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천고개에서 내려다 본 봉천동. 멀리 관악산이 보인다. | |
ⓒ 최오균 |
봉천동 1번지는 서울시 관악구에서도 가장 높은 봉천고갯길에 있다.
예전에는 이 고개를 살피재라고 불렀다.
숲이 우거지고 으쓱하여 산 도둑들이 많이 살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봉천동이 낳은 소설가 조경란씨도 어린시절과 소녀시절 이곳에 있는 옥탑방에서 소설가의 꿈을 키우며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옥탑방이 있던 달동네는 20년 전에 사라지고 없다. 그 자리에 재개발로 수 천세대의 고층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그래서 봉천고개는 예전보다 더욱 높아졌다.
지난해 구례에서 이곳 봉천동으로 이사를 왔다.
내가 세들어 살고 있는 아파트는 봉천고개에 있는 아파트 중에서도 맨 꼭대기에 있는 12층으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서울에 가끔 볼 일이 있을 때 아이들이 살고 있는 이곳에 잠시 머물기도 하지만,
평소 아내와 나는 연천 휴전선 인근 농가에서 텃밭을 가꾸며 살고 있다.
우리 집은 거실에 앉아서도 관악산이 훤히 내려다보인다(관악산이 우리 집보다 높지만 멀리 떨어져 있어 오히려 낮게 보인다). 말하자면 전망 좋은 방이다.
비록 아파트는 낡았지만 탁 트인 전망에 하루 종일 햇볕이 들어온다.
아파트 앞에는 아직 재개발이 되지 않은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고층아파트가 그 주택가를 성벽처럼 에워싸고 있다.
아파트 성벽 뒤로 관악산이 멀리 낙타 등처럼 배경을 이루고 있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봉천동 골목길
▲ 추억을 되살리게 하는 봉천동 골목길 | |
ⓒ 최오균 |
서울에 오면 나는 베란다에 서서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주택가 풍경을 내려다보기를 좋아한다.
어쩐지 사람의 냄새가 물씬 풍겨오는 그런 동네다.
원래 봉천동은 봉천 1동에서 11동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은천동, 행운동, 보라매동, 중앙동, 청룡동, 청림동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 사연을 들어보니 달동네라는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다들 새로운 이름으로 개명을 했다고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도 청림동으로 개명을 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봉천동이라는 이름이 좋다.
봉천동(奉天洞)! '하늘을 떠받드는 동네'란 뜻을 가진 지명이 얼마나 좋은가?
새로 지은 이름들은 마치 강제로 창씨개명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어쩐지 낯설게 느껴진다.
택시 기사들도 청림동을 가자고 말을 하면 멍하니 알아듣지 못한다.
봉천동을 가자고 해야 쉽게 알아듣는다.
그래서 나에게 어디에 살고 있느냐고 물으면, 나는 봉천동에 살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대답한다.
나는 봉천동 집 오래된 주택가 골목을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곳은 상도동과 경계를 이루는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에서 바라보면 눈에 띄는 교회 십자가 탑이 줄잡아 열 몇 개가 넘는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동네여서 그럴까?
좁은 골목 담벼락에는 <미운 오리새끼>를 비롯하여 <빨강머리 앤><마지막 잎새><선녀와 나무꾼><메밀 꽃 필 무렵><피노키오> 등 유명한 세계 명작동화와 우리 전래동화 그림들이 예쁘게 그려져 있다.
낡은 벽에 어울리는 북(Book)벽을 조성해서 새로운 명소로 재탄생한 것이다.
▲ 명소로 등장한 봉천동(현 청림동) 북(Book)벽 | |
ⓒ 최오균 |
▲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봉천동 골목길 | |
ⓒ 최오균 |
이곳에 이사를 온 지 얼마 안 되어 처음으로 골목을 산책하던 날,
벽에 그려진 그림들이 어찌나 예쁘던지 한나절을 쏘아 다니며 구경을 했다.
그리고 '달동네를 세계적인 추억의 명소로'란 제목으로 블로그에 글을 쓴 적도 있다.
서울대입구역 부근의 중앙시장과 청림동으로 올라오는 골목시장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북적거려 사람냄새가 물씬 풍긴다.
나는 이렇게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봉천동이 좋다.
이 거리를 산책하다 보면 자칫 잃어버리기 쉬운 추억들이 되살아나곤 한다.
그 추억들은 현대의 바쁜 일상에서 중심을 잃은 나를 되찾게 해주는 청량제 역할을 한다.
프라하 황금소로, 포르투갈 바이루알투... 명소가 된 골목길
'디자인 서울'을 만든다고 수천억 원을 들여 만든 한강, 동대문시장, 서울시청은 서울의 명소가 될 수 없다.
그렇다고 서울의 북촌만이 명소가 아니다. 이렇게 민초들의 삶이 살아 숨 쉬고 있는 마을이 서울의 명소다.
그런 의미에서 서민들의 오랜 애환이 담긴 '달동네'를 하나쯤 문화재로 지정하면 어떨까?
꼭 봉천동이 아니어도 좋다.
이런 소리를 하면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래된 거리를 보존하기 위해 지원을 하고 관리를 잘 한다면 세계적인 명소로 탈바꿈할 수 있지 않을까?
▲ 봉천동을 예술의 거리로 조성하면 어떨까? | |
ⓒ 최오균 |
달동네에 그림, 도예, 수공예품을 만드는 예술의 거리를 조성하는 것도 좋다.
네팔의 자나크푸르(Janakpur)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벽에다 그리는 민화로 유명한 마을이다.
봉천동 마을 담장에 동네 사람들이 그린 북(Book)벽이라고 해서 세계적인 민화가 아니 된다는 법은 없다.
관악산 기슭에 위치한 대한민국의 최고 명문대학인 서울대학교와 연계하여 관광자원을 찾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전통을 고수하고 전수시키면 그것이 바로 문화재가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한다면 달동네에 사는 사람들도 자긍심과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관광객들은 결코 고층빌딩이나, 회색빛 아파트를 구경하기 위해 한국을 찾지 않는다. 그들은 파리의 라데팡스나, 로마의 신시가지도 찾아가지 않는다.
그들은 오래된 로마의 성터나 가난한 화가들의 애환이 서린 몽마르트 언덕을 찾아간다.
어두운 골목길을 명소로 탈바꿈한 세계적인 명소는 많다.
대표적으로 프라하의 황금소로를 들 수 있다.
그곳은 원래 프라하 성을 짓기 위해 동원되었던 노동자들의 숙소였다.
그러던 곳에 연금술사들이 모여 들기 시작했고,
프라하의 위대한 작가 프란츠 카프카가 황금소로의 후진 다락방에서 소설 <변신><성>을 탄생시키면서
더욱 유명한 명소가 되기 시작했다.
포르투갈 리스본의 명소인 바이루알투 거리.
이곳은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간 어부들을 기다리는 빈민가였다.
살아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애절하게 불렀던 노래가 '파두'라는 곡이다.
서민들의 슬픔을 담은 파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포르투갈 민속음악으로 탄생했다.
칠레 발파라이소의 언덕길에선 100년도 넘은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고 있다.
이 도시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칠레의 국민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살았던 곳이다.
사람들은 봉천동 고개처럼 생긴 언덕을 백년도 넘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며 추억을 곱씹는다.
중국 윈난성의 리장고성, 산서성의 평야오도 오래된 마을을 보전 관리하여 관광명소로 재탄생했다.
이런 오래된 마을에는 언제나 관광객들이 북적거린다.
▲ 100년도 넘은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는 칠레 발파라이소 | |
ⓒ 최오균 |
▲ 중국 윈난성 리장 고성. 옛거리, 복장, 집을 그대로 유지하고 살고 있다. | |
ⓒ 최오균 |
그러나 서민들의 추억이 깃든 풍경을 지닌 봉천동은 이제 창씨개명까지 하고 난개발에 의해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개발만이 능사가 아니다.
무조건 싹쓸이를 해 고층 아파트를 짓는 것은 우리만이 갖고 있는 문화와 전통을 완전히 도려내는 일이다.
보여주기 위한 민속촌보다는 사람이 실제 살며 생활하고 있는 살아있는 민속촌이 필요하다.
오래된 거리에는 스토리가 있다. 관광객들은 그런 명소를 즐겨 찾는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전시효과에 그친 '디자인 서울'보다는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달동네' 하나쯤을 문화재로 지정하여 세계적인 명소로 탈바꿈을 시키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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