켜서 922번 지방도가 가은읍 완장리에서 쌍곡계곡 쪽으로 지나고 있으며 그 경계에는 버리미기재가 있지요.
불란치재는 다른 재 이름보다 어감이 특이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대야산 양쪽으로 각각 걸려 있는 고개로는 밀재와 불란치재, 그리고 버리미기재가 있으며,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에서 용추계곡을 통하여 오르는 등산로와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농바위에서 오르는 등산로가 만나는 곳이 밀재입니다. 밀재는 대야산 등산로가 개척되기 이전부터 삼송리와 완장리를 이어주던 고개였는데 지금 그 고개를 이용하는 주민은 거의 없으며 오로지 대야산 등산로로만 쓰이고 있지요. 불란치재 블란치재로도 부르며 그 의미는 ‘불이 났던 고개’라는 뜻이랍니다. 그러나 이 고개에 전하는 전설은 아직까지 전하는 바가 없답니다. 이 고개는 본래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와 청천면 관평리를 이어주던 옛길로, 그 규모는 충북 청천면과 경북 상주시 화북면을 연결하는 늘재와 비슷할 정도로 통행량이 제법 많았던 고개입니다. 상주에서 늘재를 넘어 청천과 괴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남북 방향이라면, 문경 가은에서 불란치재를 넘어 청천과 청주로 이어지는 길은 동서 방향이지요. 그러나 교통이 발달하면서 늘재가 지방도로로 포장되어 여전히 쓰임새를 갖춘 반면, 불란치재는 버리미기재에 922번 포장도로를 넘겨주고 지금은 쓰지 않는 옛길이 되었답니다. 불란치재는 촛대봉과 곰넘이봉 사이에 지금도 뚜렷한 옛길의 흔적이 남아 있으나 통행은 거의 없지요.
버리미기재는 불란치재의 역할을 넘겨받아 새로 닦은 2차선 포장도로이며, 그 이름은 ‘벌의 목 고개’라는 뜻으로 밀치, 밀재, 밀목치, 밀목재, 밀항 등과 같은 말로서, 일반적으로 고갯길의 경우에는 벌, 노루, 소, 돼지, 닭 같은 짐승의 목 부분에 빗대어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답니다.
불란치재와 버리미기재는 사람이 걷던 시대에서 문명의 시대로 넘어가는 고갯길의 변천과정을 보여주는 곳으로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변천과정을 거시적으로 가장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곳은 문경새재 일원입니다. 백두대간 가운데 가장 중요한 동서 교통로 역할을 담당했던 문경새재 일원은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는 계립령, 조선시대에는 새재, 일제시대 이후는 이화령으로 고갯길이 바뀌었지요.
옛 고문서와 고지도에 기록된 내용들을 살펴보면
1760년경 영조때의 조령진 문경현지(鳥嶺鎭 聞慶縣誌)에는 불한령(弗寒嶺)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대야산의 허리로 괴산 경계에 이른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볼때 불한령은 춥지 않은 고개라는 의미로 용추주차장에서 불란치재로 이어지는 계곡은 양쪽에 대야산과 성봉이 자리하고 있어 지형적으로 아늑하며 바람이 없는 곳으로 겨울에도 다른 곳에 비하여 그렇게 춥지 않은 곳이랍니다. 이런 까닭으로 불란치재의 옛 이름을 불한령이라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 지금의 불란치재는 불이 났던 고개라는 뜻 외에 불한령의 옛 이름을 부르면서 령(嶺) 대신에 치(峙)로 바뀌고 치 뒤의 재는 치와 같은 의미로 역전앞과 같은 중첩된 글자로서 말을 더 유연스럽게 하기 위해 불란치보다는 불란치재로 부른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또 아래로 시대를 내려가면서 기록을 보면 1757년(영조33년) 여지도서(輿地圖書)에도 불한령(弗寒嶺), 1725~1775년 추정(영조조) 문경현지(聞慶縣誌)에 불한령(弗寒嶺), 757년 이후 추정(정조조) 문경군읍지(聞慶郡邑誌),1789년(정조13년) 문경현지(聞慶縣誌), 1832년경(순조32년경)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1861년 이후 추정(철종조) 대동지지(大東地志), 1899년(광무3년) 경상북도 문경군읍지(慶尙北道 聞慶郡邑誌), 1892년 이후 추정(고종조) 문경부지 (聞慶府誌), 1871년(고종8년) 영남읍지(嶺南邑誌), 1895년(고종32년) 영남읍지(嶺南邑誌), 1936년(대전 이병연) 조선환여승람(朝鮮환輿勝覽) 등 옛 기록들에도 다같이 불한령(弗寒嶺)으로 되어 있답니다.
다음으로 고지도인 해동지도(18C 중엽)에는 불원치(佛院峙)로, 같은 시대의 또 다른 해동지도(18C 중엽)에는 불한령(弗寒嶺), 그리고 영남지도(18C 중엽)에는 불한현(弗寒峴), 대동여지도(1861년)에는 불한령(弗寒嶺)으로 적혀 있답니다.
아무튼 현재 부르고 있는 불란치재 또는 블란치재는 '불이 났던 고개'의 뜻, 불한령(弗寒嶺)이 불한치, 불란치로 변하고 고개라는 뜻의 재가 하나 더 붙게된 것입니다.
대야산 : 930 M /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아름다운 자연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는 비경의 처녀산
속리산국립공원 동쪽에 위치한 대야산(大野山)은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경계에 있으며 아직도 일반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비경의 처녀산이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대야산은 남쪽 속리산 문장대에서 청화산(984m)과 조항산(951m)을 거쳐온 산줄기를 이어받아 높이 솟구쳤다가 그 줄기를 장성봉과 희양산으로 넘겨준다. 대야산이 속리산국립공원에 포함될 수 있었던 것은 대야산이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지닌 데다 자연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대중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인데, 이런 이유로 청정한 자연환경을 잘 간직하고 있다.
대야산은 대하산, 대화산, 대산, 상대산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특히 대야산의 동쪽인 경북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와 서쪽 산기슭인 충북 괴산군 청천면 송면리에는 각각 선유동계곡이 있어 선유산 이라고도 한다.
대야산은 노출된 급경사 암벽과 기암괴석의 난립으로 이뤄진 화강암벽이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깎아지른 벼랑을 이루며 노송과 고사목이 기암에 뿌리를 박고 있어 한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이처럼 깎아지른 암봉과 온갖 형상의 기암괴석은 울창한 수림에 덮여 서울의 북한산과 도봉산을 합친 것으로 비유 되기도 하며 사시사철 변함없이 세속에 오염되지 않은 옥계수가 흐르고 있어 여름철에는 많은 등산객이 찾고 있다. 대야산 자락의 비경은 하나, 둘이 아니다. 바위가 수천 년 동안 물에 닳아서 원동형 홈이 파져 있어 하트 모양을 하고 있는 용추폭포, 그위에 월영대, 그리고 선유동계곡, 학천정, 칠우정, 지방 기념물 제90호 운강 이강년선생 생가 등 주변에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정상에서의 전망은 북동쪽으로 희양산과 백화산, 그 뒤로 조령산, 월악산이 시야에 들어오며 주흘산, 운달산이 동쪽으로 보인다. 또한 남서쪽으로 속리산의 장대한 능선이 시야에 들어온다.
대야산의 용추계곡은 그중에서도 특히 유명한데 용추계곡은 문경팔경 중 하나로 충북 괴산군과 경북 문경시의 경계를 이룬다. 소백산맥 오지 깊숙이 숨어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대야산에 위치한 계곡으로 울창한 수림 사이에 사시사철 옥계수가 흐르는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이다. 용추계곡에서도 명소중의 명소는 3단으로 된 하트 모양의 용추폭포로,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곳이다. 용추폭포는 암수 두 마리의 용이 하늘로 승천한 곳이라는 전설이 깃들여 있다. 용추 양쪽의 큰바위에는 두 마리의 용이 승천할 때 남긴 용비늘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으며 아무리 가물어도 이 곳의 물은 마르는 일이 없어 옛부터 극심한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올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용추폭포 위의 넓디넓은 암반 지대를 지나 20분쯤 올라가면 월영대가 있다. 휘영청 밝은 달이 중천에 높이 뜨는 밤이면 계곡을 흐르는 맑디맑은 물 위에 달 그림자가 아름답게 드리운다하여 영월대라 하였다한다.
[계곡] 소백산맥 오지 깊숙이 숨어있는 천혜의 비경 (7월 ~ 8월)
용추폭포는 거대한 화강암 바위에 용이 승천할 때 용트림하다 남긴 용비늘 흔적이 신비하게도 남아 있어 더욱 의문스러움을 자아내게 하고 수만년 기나긴 세월동안 흘러내리는 계곡물에 바위가 닳아 폭포아래에는 천혜의 비경인 하트(♡)모양으로 깊게 파인 소(召)가 절묘한 형상을 갖추고 잇으며 가뭄이 들 때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한다.
청화산
청화산(靑華山984.2m)은 충북 괴산군 청천면, 경북 상주시 화북면, 문경시 농암면 경계를 가름하면서 984m 높이로 솟아오른 육산(陸山)이다. 산중에 산죽군락과 소나무가 많아서 겨울에도 온 산이 푸르게 보인다하여 청화산(靑華山)이라 일컫었다고 한다.
조선조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청화산은 가은의 선유동과 괴산의 선유동 등, 내·외 선유동이 동서에 자리하고, 남으로는 용유동을 품고있서 산경의 아름답기가 속리산 보다 훌륭하다'고 하였다. '다만 산의 높고 큰 것이 속리산에 미치지 못하나, 속리산처럼 험한 곳이 없고, 흙으로 된 봉우리를 둘러싼 돌이 모두 밝고 수려하여 살기(殺氣)가 적을 뿐 아니라, 모양이 단정하고 좋으며 빼어난 기운이 드러나 가린 것이 없으니, 가히 복지(福地)라 일컬을 만하다'고 하였다. 그는 특히 청화산을 좋아하여 이 산기슭에서 여러 해를 머물렀으며, 그를 인연으로 호를 '청화산인'이라 불렀다.
청화산은 동국여지승람이나 산경표 등에는 원래 화산(華山)이라 표기되었는데 택리지가 쓰여진 이후 청화산으로 기록된다.
조항산
조항산은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와 경북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의 사이에 솟은 산으로 백두대간 위에 대야산과 청화산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좋은 하루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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