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33차 (26구간)
<구룡령~갈곡전봉~조침령>
○ 홀로
○ 2010.5.30(일) 맑음
○ 거리 및 시간 : 21.25 km / 10시간 40분
<주요 지점별 산행 시간/거리>
구룡령 05:05 (0 km / 0 km)
1100.3봉 05:24
구룡령 옛길 05:28
갈전약수터 갈림길 06:25 (4.2 km / 4.2 km)
갈곡전봉(1204) 06:40 (1:35 / 1:35)
1107.4봉 07:38
왕승골 갈림길 08:20
연가리골 샘터 09:55 (3:15 / 4:50)
956봉 11:24
서면황이리 갈림길 13:45
바람불이갈림길 14:45
조침령 15:45 (5:50 / 10:40 : 17.05 km / 21.25 km)
* ( )안은 누계 시간 / 거리 기록 (거리는 셀파산악회 측정 거리 기준)
<산행 전 >>>>>>>>>>>>>>>>>>>>>>>>>>>>>>>>>>>
2006.3.25일 이화령부터 시작한 대간,,,
2006년도 18번,2007년도 5번,2008년도 7번,2009년도 2번,,
총 32번 다녀왔다.
그리고 올해는 첫번째 대간길,33번째 대간길이다.
참,이래 가지고 언제 대간 졸업할 지,,,
마눌이 가자고 할 때 까지를 기다려 보지만 도무지 소식이 없다.
대간 만큼은 마눌과 함께 하고 싶다.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다 술 좌석에서 대간 한번 가보고 싶다는 지인이 있어
대간 갈 날 잡고 가자고 했더니 마눌도 갈려고 마음을 다진 것 같다.
그런데 막상 갈려니 지인이 중요한 업무로 포기하고 마눌과 단둘이 가기로 계획했지만
막상 새벽에 잠을 깨우니 가지 않는다고,,,힘들다고,,,
마지막 비장의 무기인 고3 딸아이 챙기겠다고 하니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은근히 화가 나지만,,,
“나 혼자라고 갈테다”하면 따라 나설려나 했더니,,,
작전 실패다.
뱉어낸 말 물리면 나만 바보되고
쓰레기 같은 잡동사니로 가득 찬 머리 비우러 나 혼자라도 간다.
주섬주섬 배낭 챙겨 갔다 온다 말도 없이 집을 나선다.
이래서 나홀로 대간 33번째 대간길을 나선다.
새벽 1시출발,5시 도착,10~11시간 산행 후 돌아오는 것으로 계획하고,,,
네비에 구룡령 산림전시관으로 입력하고 1시반에 집을 나선다.
6번 도로를 타고 양평 지나 44번 국도 이후 지방도로로 들어서면서
완전 꾸불꾸불한 외길,,,오가는 차량 하나 없는 길을 한참 간다.
비포장 산길 도로도 나오고,,,가만히 보니 그 언젠가 마눌과 처형과 왔던 곳 같다.
이 놈이 또 여기로 데리고 와서 골탕을 먹인다.
용 9마리가 구비쳐 올라가면서 만들었다는 구룡령가는 줄 아는 지
구룡령가는 지방도로도 완전 꾸불꾸불이다.
나중에 돌아갈 일도 걱정스러워진다.
산행 하는 건 즐거우니 그렇다 치더라도 가고 오고 하는 일이 곤혹스럽다.
구룡령에 도착하니 머리가 빙빙 돈다.
새벽 5시가 안되었지만 렌턴없이도 될 정도.
구름이 구룡령 고개을 넘을려고 안간 힘을 쓰더니 힘겹게 간신히 넘어 가고 있다.
잠시 휴식을 취할려 했지만 잠도 오지 않아 밖에 나가니 습기를 머문 공기로 쌀쌀하다.
오늘 강수확율 30.
다시 차에 들어가 잠시 눈을 붙일려 하는데 미니 버스 차량 한대가 올라오더니
산악회 사람들이 내린다.
호젓한 산행을 할려고 왔는데,,,
어디로 가는 지 물어 보니 조침령 쪽으로 간단다.
이~~~~~크.
먼저 올라간다 하고 구룡령 산림전시관 도로 건너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간다.
계단 오른쪽에 보니 물이 제법 많이 나온다.큰 물받이 통도 있고.
▽ 구룡령 정상(해발 1013m).용이 구불구불 휘저으며 올라가면 만들었다는 길 답게 보통 구불구불한 게 아니다.현재 56번 국도가 지나가는 이 길은 일제때 자원 수탈의 목적으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우리 선조들의 발자취가 숨쉬는 구룡령 옛길이 여기서 1km 떨어진 곳에 있다. 사진 오른쪽이 구룡령 산림 전시관. 진고개 쪽으로 갈려면 산림 전시관 쪽으로 가야 하고,조침령으로 가려면 도로 건너 아래 사진 계단이 설치된 곳으로.
▽ 오늘의 들머리.구룡령 산림전시관 도로 건너편에 있고,계단 옆 오른쪽에 물이 제법 나온다.
<<구룡령~연가리골 샘터 <05:05~09:55> 4시간 50분>>>>>>>>>>>>>>>
구룡령 05:05 (0 km / 0 km)
1100.3봉 05:24
구룡령 옛길 05:28
갈전약수터 갈림길 06:25 (4.2 km / 4.2 km)
갈곡전봉(1204) 06:40 (1:35 / 1:35)
1107.4봉 07:38
왕승골 갈림길 08:20
연가리골 샘터 09:55 (3:15 / 4:50)
계단을 낑낑대고 다 올라 가니 선답자의 표지기와 이정표가 나를 반긴다.
조침령 21km 10시간이라고 쓰여져 있다.
여기서 부터는 평지 비슷한 길이 이어지고 약간의 내리고 오르고 한다.
오랜만의 대간길이라 기분이 상당히 좋다.
얼마 만에 보는 싱그러운 숲길인가.
온 몸을 열어 져치고 산과 하나가 되어 본다.이 기분,이 느낌,,,
역~~~쉬.대간이 좋다.
삭막한 겨울산만 보다가 싱그러운 초록 빛의 숲 속,,
오늘 하루종일 걷고 싶을 뿐이다.
▽ 계단을 다 오르고 나니 이런 이정표가 있고 여기서 부터 길이 순하게 이어진다.
▽ 20분만에 나타난 1100.3봉 삼각점
등로도 그리 힘들지 않다.
뒤로 사람들 소리가 들리는데 쉽게 앞서는 사람이 없다.
오면 기꺼이(?) 길을 내줄려고,,,
먼저 보내고 한적한 숲길을 만끽하려 했는데,,,
예상보다 늦게 선두팀이 오고 서로 인사를 하고 길을 기꺼이 내준다.
작전상 후퇴.ㅎ
그 뒤에 오는 사람도 그렇게,,,
그런데 이분들 나보다는 빠른데 죽자살자 빠른 속도로 내달리는 그런 산악회 하고는 다른 점이 있다.
그러다 보니 나와 비슷한 속도로 가다 보니 섞여서 가게 된다.
그 분들이 먼저 가 쉬고 있을 때 만나고,,,
내가 먼저 가고 또 뒤따라 잡히고,,,
오다가다 만나며 이야기 해보니 사천 00산악회라고 한다.
동향 선후배 사이,,,
12명이 지리산 천왕봉부터 여기까지 같이 올라왔다고 한다.
제일 나이 드신 분이 진갑을 지냈는데 그 기념 산행이라고 한다.
마음맞는 사람 몇 사람 모여 저리 다니면 재미도 있고 비용도 많이 줄일 수도 있어 정말 좋을 것같다.
바쁜 생활 속에 시간 맞추기가 싶지는 않겠지만 부러운 팀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사천이 어디쯤인 지 잘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삼천포가 있는 그 도시다.
나도 진주출신이지만 7살 때 올라와서 고향에 대해선 잘 모른다고 했더니
동향사람이라고 친근감을 내 비추며 식사도 같이 하자고 한다.
오늘 이 구간은 전망도 없고 오르내리막이 제법 많고 구간 거리도 길어
재미없을 것이라 생각했다.더구나 여름 때는 진드기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초록의 숲길과 반가운 만남으로 즐거운 산행,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산행이 되었다.
▽ 구룡령 고개에서 20 여분만에 도착한 구룡령 옛길.
▽
▽ 대간길에 산림청은 정말 백두대간을 사랑하는 냄새가 폴폴나고 국공파는 흉내만 내는 것 같다.
▽ 진행방향 오른쪽 영동쪽은 전체가 다 구름으로 가득하고,왼쪽 영서 쪽은 구름 하나 없다.
구름이 백두대간 길을 넘지 못해 영동쪽에 갇혀 있는 형세다.
▽ 구름이 넘실넘실,,,,구름 속 물기로 등로가 적당하게 축축하고, 풀잎에 머문 물기로 사위가 싱그럽게 보인다.
▽ 고봉을 넘을려는 구름."도전과 응전".오랜만에 생각나는 말이다.
▽ 오랜만의 푸르름이 만연한 숲속에 있으니 행복 그 자체다.푸르름,젊음,싱그러움,푸풋함,희망,,,
▽ 왼쪽 영서 쪽은 이리도 구름 하나없다.
▽ 구름 호수.
▽ 갈전 약수 감림길.
▽ 영서쪽(진행방향 왼쪽) 가칠봉,방태산 방향,,,
▽ 영동(진행 방향 오른쪽).저기 높아 보이는 봉우리가 지도상으로는 암산인 것 같은데,,,
▽ 갈전곡봉(1204.오늘 제일 높은 곳)
시골 사촌 형님 같아 별 부담이 없어지면서 대뜸 나보고 촌놈이라며 반말이다.ㅎ
지방 사는 사람이 서울 사는 사람보고 촌놈이라고 하는 것은 어째 이상하다 따졌더니
진주 출신이니 촌놈은 촌놈이란다.ㅎ
점심을 같이 하면서 오케이 홀대모에서 사니조은이라고 했더니 내가 쓴 산행기을
읽어 본 적이 있다고 한다.나중에 알고 보니 이 분도 1+9를 끝냈다 한다.
5시간 예상하고 온 연가리골 샘터에 4시간 50분 걸어 도착하니
산악회 사람들이 여기서 점심 식사를 할려고 준비 중에 있다.
시간은 오전 9시 55분.
이 분들을 만나 너무도 화(?)사한 식사를 하게 된다.
산중에서 손님 대접 받는 셈이 되어 버렸다.
자신들 보다 나를 먼저 챙겨 오히려 내가 더 풍성한 식사를 한다.
술도 여러가지,,,담금 술,,고량주,,,ㅎㅎㅎ,
이분들도 이렇게 화(?)사한 만찬은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없었다고 한다.
높은 곳에 무거운 짐 지고 올라와서 낮선 이에게 쉽게 먹거리를 내놓는 것,,,,
쉽지 않다.받는 사람도 부담되고,,,
그러나 서로 마음을 열면 누구나 쉽게 십년지기처럼 친해 질 수 있는 것이
산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하여간 덕분에 화(?)사하고 풍성한 점심,,,
감사합니다.
▽ 이런 계단, 제일 싫다.이 거 만든 사람들, 이런 길 한번이라도 다녀 봤나 모르겠다.
▽ 사천00산악회 길잡이 역활(왼쪽)을 하시는 분인데 1+9 졸업하신 분이라고 한다.
나물에 대한 조예도 쾌 깊은 듯,,,
▽ 양양 서면 방향.
▽ 요게 당귀라고 한다.사약 만드는데 사용했던 개당귀도 비슷하게 생겼다고 한다.
우리 조상님들은 못먹는 것은 모두 접두사 "개"자를 썼나 보다.개꽃,개당귀,,,,,,개고기는 good,,,ㅎ
▽ 지도상 없는 삼각점인데 이곳의 전망이 좋다.
▽ 뭔산인 지 몰라도 산세가 제법이다.
▽ 이 산악회는 다른 산악회와는 다른 점이 많다.이런 산악회 있으면 따라 다닐텐데,,,부럽다.
▽ 오늘 이 구간에는 이렇게 편히 쉴만한 곳이 많다.
▽ 조경동(아침가리)와 왕승골 갈림길(안내판이 있지만 등로상태을 알수없고,거리가 제법 될 것 같아 탈출구로는 어떨지는 모르겠다.)
▽ 백두대간에 대한 안내판이 점점 내용이 제법 알차게,그리고 정확하게 설명되어 있어 기분이 좋아진다.
이젠 제발 태백산맥 뭐 어쩌고 저쩌고 그런 안내판이 백두대간 길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 오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는 묘.(평해 손씨묘).주변에 둥글레가 많다.
▽ 전망이 좋았던 968봉
▽ ???
▽ 가야할 대간길.저 앞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가야 한다.
▽ 가는 길에,,,산 전체에서 느끼는 묵직한 느낌이 느껴진다.
▽ 연가리골 샘터(진행 방향 왼쪽,230걸음)가 있는 곳,오늘 점심 예정 장소였던 이 곳에서 저분들과 함께,,,
<<연가리골샘터~조침령 <09:55~15:45> 5시간 50분>>>>>>>>>>>>>>>>
연가리골 샘터 09:55 (3:15 / 4:50)
956봉 11:24
서면황이리 갈림길 13:45
바람불이갈림길 14:45
조침령 15:45 (5:50 / 10:40 : 17.05 km / 21.25 km)
230여보 걸음만 하면 갈수 있는 샘터를 다녀 오려고 했더니
촌놈이라 부르는 선배분이 가지 말라고 한다.
좋긴 좋은데 보면 나면 다음에 안 올 것 아니냐며,,,ㅎㅎㅎ
그래,볼 것이 있어야 담에 오지 않겠는가,,,
채우기보다는 여백을 남겨두는 것도 괜찮으리라.
연가리골 샘터 이후 전망은 그리 없다.
하지만 오늘 산행 내내 전망이 없어도 숲이 주는 즐거움만으로도 충분히 하루종일 걷고 싶다.
별로 피곤한 것도 모르겠고,,,
내침 김에 단목령까지 더 연장해서 갈까,,,라는 생각도 해 본다.
하지만 아직은 5시간은 더 가야 한다.
언제나 그렇 듯 초반에 기세등등하다가 막판에 혀빠진 것이 어제 오늘인가,,,
연가리골 샘터에서 한시간반을 오르내리니 956봉이라고 쓰여진 코팅된 안내판이 보인다.
숲이 우거져 보이질 않아 숨을 고른 후 출발,,,
오후에 비가 올까 걱정했는데 점점 더워진다.
시간은 11시간 좀 넘은 시간.
이름없는 봉우리엔 나무의자들이 설치되어 있어 간간히 쉬어간다.
안내판이 설치된 곳에는 좌표가 표시되어 있어 점점 디지털화 되어가고 있다.
나를 촌놈이라 부르고 1+9를 끝낸 분과 같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진행하니 힘든 지도 모르게 진행한다.
홀로 산꾼으로 대간과 정맥을 다니며 느끼는 호젓함과 어려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오가니 재미도 있을 뿐더러 서로 친밀감이 더해진다.
연가리골에서 3시간 50분,956봉에서 2시간20여분이 지난 시간쯤에 어느 안부에 도착한다.
우측으로 서면 황이리 갈림길,좌측으로는 진흑동으로 가는 길이라고 알려주는 안내판을 만난다.
우측 황이리 쪽으로는 거리가 2km,,,등로를 보니 확실한 것 같다.
거리도,등로 상태도 탈출구로는 괜찮을 듯 싶다.
좌측은 진흑동으로 가는 길이라고 한다.
진흑동으로 가는 방향엔 거리도 없고 등로상태도 좀 희미하다.
▽ 956봉
▽ 다른 산악회와 달리 저런 여유로운 산행을,,,
▽ 늘 빈손으로 다니다 산에서 만난 산악회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아 보긴 처음입니다.아침 간식+식사+또 간식으로 ㅎㅎ.
▽ 서면 황이리 갈림길.오른쪽으로 2km 가면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또 30여분 더 진행하니 둥근 나무 의자와 긴의자가 있는 쉼터가 나온다.
이곳에는 이런 시설이라도 그나마 있으니 기분 조차 좋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또 무릎에서 신호가 온다.
힘들지는 않으나 무릎이 아파온다.
천천히 따라 가겠다고 하고 사천 선배분을 먼저 가시라 한다.
그런데 그게 이별이 되어 버렸다.
감사한 마음도 제대로 못 드린 체로,,,
저 멀리 조침령과 연결된 도로가 보이지만 한참을 가야 한다.
무릎도 아프고 좀 쉬어가고 싶다.
하지만 분명히 나를 기다릴 것 같아서 힘내서 진행해 보기로 하지만 속도가 나질 않는다.
가다 사람소리가 나서 가보니 사천 산행팀이 아니고
남자한분과 여자두분이 이 근처 어딘가에서 올라온 모양이다.
나에게 어디로 왔냐,어디로 가느냐 묻는다.
나는 지나간 사람들을 못 봤냐,지나 간지 얼마나 됐냐고 물어보니 15분 전 이라고 한다.
힘내어 빨리 가려 하지만 그게 잘 안된다.
사진으로 많이 보던 나무다리가 나온다.
조침령에 다 왔다 생각이 들었다.
넓은 임도가 나오고,,,
그런데
안내판도 있고 방향 표지 안내판도 있건만,,,
임도에서 오른쪽으로 더 가야 조침령 표지석이 있는 목적지인데,,,
아마도 산악회팀이 그쪽에서 갔을텐데,,,
뭐에 홀렸는 지 몰라도 임도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로 내려간다.
▽ 조침령 도로인 듯,,이제 오늘의 산행도 끝이 나나 보다.힘들지만 재미있었던 끝이 아쉬운 산행.
▽ 은방울 꽃밭
▽
▽ 바람불이 갈림길.아마도 쇠나드리,,,예날 조침령???
▽ 조침령이 다왔음을 알려주는 나무다리
▽ 가칠봉,,진동리 방향
▽ 이 나무다리 지나 만나는 임도에서 오른쪽으로 10여분 더 진행해야 하는데 아무 생각없이 임도 왼쪽으로 내려 와 버렸다.
▽ 이쪽으로 가야 했는데,,,
▽ 밑으로 내려 가 버렸다.이쪽으로 내려가니 현리-진동리 쪽 조침령 터널로 빠진다.
▽ 저기 저 표지판에도 조침령 가는 화살표로 분명히 방향을 알려주고 있는데도 왜 난 반대 방향으로 갔는지,,,알 수가 없다.
임도에 곰취 비슷한 나물 몇 잎 떨어져 있어 사천분들이 떨어뜨렸나 생각하며 내려간다.
그런데,,,
한 10여분 떨레떨레 내려가다 뭔가 자꾸 뒤에서 땡기는 듯한 느낌이 들어
지도를 유심히 들여다 본다.
조선일보 백두대간 지도를 봤지만 잘 모르겠고,,,
아까 본 방향 안내판,,,
디카에 찍어 둔 사진을 확대해서 보니 아뿔싸 조침령은 더 가야 하나 보다,,,
이런,제~기~럴
다시 올라간다.
좀 올라가 보니 아까 산중에서 만난 남녀팀을 만난다.
만나 물어 보니 내려간 길로 내려가면 터널이 있단다.
오~잉.
그래서 같이 또 내려간다.
손에 보니 당귀가 있다.
그래서 당귀와 개당귀에 대해 알려주고 자신없으면 버리는 것이 어떠냐 하니 망설이다 결국 버린다.
이 분들은 근처 바람쐬러 왔다가 얼마전
부녀가 음식점을 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가 인간극장에서 나왔는데 그게 생각이 나서 왔단다,,,
참,대단하다.
임도를 나오니 좌측 편으로 그 음식점이 보인다.
우측편으로는 조침령 터널도 보이고,단목령 들어가는 길도 보인다.
나중에 다시 집에 와 보니 조침령 표지석이 있는 곳은 저 반대편 터널에 있다.
조침령 터널 양쪽 모두 조침령 올라가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서울에서 왔다기에 구룡령까지 태워주면 안되겠냐고 했더니 태워준단다.
오~우~케~이.탱큐.
이로써 오늘 히치까지 성공하나 싶었는데,,,
서울로 네비를 찍고 가는데 한참을 가도 구룡령이 나올 생각을 안한다.
이상하다 싶어 내려 동네분에게 물어보니 반대편으로 왔단다.
차에서 내려서 보니 지난번 한계령~단목령 구간 할 때 왔던 현리다.
마을 분이 여기서 구룡령까지 갈려면 택시로 한시간이 넘게 걸린단다.
차 태워 주신 분도 당황해 하며 미안해 하고,,,
미안할 것 없으며 알아서 갈 테니 걱정말라 하고 서울분을 보냈다.
택시를 부를려 하니 택시비가 쾌나 될 것 같다.
까짓것,
시간에 억매일 필요는 없으니 히치해서 갈 때까지 가 보자,,,
뜨거운 햇살이 내리 쬐는 아스팔트 위에 차량 통행이 별로 없다.
다행히 캘로퍼 차량 한대 오기에 손을 흔드니 태워 주시는데 10km 정도 밖에 안 간다고,,,
그 다음 UV를 가진 젊은 분,,,도로 공사 현장에 있고 숙소로 가는 중,,,
또 그 다음,그 분도 도로 건설 현장에 다니며 속초로 사람 만나러 간단다.
이리하여 3번의 히치 끝에 구룡령이 있는 56번 국도상 까지 운좋게 잘 온 것 같다.
한시간 걸려서 여기 온 셈이다.
그러나 히치의 운도 이만,
구룡령 가는 차편 대부분 이 근처 마을까지만 가는 차량이고
구룡령을 넘어 가는 차량은 정말 드물고 차도 태워주질 않으려고 한다.
한참을 시도하다 결국 둥지산장 사장님에게 전화한다.
꾸불꾸불한 길을 올라간다.
둥지산장 사장님은 현재 딸과 함께 산장 운영 중이고
현재 연세가 76인데 반은 서울서 살다 이곳으로 들어와 반 사셨다고 한다.
왜 서울에서 이곳으로 오셨냐 했더니 복잡한 서울이 싫어서 여기로 들어와 고생 많이 했다고,,
나보고 이름이 뭐냐고 묻으시길레 이름보다는 닉을 말씀드리니 잊지않겠다고 하신다.
택시비 25,000드리고 고맙다고 하시면서 잘 쓰겠다고 하신다.
구룡령에서 서울갈려면 동홍천IC로 가는 것이 좋다고 하시기에 그길로 왔더니
올때처럼 덜 고생하고 집으로 왔다.
집에 도착하니 마눌이 미안했는 지 닭도리탕을 해놓고 기다리고 있다.
소주한잔 걸치고,,,,ㅎㅎㅎ.엄청 먹어댄다.그 다음날도.
이렇게 해서 33번째 대간길을 마치고
집에 와서 산악회 명칭이 떠오르질 않는다.
인터넷을 뒤졌지만 알 수가 없다.
산중에 전화번호나 산악회 명칭을 적어두는 건데,,,
요즘은 머리에 외울려고 해도 금세 잊어버리고,,,
에구, 이 머리통 바꿀 수 없나.
▽ 숨은 그림 찾기.바람개비 찾아보기.
▽ 이 임도를 따라 내려 가니 조침령 터널이 나온다.
조침령 터널을 기준으로 한쪽 끝은 인제군쪽(진동리)이고 한쪽 끝은 양양군쪽(구룡령이 있는 56번 국도가 있는)이다.
구룡령~조침령 구간 계획하면서 인제군쪽(진동리) 쪽에서 조침령 올라가는 길이 분명 있을 것 같은데 산행기에서는 못봤는데 오늘 그 길을 경험한 셈이다.
▽ 내려오니 오른쪽에 조침령 터널이 있다.사진의 전경은 임도 내려와 왼쪽 방향(현리).
얼마전 인간극장에서 나온 아빠와 딸이 식당을 운영하는 음식점이 이곳에 있었다.
▽ 도로 알바 중.
▽ 현리에서 3번에 거쳐 히치하여 간신히 도착한 56번 국도(직진:양양이고 왼쪽으로 가면 조침령 터널 방향,뒤쪽으로는 구룡령)
▽ 저 앞 높은 쪽이 구룡령인데 구룡령으로 가는 차는 별로 없어 히치 실패,,,둥지산장님 택배로 구룡령으로,,,택시비 25,000 드렸다.
▽ 저 앞에 계신 분이 집주인인데 히치하려는 나를 보더니 추워보인다고 집에 들어가서 차나 한잔 하라 권했지만 갈길이 멀어 정중히 사양했다.
그래도 객에게 주신 정에 감사드립니다.
구룡령~조침령 산행 참고 사항 >>>>>>>>>>>>>>>>>>>>>>>>>>
1. 들머리는 구룡령 산림전시관 앞 계단
2. 셀파 실측 거리는 21.25km 거리이며,보통 10시간 소요됨
3. 구룡령은 56번 국도상에 있는 고개이며,조침령에도 포장 도로가 있어 접근하기가 편함 (조침령에서 구룡령 가는 차편이 드물어 일반 차량 히치하기가 쉽지는 않았음)
4. 조침령 터널 양쪽(진동리/양양 방향)에 접근로 모두 있음
5. 오르고 내림의 고도차는 700~1200임
6. 중간 탈출구가 중간 중간 있음(탈출구 등로/거리는 타산행기참고)
7. 구룡령 계단 옆 / 연가리골 샘터 등에서 취수 가능
8. 전 구간 표지기가 많아 주의 진행하면 별 어려움이 없지만
일반 산행 등산로 있는 곳(갈곡전봉 등)에서 주의 진행
9. 택시 : 둥지민박 011-378-1159 à 민박하면 저렴하게 이용 가능
* 양양 택시를 이용해도 되지만 왕복 택시비를 받음
* 승희민박 전화번호 033) 434-9453
* 두메산골 민박집 011-375-7844
<교통편> 자차 왕복 380km
갈때 : 집(01:40 출)à6번à44번à451à446à56à구룡령(04:40 착)
올때 : 구룡령à56à동홍천ICà구리ICà집
<준비물>
먹거리: 점심 + 간식(가래떡 약간)
물 : 약 2.5 리터 (1000ml: 2병 + 500ml 1병)
휴대품 : 수건,장갑,스틱,지도(1:50000 조선일보 백두대간 제공)
기타 : 건전지(디카),휴지,비닐봉지(쓰레기)
<소요경비> 약 9만원
유류비(380km/ 5만),톨비(7300+900),택시비(25,000) 기타 잡비
인터넷에 퍼온 자료입니다.>>>>>>>>>>>>>>>>>
구룡령/九龍嶺
높이 1,100m, 양양에서 서남방 100여리에 걸쳐있다.
도로가 대단히 높고, 험하며 계곡이 많다.
홍천, 횡성으로 통하는 신작로로 1874년 개통되어 현재 국도 56호선으로
임산물 반출 및 한계령과 더불어 영동과 영서를 잇는 관문이다.
구룡령이라 함은 령 정상에 오르려면 99곡의 우회를 한다는 데서 유래되었고,
청룡, 황룡 두 폭포와 불바라기약수로 유명하다.
또한 가을철에 계곡 가득한 단풍은 구룡령을 찾는 이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다.
구룡령에 관한 자료<서재철 녹색연합 국장>
구룡령 옛길(들머리인 갈천분교)은 백두대간에서도 가장 산림이 울창한 지역인 설악산과 오대산의 허리에 위치한 대표적인 옛길이다. 홍천군 내면 명개리와 양양군 서면 갈천리를 연결하는 구룡령은 영동과 영서 사람들이 설악산·점봉산·오대산 등 백두대간 장벽으로 나뉘어 산지와 해안 지역을 오가는 것이 힘들었던 시절 두 지역을 연결해주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영동 북부 양양·속초 등지에 살았던 이들은 한계령·미시령·진부령보다는 주로 구룡령을 통해 홍천이나 평창으로 다녔다. 고속도로를 내면서 옛길을 곳곳에서 토막내는 바람에 원형이 많이 사라진 한계령·미시령·대관령 등에 비해 구룡령 옛길은 백두대간의 영서와 영동을 연결하는 옛길 가운데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전돼 있는 길로 꼽힌다.
구룡령 옛길은 우리 사회가 옛길을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구룡령의 지명과 위치가 현재 잘못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지리에 밝고 산을 잘 안다는 사람들조차 구룡령의 옛길은 모른다. 대부분이 구룡령 하면 지금 차가 다니는 56번 국도가 넘나드는 고개를 원래의 구룡령길이라 생각한다. 이 도로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자원 수탈 목적으로 구룡령 고개에서 1km가량 떨어진 곳에 개설한 비포장도로가 지난 1994년 포장된 것이다. 일제 당시 일본인들이 지도에 원래의 구룡령의 위치가 아닌, 차가 다니는 비포장도로를 구룡령으로 표기하면서 사람들은 구룡령의 위치를 잘못 알기 시작했다. 더욱이 94년 이후에는 모든 지도와 행정 표기에서 구룡령의 위치가 현재 차가 다니는 지점으로 정리됐다. 백두대간을 연구하고 관리하는 정부나 민간단체, 학자들조차 구룡령길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구룡령 옛길에는 조상들이 어떻게 길을 다녔는지를 보여주는 원형이 남아 있다. 요즈음 사람들은 영서와 영동을 차로 넘으면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백두대간의 험한 지형을 실감한다. 그래서 이런 급경사의 산지에서 말이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길을 걸어보면 구룡령 옛길에서 노새와 조랑말 등이 큰 등짐을 지고 다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게 된다. 그만큼 옛길은 힘겨운 고개를 가장 힘이 덜 드는 형태로 만들어놓았다. 비탈길이어도 최대한 경사를 누인 길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은 누군지도 모를 옛사람들의 지혜가 세월과 함께 쌓인 덕분이다. 어떤 빼어난 등산로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자연 속에 파고드는 절묘한 흐름이 길 구석구석에 배어 있다. 숲과의 조화가 자연스럽고 깊다는 점은 걸어보면 단박에 느껴진다. 똑같은 고도의 등산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여유가 길에 묻어 있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등 큰 산의 등산로를 오르다 보면
주변의 숲을 감상하기 어려운 비탈과 고빗길이 수없이 펼쳐진다. 그래서 산쟁이들 가운데서도 발품이 노련하고 옹골진 이가 아니면 대부분 숲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못하고 정상으로 오르기에 바쁘다. 하지만 구룡령 옛길은 숲의 모습을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다. 옛사람들은 요즘 일부 등산꾼들처럼 싸우는 듯이 산길을 걷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차피 갈 길이니 최대한 여유 있고 천천히 걸음이 이어지도록 길을 냈던 셈이다. 그러다 보니 숲의 원형이 훼손되지 않으면서도 다니기에 편안한 길이 되었다. 선조의 경험과학이 녹록지 않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솔반쟁이, 묘반쟁이, 횟돌반쟁이…
구룡령 옛길에는 굽이굽이 민중들의 꿈과 희망, 아픔과 좌절도 녹아 있다. 특히 일제시대 때 숯을 구웠던 재탄장과 함께 철광의 흔적이 남아 있다. 농경사회의 시작과 함께 철기문화가 열리면서 양양 일원으로 공급한 철로 만들어진 농기구의 원재료를 구룡령의 옛길 한쪽에서 생산해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철을 캐던 동굴이 그대로 남아 있다. 광산이 일제 강제수탈의 현장이었던 점도 흔적을 통해 확인된다.
숲으로 펼쳐진 구룡령 옛길의 또 다른 상징은 금강소나무다. 1980년대 말 경복궁 복원 과정에서 많은 금강소나무가 베어진 뒤 국내에는 금강소나무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드물다. 무리를 이룬 200~300년 된 금강소나무들의 붉은 기운이 하늘로 뻗어 있다. 굵은 금강소나무의 표본인 곳이라 해 ‘솔반쟁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젊은 청년 죽은 터는 ‘묘반쟁이’, 장례식의 하관 때 회다짐을 하기 위해 쓰던 횟가루를 생산한 곳이라는 뜻의 ‘횟돌반쟁이’ 등의 지명도 남아 있다.
<조침령에 관한 참고 자료>
조침령은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 [반평고개]라고도 불리는데, 북으로 점봉산, 남으로 갈전곡봉으로 이어지며,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와 양양군 서면 서림을 넘나드는 고갯마루이다. 조침령은 원래 소금을 지고 오르던 길이었지만, 일제시대에는 자원 약탈을 위해, 維新時代에는 고관대작의 정원 조경수와 원석을 실어 나르는데 이용되었다고 한다. 1983~1984년 3군단 공병여단에 의해 정비되었다. 주변에 이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석이 있다. 현재는 조침령 아래로 터널이 뚫려 있어 일반 차량은 거의 이용하지 않는 추억의 길이 되었다. 최근 건립된 표지석에는 '새도 쉬어 넘어간다'는 뜻의 鳥寢嶺으로 새겨져 있으나, 산경표에는 '고갯길이 험하여 무리지어 자고 넘어가는 고개'라는 의미의 曹寢嶺으로 표기되어 있다.
쇠나드리(옛 조침령)이다. 쇠나드리는 옛 선조들이 인제군 진동리와 양양군 서면을 오고가며 넘어들던 산길로일명 바람불이 또는 風趣洞이라 한다. (중략) 황소까지 날려 보낼 정도로 바람이 세차게 불어댄다고 해서 유래했다는 쇠나드리 마을이다.
<조경동/아침가리>
《정감록(鄭鑑錄)》에 <삼둔사가리>라는 글귀가 나오는데, 둔이란 펑퍼짐한 산기슭을, 가리(거리)란 사람이 살 만한 계곡가로서 난리를 피해 숨을 만한 피난처를 뜻한다. 홍천군 내면의 살둔(생둔), 월둔, 달둔과 인제군 기린면의 아침가리, 연가리, 적가리, 명지거리(결가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아침가리란 아침에 밭을 간다는 뜻으로 아침갈이라고도 하며 지도에는 한자어로 조경동(朝耕洞)이라 표기되는 곳이다. 한때 화전민들이 살았지만 지금은 폐교된 방동초등학교 조경분교와 텅빈 마을만이 옛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참고 자료>
우리 역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옛길은 영남대로와 호남대로 등이다. 이 길들은 삼국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우리 땅의 주요 축선이었다. 영남대로는 서울 남대문을 나서면서 시작돼 문경새재를 넘어 부산 동래까지 이어지는 길로 조선시대의 관리, 장사꾼 등 한양으로 올라가는 이들에게 필수적인 도보 교통로였다. 이런 옛길 가운데서도 가장 이질적인 문화가 교류했던 곳이 바로 태백산에서 금강산 너머 원산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고갯길이었다.
이 길을 통해 영동 지역의 소금과 미역 등 해산물과 영서 지역의 곡식, 임산물 등의 교류가 이뤄졌다. 일제 강점기까지 생활의 많은 부분을 자연산물에 의지하던 시절 바닷가의 산물이 주를 이루던 영동과 산림의 산물이 주를 이루던 영서가 오갔던 이동통로가 바로 백두대간의 고개였다. 특히 이 고개는 영동 사람들이 한양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로였다.
이 가운데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길이 대관령 옛길이다. 대관령 옛길은 고속도로가 뚫렸지만 그래도 옛길의 역사가 일부 남아 있는 편이다. 하지만 백두대간의 나머지 주요 옛길은 포장도로와 함께 그 문화와 역사도 거의 다 사라졌다. 삼척의 댓재, 백봉령, 삽당령, 닭목재, 진고개, 한계령, 미시령, 진부령 등 대부분의 고갯길은 옛길의 흔적이 바랜 지 오래다. 이제는 사연과 이야기마저 가물가물하다.
지리산에서 비무장지대 삼재령까지 약 700km에 달하는 백두대간 가운데 옛길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차를 타고 넘을 수 있는 백두대간 고갯길만 헤아려도 70여 곳이다. 최근에는 속리산 자락의 밤재와 점봉산의 조침령에 포장도로가 개설됐다. 이화령에는 4차선 국도가 있는데도 그 옆에 다시 고속도로가 뚫렸다
사니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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