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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주절주절,,,,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신영복 교수의 삶에서

by 사니조은 2016. 1. 17.

 

 

요즘 세상살이 쉽지 않음이 여기저기서 포착된다.

분노범죄,희망보다는 좌절,이익 앞에 버려 진 양심,짐승의 탈을 쓴 인간 군상들,,,

지 잘난 멋에 살판난 인간들,톨레랑스란 찾아 볼 수 없는 사회,

 

이런 와중에 취근 타계하신 신영복 교수의 삶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대학다닐 때 운동권에 있던 한 고교동창으로 부터 읽어 보라고 권유받은 책이었다.

그 친구는 전두환 정권 때 다음 대통령은 누구가 될 것이라고 절대 확신에 한 목소리를 냈었다.

그 확신이 현실이 되었을 때 나의 그때의 심정은 참담함이었다.

 

그 참담한 느낌을 신영복 교수의 타계에서 되세겨 보게 된다.

20여년간의 감옥 생활을 사색을 통해 이겨 낼 수 있었다고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감옥에서 수 많은 책을 읽었다고 했다.

신영복교수는 책을 통해 지식을 넗히기 보다는 사색을 했다고 한다. 

그 사색의 결과물이 그 책이었던 것이었다.

그 분이 타계에 정치권은 또 이해득실 행동들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득이 될 것 같으면 받아들이고 독이 될 것 같으면 내 뺃는 야비한 인간들.

이보다 더 나쁜 놈들은

사실,진실들이 교묘하게 가짜가 진짜인 지,진짜가 가짜인 지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어 혼란에 빠트리는 놈들.

이런 짐승들은 외모도 잘 꾸며 존경받아야 할 사람처럼 행동한다.

이들이 익힌 지식이나 정보,기술 등은 매우 위험해서 배우지 못한 것 보다 해악스럽다.  

 

세월호,신영복 교수의 삶,,,

보수와 진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나간 아픔 속에서 그런 아픈 일들이 되풀이 되지 않토록 바꿔 나갈려는 모습이 중요한데

그런 모습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현실은 더 암흑같다.

 

신영복 교수의 감옥 생활에서의 희망을 감옥에 들어 오는 신문지 크기의 빛에서 찾았다고 한다.

두어시간이 빛,,,

 

질흙같은 어둠과 강풍,매섭고 혹독한 추위 속 절벽에서 비박하던 엄홍길과 박대원을 살려 냈던 아침 햇빛.

오늘날의 엄홍길을 만든 것도 아침 햇빛이었다.

 

이 어둠 속에도 아침 햇빛같은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 내놓지는 않지만 오늘도,내일도,

이 사회,이 국가의 골격을 이루고 있는 그들,,,

평범한 소시민 속에 살아 숨쉬는 그들이 있기에 희망은 있다고 생각한다. 

 

 

 

아래 부산일보 기 펌)

 

지난 15일 늦은 저녁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먼 하늘나라로 떠났다. 향년 75세. 홍안의 나이였던 27세 때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무기수라는 비극을 맞은 신영복. 이후 기약 없는 나날을 보내던 그는 복역 20년 20일 만인 1988년에 출소한다.  
 
그 이듬해부터 성공회대에서 강의를 맡은 그는 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 후학들과의 만남을 멈추지 않았다. 자유의 몸이 된 신영복 교수가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의 울림은 어둠을 휘저어 놓은 듯하다. 그의 옥중 서간집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비롯해 '나무야 나무야' '강의' '담론'은 경쟁 지상주의와 물질 만능주의에 빠진 이 시대에 경종을 울렸다.
 
'내가 (교도소에서)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햇볕' 때문이었다.(중략)겨울 독방의 햇볕은 살아가는 이유였고 생명 그 자체였다.' 그가 고난을 이겨 낼 수 있었던 힘은 엄청난 용기와 인내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이처럼 작고 소박한 대상에서 삶의 본질을 깨닫는 그의 통찰력은 모두에게 가없는 위안을 안겨 주었다. 감옥의 고통 속에서 길어 올린 사랑과 위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이란 글을 썼다. 얼핏 보아선 이해가 어려울 법도 한 글월이다. 하나, 이 구절을 되씹어 보면 공감과 연대를 바라는 그 뜻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같이 아파하고 호흡하지 않으면 진정한 도움이 될 수 없다는 뜻이 아닐까.

그의 이런 생각은 모든 면을 관통한다. 그가 창안한 서체인 '어깨동무체'가 맥락을 같이한다. 젊은이에게 자기 기준을 이식하는 '멘토'에 부정적 반응을 보인 것도 그렇다. 또 삶의 조건은 그대로 둔 채 생각만 바꾸려는 건 폭력이라는 인식도 마찬가지다.  

'나의 친구들이 죽어서, 나는 다른 친구를 사귀었노라. 용서를 바란다.' 그는 옥중서간집에서 모블랑의 시를 인용했다. 옥사에서 떠나는 동료들과 그들을 보내는 자신의 허무함을 나타낸 글귀에서다. 이제 그가 우리 곁을 떠났다. 하지만 사람 간의 관계를 직조하라는 그 정신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의 바람처럼 멋들어지게 짜인 천 같은 인간 세상이 어서 오길 바란다. 고 신영복 선생의 명복을 빈다. 그때 천상에서 만면에 온화한 미소를 지을 그를 떠올려 보며. 이준영 논설위원 g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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