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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세상이야기

[만물상]소와 사람

by 사니조은 2013. 10. 4.

 

 

 

지금도 소를 몰아 농사짓는 마을이 있다. 경남 남해 남쪽 바닷가 다랭이마을이다. 다랭이는 비탈에 만든 계단식 논 다랑이의 사투리다. 45도 경사진 산기슭 108층 계단에 680개 논배미가 들어섰다. 한 뼘 땅이라도 더 갈아보려고 석축 쌓고 고랑 일궜다. 한 배미가 세 평에서 서른 평. 농기계가 못 들어가니 소 힘을 빌려야 한다. "이러 이러(앞으로)" "워워(멈춰)" "어디에(그쪽 아니다)". 주인 말 알아듣는 소가 신통하다.

소설가 윤대녕은 어릴 적 충남 예산 할아버지 집에서 자랐다. 소 등에 올라타 개울 건너고 들을 누볐다. 밤에 무서운 꿈을 꾸다 깨면 방 옆 외양간에서 소가 푸우 하고 몰아쉬는 숨소리에 안심하곤 했다. 사촌형 대학 등록금을 대느라 소를 팔기 전날 밤 외양간 앞에서 숨죽여 우는 소리가 들렸다. 큰아버지였다. 이튿날 대문을 나서며 소는 자꾸 뒤를 돌아봤다. 윤대녕에게 소는 식구였기에 "소를 먹거리로 이야기하는 건 가슴 아픈 일"이라고 했다. 소는 태어나 열 달쯤 지나면 기둥에 묶여 불에 빨갛게 달군 쇠로 콧구멍을 뚫렸다. 거기 코뚜레를 끼우고 곧장 밭으로 나갔다. 소는 목이 터지도록 멍에를 메고서 평생 쟁기와 써레를 끌었다. 고마운 집짐승이자 소중한 재산이었다. 옛사람들은 소를 '생구(生口)'라고 불렀다. 원래 집안 하인이나 종을 일컫는 말이었다. "소는 농가의 조상"이라는 속담도 있다. 소를 조상처럼 위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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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 산골 농부 원균 할아버지에게 소는 친구였다. 암소 누렁이는 여느 소의 수명 열다섯 살을 훨씬 넘어 마흔까지 살며 밭을 갈았다. 다리 불편한 주인 싣고서 달구지를 끌었다. 귀 어두운 주인도 누렁이의 워낭 소리만은 금세 알아차렸다. 누렁이에게 해롭다며 논에 농약도 치지 않았다. 쇠고기는 입에 대지도 않았다. 2008년 누렁이가 죽어 이별하기까지 주인과 소 이야기를 담은 다큐 영화 '워낭 소리'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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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다섯 살 최원균 할아버지가 엊그제 세상을 떴다. 할아버지는 작년 말 폐암 진단을 받을 때까지 논둑 손보고 풀 베며 들일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집 아래 봉분 올려 묻어준 누렁이 무덤에서 눈시울 붉히며 한숨짓곤 했다. 가족들은 할아버지 뜻에 따라 누렁이 무덤 가까이 모신다고 한다. 누렁이 목에 달려 있던 워낭도 함께 묻어준다. 눈망울에 늘 눈물 같은 것이 끼어 있던 영화 속 누렁이가 생각난다. 소가 먹을거리로만 의미를 갖는 세상에서 죽어서도 이어지는 사람과 소의 우정에 따스한 위로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