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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세상이야기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

by 사니조은 2013. 9. 13.

 

 

[男子수난시대④] 50 ''이 없다

 

평일에도 홀로 산을 찾는 그들 "갈 곳도, 할 일도 없어" 

 

산을 찾는 50대 남성이 늘고 있다. 산악회에 가입해 여럿이 뭉쳐가는 것도 아니다. 취미생활로 화려한 등산 장비를 갖춰 입는 건 더더욱 아니다.

평일 아침 관악산에서 만난 이모(52) . 그는 누구에게도 인사 한 번 건네지 않고 묵묵히 산에 오른다
.

낡은 운동화에 빛바랜 등산복, 푹 눌러쓴 모자만 챙겨온 남자의 어깨에는 막걸리 한 병과 고추장에 찍어 먹을 마른 멸치만 담긴 가방이 걸려있다
.

이 씨와 같은 50대 남성들이 굳이 산을 찾는 이유는 우선 건강 때문이다. 한창 시절 매일같이 새벽에 출근하고 일주일에 두세 번은 '필름 끊기는' 회식을 했다. 또래 중에 당뇨와
고혈압 걱정 없는 친구가 없다
.

하지만 건강보다도 더 큰 이유는 '갈 곳이 없어서'. 도봉산에서 만난 은행원 출신 김모(58) 씨는 스스로를 '뱅커'라고 소개하면서 "할 일이 없어서 산에 왔다"고 했다
.

"
은퇴하니까 시간은 남는데 할 일이 없다. 그렇다고 도시에서 돌아다니면 다 돈이 들고, 딱히 소일거리 할 게 없다"던 김 씨는 취미를 묻자 한참을 망설였다
.

"
취미라니, 뭐라고 얘기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골프야 일 때문에 접대하느라 배운 거고, 일 그만둔 처지에 칠 형편도 안 되고…
".

잠시뒤 김 씨는 '정답'을 찾아낸 듯 미소를 지었다. "우리 세대에게 취미가 어디 있나. 기껏해야 등산하고 아침에 뛰는 거지
".

그나마 김 씨는 일이 없어도 당분간 버틸 수 있을 만큼 형편이 나은 편이다. 기획재정부 통계에 따르면 50대에 취업한 사람은 지난 2003 31만여 명. 하지만 지난해엔 53만여 명으로 늘어났다
.

50
대의 고용인구와 고용률 모두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문제는 일자리의 ''이다. 도봉산에서 만난 정모(55) 씨는 3년 전부터 아파트 경비 일을 하고 있다. 24시간 격일 근무라 쉬는 날이면 산에 온다고 한다
.

생선가게를 꾸렸던 정 씨는 "새벽 3 30에 도매시장에서 물건을 받아오면 물건이 다 팔릴 때까지 12가 넘도록 일했다" "우리 세대는 다 그렇게 일하지 않았나"라고 되물었다
.

반백을 훌쩍 넘긴 나이. 정 씨도 이제 여유를 찾고 싶지만 문제는 지긋지긋한 돈이다. 50대 남성에게 돈보다 가혹한 게 있을까. 가장 큰 부담은 역시 '자식'이다
.

요즘 아이들은 '밥이 아니라 돈을 먹고 자란다'는 게 50대 가장들의 얘기다. 자신들의 어린 시절엔 상상도 할 수 없던 온갖 학원에, 대학 등록금에, 이젠 시집 장가 보낼 일까지 남았다
.

코피 흘려가며 벌어놓은 돈을 다 쓰고도 모자라 은행에 손 벌리고 나면, '더 늙어서 일도 할 수 없을 때에는 어쩌나' 두렵기만 하다
.

빚더미에 오른 50대는 단순히 운 나쁜 몇 명만의 문제가 아니다. 통계청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실질 가계부채는 1100조 원에 육박한다
.

집을 팔아도 대출금과 전세금을 갚지 못하는 상황인 담보가치인정비율(LTV) 80% 이상 대출도 3조 원이 넘을 정도다. 특히 50대가 가장인 경우는 한 가정당 평균 7500여 만원의 빚을 안고 있어 각 세대 가운데 가장 많은 빚을 안고 있다
.

누구나 힘들던 그 시절. 나만 혼자 고생한 게 아니란 것쯤은 잘 알고 있다. 정 씨 역시 "아내가 함께 일하지 않았으면 애들을 못 키웠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

하지만 50대 남성의 가슴 한켠에는 사무치는 외로움이 도사리고 있다. 평생 남의 눈치를 보고 경쟁하며 살아온 '베이비붐' 세대들이기 때문이다
.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뒤돌아보면 직장 동료들은 어디론가 흩어졌다. 고향이나 학교 친구들은 서울 올라와서 각자 먹고살기 바쁜 탓에 얼굴 한 번 보기 힘들다
.

험난한 사회생활에서도 '내 새끼, 내 마누라만은 따뜻한 밥 한 끼 굶기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텨왔지만, 가장 외로움을 느끼는 곳은 역설적으로 집이다
.

북한산에서 만난 김득호(59) 씨는 그나마 퇴근이 빨랐던 공무원 출신인데도 자식들과 무슨 얘기를 해야 좋을지 아직까지 모른다
.

김 씨는 "일찍 일어나 늦게 퇴근하며 직장생활만 했으니 자식들과 제대로 대화한 적이 없었다" "이제 와서 뒤늦게 얘기해보려고 해도 자식들이 먼저 피한다"고 털어놨다
.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돈 얘기만 나오면 '가장'이라 부른다. 평생을 등골이 휘도록 일했는데, 아직도 더 벌어오라는 건지 답답하기만 하다
.

그래도 정 씨는 "초등학생 때에는 아이들이 아빠밖에 몰랐다" "지금도 그때 내 품에 안기던 아이들 생각하면서 하루에 서너 시간만 자고 일한다"고 웃었다
.

마른 멸치를 등에 인 이 씨는 어느새 관악산 정상에 올랐다. 바위에 걸터앉아 가져온 막걸리 한 모금을 점심 대신 마신다. 오후 1가 넘었다. 이 씨는 주섬주섬 짐을 챙겨 다시 내려간다
.

그래도 돌아갈 곳은 집뿐이다. 아비 고생하는 줄은 알았는지, 아들은 군대 가기 직전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한다
.

자식 고생시키는 죄인인 것 같아 가슴이 아프지만, 말릴 여력이 없어 더 괴롭다. 올라가던 발걸음보다 내려가는 발걸음이 더 무거운 건, 비단 등산뿐만이 아닌 것이다
.
ten@cbs.co.kr

[
인기기사]

 

 

 

[男子수난시대③] 40 ''는 없다

'생존' '자녀' 위해 일개미 전락…정작 가정에선 '왕따'

 

 

불혹(不惑)의 나이, 40. 공자가 '확고한 나의 길이 정해져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해서 붙은 별칭이다.

맹자는 자신의 40대를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이'란 뜻의 부동심(不動心)으로 칭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40대를 '진정한 남자가 되는 시기'라고도 했다
.

이런 맥락에서 보면 40대 남성은 일에서도, 가정에서도 단단하고 안정적일 것만 같지만 대한민국의 그들은 사실 이런 별칭들과는 동떨어져 있다
.

CBS
취재진이 만난 '대한민국 보통 40'들은 압박과 스트레스, 소외감에 흔들리며 불혹(不惑)보다는 불안(不安)의 시기를 거치고 있다
.

"나이 50까지 이 회사 다닐 수 있을까요
?"

가장 큰 불안감은 역시 생존에 대한 불안감.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평균 퇴직연령은 53세이지만, '체감 퇴직 연령' 40대 중후반이라는 게 공통적인 목소리다
.

맞벌이 부부가 늘어났다 해도 가정의 생계를 떠맡은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성은 40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퇴직과 그 이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

회사원 최모(44) 씨는 대학을 졸업한 뒤 외국계 제약회사에 다니다 6년 전 국내 대기업으로 이직했다
.

원하던 회사로의 이직에 성공했던 당시만 해도 남들이 안 하는 일에도 뛰어들면서 의욕적으로 일했다. 하지만 40대가 되고 나서 주변을 돌아보니 "힘이 빠지더라"는 게 최 씨의 얘기다
.

자신이 다니는 회사는 '사람을 잘 안 자르는 회사'로 유명했지만, 그런 분위기도 최근 많이 바뀌고 있다며 착잡함을 내비쳤다
.

최 씨는 "작년에 한번 부장급 7~8명이 한꺼번에 나갔는데, 한평생 일한 회사를 그렇게 나가는 걸 보면서 좋아보이진 않았다" "향후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 50까진 버티고 있을까' 싶어 고민이 많아졌다"고 털어놨다
.

"
보통 차장 정도까지 남아있고, 부장 제대로 못 달면 글쎄, 얼마나 버틸까요?". 최 씨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

"10년을 일했는데…왜 아직도 쪼들릴까요
?"

팔팔하던 30대 시절 대부분을 ''에 바친 40대 남자들. 하지만 그토록 일했는데도 손에 쥔 건 별로 없다 보니 답답한 상황에 봉착하기 일쑤다
.

그 중에서도 '대출금' 문제는 40대의 발목을 붙잡는 거대한 장애물이다. 부동산 경기가 좀체 떠오를 기미가 안 보이면서 대부분의 40대는 대출금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상황이다
.

40
대 회사원 손모(41) 씨도 그렇다. 손 씨는 직장생활 10년차의 '베테랑 영업사원'으로, 회사 안팎에서 인정받으며 남들이 보기엔 승승장구하고 있다
.

하지만 본인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불안하다고 느낀다. 손 씨는 "자녀 둘 교육비 문제부터 대출까지 있는데, 그 대출에 대한 이자 부담에 어머니도 모셔야 하고, 말도 말아요"라며 손사래부터 쳤다
.

손 씨는 "한 달에 사교육비로 50만 원은 고정적으로 나가고 거기에 1억 넘는 대출 이자로도 매월 50만원씩은 나간다" "월급의 4분의 1이 그냥 나가는 돈이니 이것저것 내다보면 저절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

자녀 둘을 각각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보내고 있는 황모(41) 씨도 마찬가지다. 사교육비 부담은 자녀의 연령을 가리지 않고 닥쳐온다
.

"
오히려 결혼하기 전에 돈을 좀 모으고 저축적금도 많이 들었는데, 지금은 저축은 오히려 못 하는 상황"이라고 답답한 기색을 내비쳤다
.

황 씨는 생활비에 교육비, 대출금까지 이런저런 이유로 빠져나가는 돈을 보면 허무해진다고 털어놨다
.

"10
년 전하고 똑같은 거 같아요. 경제적 여유는, '10년 넘게 일했는데 왜 모은 게 없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사교육비 부담을 가장 크게 짊어지고 있는 세대가 바로 40대다
.

현대경제연구소
가 지난해 발표한 '국내 가구의 교육비 지출 구조 분석' 자료를 보면, 평균보다 많은 교육비 지출로 빈곤하게 사는 '교육빈곤층'의 대다수는 40대다.

자녀교육비 지출이 있는 가구 중 세대주가 40대인 경우는 333.3만 가구로, 전체의 52.7%에 달한다. 그렇잖아도 각종 지출이 많은 40대가 자녀 교육비도 줄이지 못해 경제적으로도 취약한 모습을 띠고 있는 셈이다
.

맞벌이를 하든 하지 않든, 대한민국 40대 남성들은 '절대적인 수입'을 어떻게든 창출해내야 한다는 경제적 압박감을 묵묵히 감당해낼 수밖에 없다
.

"사춘기 자녀와 대화는 힘들어…'왕따' 기분이 이런 걸까요
"

40
대가 이런 '경제적 압박'을 이겨내려면 회사 일에 매진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가정 일엔 소홀해지는 게 당연해진다
.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내던지지만, 그 가족에게선 또 외면당하는 악순환의 고리도 이 대목에서 생긴다
.

'
가정적인 아버지'가 인기를 끌고 남편의 가사분담이 당연시되는 사회풍조가 퍼지면서, 이런 기대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는 40대 남성은 가정에서조차 소외를 피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

특히 자녀들이 사춘기에 접어들기 시작하면, 안 그래도 없던 대화가 더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 와중에도 아이들은 얼굴 볼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은 어머니는 편하게 생각한다. 아버지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

중학교에 다니는 딸과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둔 김모(47) 씨는 자신을 '왕따'라고 표현한다
.

"
딸내미는 엄마하곤 이것저것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요샌 나를 어려워하고 말을 걸어도 대답도 잘 안 한다"며 섭섭함을 드러냈다
.

아이들이 사춘기에 돌입하기 전에는 곧잘 대화를 나눴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머리 좀 컸다'고 부모들과 대화도 잘 안 하려 하는 데다, 자주 얼굴을 못 보니 자녀들의 관심사가 뭔지도 도통 파악이 안 된다는 것
.

행여 아이들과 대화할 기회가 주어져도 "공부 잘 되냐", "학교 생활은 어떠냐" 류의 '하나마나한 말' 밖에 안 튀어나온다. 스스로가 원망스러울 정도다
.

아이들과는 점점 멀어지고 아내와도 예전 같지 않다. 자신은 누구인지, 또 여기는 어디인지, 가정에선 어떤 위치인지 되돌아보지만 이미 거울에 비친 구레나룻은 희끗희끗해졌다
.

김 씨는 "애들한테 말 붙이기도 어렵고 집사람은 집사람대로 핀잔을 준다" "직장은 직장대로, 집은 집대로 또 다른 스트레스로 다가온다"고 토로했다
.
som@cbs.co.kr

 

 

 

 

[男子수난시대②] 30 ''이 없다

 

'취업門' 통과해도 '빈털털이'"결혼 준비에선 절대 乙" 아예 포기 

 

서울에 있는 한 공기업에 다니는 수현(32·가명) . 남들은 '신의 직장'에 다닌다며 부러운 시선을 듬뿍 보내지만, 정작 이 씨는 요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야근에다 잦은 출장 탓에 가족과 함께 한 식사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

3
년차 사원이지만 후임이 없어 아직까지도 말단인 이 씨. 팀 내 굵직한 업무부터 복사 심부름, 민원 처리 등 잡다한 일까지 도맡아하기 일쑤다
.

하지만 무엇보다도 수현 씨에게 스트레스를 준 건 바로 '이별'이다. 힘든 직장 생활 속에서도 정신적 쉼터가 되어줬던 여자 친구와 헤어진 게 최근이다
.

일이 바빠 자주 만나지 못해 멀어진 탓도 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결혼' 문제였다
.

이 씨보다 연상이던 여자 친구는 결혼을 원했지만, 수현 씨는 그녀를 밀어냈다. 아직 결혼할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

이 씨는 "공기업이지만 연차가 낮아 연봉도 적은 데다, 월급을 받아도 학자금 대출이나 각종 생활비로 지출하다보니 모아둔 돈도 많지 않다"고 했다
.

그러다보니 가장 큰 문제는 ''이었다. "결혼하려면 남자가 집을 마련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그런 형편이 전혀 안 된다", 수현 씨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

결혼을 포기하고 마는 30대 남성은 비단 수현 씨뿐이 아니다. 일자리도 불안한 데다 무엇보다 '내 집 마련'이 어렵다보니, 결혼하고 싶어도 엄두를 못 내는 것
.

"
아직 사회 곳곳에서 남녀차별이 심하다고 하지만, 결혼 준비에서만큼은 남성이 '절대 을'()"이란 게 30대 남성들의 한목소리다
.

사실 수현 씨의 여자친구가 집을 요구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결혼 적령기인 이 씨는 늘 그런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

"
여자들의 관심은 재산이나 집에 있다"고 느끼는 수현 씨에겐 소개팅도 부담스럽다
.

이 씨는 "요즘 여성들의 눈이 굉장히 높아졌기 때문에 단순히 직장만 있는 것으론 안 된다" "집은 있는지, 재산은 얼마나 있는지 등 여러 조건들을 고려하기 때문에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기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

수현 씨가 생각하는 남성의 결혼 조건은 "방 두 개 딸린 아파트 전세쯤은 구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다
.

이 씨는 "보통 여성들 대부분이 강남에 살고 싶어하지 않느냐" "강남이 아니라 서울 시내 전세라도 구하려면 최소 1 5000만 원에서 2억 정도는 있어야 하지만, 지금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안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

어렵사리 마련한 중형차도 결혼 자금을 모으기 위해 되팔까 생각해본 수현 씨. 하지만 차도 없이 소개팅에 나갔다간 되려 위축될까봐, 비싼 기름에 보험비까지 꾸역꾸역 내가며 처분도 못하고 있다
.

부모님께 손을 벌리고 싶지만, 부모님 또한 여유가 있는 게 아니어서 일찌감치 생각을 접었다
.

이 씨는 "부모님이 지원하지 않으면 결혼 자체가 힘든, 가정을 꾸리기 힘든 상황인 것 같다" "여자가 집 사고 남자가 혼수 마련하면 안 되느냐"고 진담 섞인 농담을 던졌다
.

상황이 이러다보니 미혼 남성은 계속 늘고 있다. 서울시의 '통계로 본 서울 남성의 삶'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990 113499명이던 30~49세 미혼 남성은 20년이 지난 2010 49 6344명으로 4.4배나 급증했다
.

이 가운데 특히 35세 이상 남성의 미혼 증가율은 같은 기간 2 4239명에서 24 2590명으로 폭증했다. 결혼 적령기를 넘긴 '노총각' 비율이 20년 전보다 10배나 된다는 얘기다
.

물론 이런 추이에는 결혼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도 작용했겠지만,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큰 원인이다
.

보건복지부
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2년 전국 결혼 및 출산동향조사' '전국 출산력 및 가족 보건복지실태조사'에 따르면, 미혼 남성의 40.4%와 미혼 여성의 19.4% "경제적 이유로 결혼하지 않고 있다"고 응답했다.

낮은 소득과 불안한 직장, 과도한 주거·결혼 비용 등이 결혼 가치관에도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성보다 두 배가량 많은 남성이 '경제적 이유'를 꼽은 것도 의미심장하다
.

결혼비용 가운데 가장 부담스러운 항목으로는 역시 남성의 81.8% '신혼주택 비용'을 꼽았다. 반면 여성들은 44.8% '신혼살림'을 지목했다
.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커지고 있다지만, ''은 여전히 남성의 몫이란 얘기다. 30대 남성들이 "결혼 준비만큼은 절대적인 을"이라고 읍소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
anckyj@cb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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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男子수난시대①] 20 ''이 없다

 

"더치페이하는 여자가 이상형"…경제력 없어도 데이트 비용은 '남자 몫' 

 

"군대 다녀왔으니 이제 진짜 남자네."

김모(22) 씨가 전역한 뒤 주변으로부터 들은 첫마디였다. 전역을 축하하며 별 뜻 없이 한 말이었겠지만, 김 씨에게 다가오는 부담감만큼은 예사롭지 않다
.

"
전역했으니 부모님 속 덜 썩이고 철 좀 들어야겠다는 생각이야 했죠. 하지만 군대 다녀왔다고 해서 갑자기 제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

대학에 갓 입학한 게 엊그제 같은데, 군대를 다녀오면 곧바로 취업 준비에 직면하게 되는 게 바로 20대 남자들이다
.

갈수록 버티기 어려운 시대상을 빗댄 '88 세대', '삼포 세대'니 하는 말들도 남자라서 더 와닿는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

인생의 가장 파란만장한 시기이기도 하지만, 그리 탈출구도 해답도 보이지 않는 시기이기도 하다
.

주변에서는 병역을 마치면 '남자 어른'이 되는 관문을 뚫은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집 안에서도 밖에서도 "얼른 사회인으로 자립해야한다"는 압박감이 느껴지는 게 현실이다
.

기껏 '알바'를 구해봐야 최저임금인 시급 5천원 수준이지만, 이제 성인이다 보니 할 것도 많다. 술은 술대로, 당구는 당구대로, 클럽은 클럽대로, 그러면서도 각종 학원은 학원대로 섭렵해야 하니 등골이 휜다
.

그나마 남자들의 세계엔 비용 분담에 ''이라도 있어 다행이다. 경제력은 거의 '제로'인데, 연애라도 할라치면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비용 부담을 도맡는다
.

류모(20) 씨는 "아무래도 남자가 밥도 사고 데이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아르바이트로 데이트 비용을 대기 바쁘다"고 했다
.

실제로 서울 시내 주요 '맛집'의 카드 결제성향을 분석해보면, 남성의 결제비율이 여성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데이트 명소로 꼽히는 지역에서는 메뉴에 상관없이 남성들의 결제비율이 압도적이다
.

비단 만남에서뿐이랴. 전모(25) 씨는 "밤마다 여자친구와 통화할 때도 남자가 걸 수밖에 없지 않느냐" "2년간 통화비를 부담하느라 휴대전화 통신사 VIP 고객이 됐다"고 털어놨다
.

한 연구소의 설문조사 결과, 남자 대학생들의 23%는 연애의 가장 큰 걸림돌로 '데이트 비용'을 꼽았다. 이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데이트 비용 분담은 '5.7:4.3'이지만, 실제로는 '6.5:3.5'를 분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그나마 이 정도는 양반이다. '10:0'인 경우도 적지 않을 거라는 게 20대 남성들의 '공분'이다. 오죽하면 "더치페이(각자내기)하는 여자가 이상형"이라는, 웃지 못할 농담까지 회자될 정도다
.

20
대 남성들의 '수난'은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남자'란 이유만으로 사회 통념상 기대되는 역할을 수행하느라 골머리를 앓는다
.

아직도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유교적 구태가 "남자 아이가"로 포장돼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데다, 남성들 스스로도 '근육' 중심의 근거 없는 우월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

강모(25) 씨가 다니는 회사에는 누구나 그 이름을 알고 있는 유명인사가 있다. 바로 '비비크림 남'이다. 누가 봐도 '패셔너블한' 그 남자 직원은 매일 출근하면 정성스레 비비크림을 바른다
.

소문은 회사 내에 조용히, 그러나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본인만 모를 뿐 '비비크림 남'이라고 하면 "~OO !"로 통하게 된 것
.

남성용 비비크림도 따로 출시되는 시대, 남자라고 외모를 가꾸지 말라는 법은 없다. 실제로 '초식남', '그루밍족'처럼 전통적 이미지와는 차별화된 남자들이 주목받는 시대다
.

남성적인 레저 스포츠나 술집을 선호하는 게 전통적인 '육식남'이라면, 문화생활과 카페를 선호하는 게 '초식남'이다
.

전통적인 남성의 이미지가 '털털함'이었다면, 이제는 여자보다 더 잘 꾸며 입고 다니는 '그루밍족'이 각광받는 것이다
.

패션과 자기 관리에 관심이 많은 김모(25) 씨도 종종 화장품 쇼핑을 간다. "군대에 있을 때 오히려 바깥 세상과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에 막사에 비치된 패션잡지를 즐겨 보기 시작했다"는 그는 "전역 후 유행에 뒤쳐지지 않게 옷을 입고 싶었다"고 했다
.

실제로 전국 남자 대학생 750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무려 84% "상황에 따라 화장을 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이 사용하는 화장품 개수도 평균 1.8개였다
.

이처럼 남성과 여성의 고유 영역은 나날이 허물어지고 있지만, 사회의 인식은 아직도 조선 시대와의 '과도기'에 머물러 있는 게 사실이다
.

"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따라가고는 있지만, 가끔은 의문이 들죠. 남자라고 해서 꼭 이래야 하나, 하는 생각요
."

한 대학생의 말처럼, 대한민국 20대 남자들은 오늘도 '소년' '어른' 사이에서 주변이 요구하는 '남자'까지 거머쥐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
soo@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