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4차
<애미랑재~칠보산~한티재>
○
○ 마눌과 함께
○ 거리 및 시간 : 도상거리 18.5 km / 8시간 35분
애미랑재-<2.3km>-칠보산-<6.5km>-884.7m봉-<6.0km>-612.2봉-<1.0km>-길등재-<2.7km>-한티재
○ 교통편 : 자차(편도 280km,왕복 560km)
갈때: 집(
931à36à35à31à36à917à애미랑재(갈때는 역순)
○ 답운치~애미랑재 구간 산행을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1. 풍기IC가 애미랑재와 가까운 IC이지만
풍기 IC에서 애미랑재까지80km(?) 가까이 도로 상태가
별 좋지 않은 국도와 지방도를 이용해야 함으로 예상보다는
도착시간이 늦어 졌음(2시간 반 예상à3시간 반 소요)
2. 애미랑재에는 들머리,날머리가 서로 고개 반대편에 있음
애미랑재à답운치 방향 들머리에 냇가가 있음
3. 새신고개와 깃재는 산중의 안부에 해당하는 고개,탈출구로는 부접합
4. 애미랑재,길등재,한티재는 도로포장이 되어 있었으나
애미랑재와 길등재는 차량통행이 드물고,
한티재는 양쪽 모두 차량이 많은 도로임
5. 표지기도 많고 길이 확실해서 주의해서 진행하면 알바 위험은 많지 않음
○ 준비물
먹거리: 점심(김밥 4줄) + 기타 먹거리(컵라면 1,삶은계란 4,초코파이)
+ 물 3리터 (더운물 1리터 포함)
기타:수건,장갑,스틱,지도,비상약품(밴드+스프레이파스,신경근육이완제),
디카 건전지(핸폰,디카,헤드렌턴),휴지,비닐봉지(쓰레기)
○ 소요 경비 : 약 12만
주유비 7만,톨비 18,000만(9,000*2),김밥4800(1200*4)+잡비2만
○ 주요 지점별 산행 시간/거리 :
<산행기 >>>>>>>>>>>>>>>>>>>>>>>>>>>>>>>>>>>>>>>>>>>>>>>>>>>>>>>>>>>>
오늘은 모처럼 마눌과 같이 가게 된다.
약 8시간 정도 예상하고,,,
5월 중 예정인 대간 구간 조침령~구룡령을 가기 위한 예비 연습용 산행이다.
물론 내 혼자 만의 생각이고 계획이다.
마눌은 요즘 힘들다며 긴 산행은 잘 하지 않으려고 버팅기고 있는 중이다.
대간 다니며 그나마 길러놓은 다리 힘 다 풀어지면 대간 졸업도 힘들겠다.
새벽 4시쯤에 간신히 일어나 준비하고 출발하니
편도 280km,,,
혼자 대중교통 이용하다가 오랜만에 차를 가져가니 힘이 든다.
대간 다닐 때 이 보다 훨씬 더한 거리를 내달려도 그러지 않았는데,,,
사람이 이토록 간사하다니,,,
네비가 풍기IC에서 빠지라고 한다.
아직 갈길이 80km나 남았는데,,,
이리저리 네비가 이끄는대로 가보니 시간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지체된다.
풍기IC에서 아침식사를 할려고 잠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먹을 만한 적당한 곳이 없어 점심으로 사온 김밥 2줄로 아침을 대신하고
애미랑재에 도착하니
2시간반 예상했는데 1시간이 더 걸린 셈이다.
▽ 답운치,애미랑재 가기 전에 있는 옥방휴게소.매점도 있어 편리하다.
▽ 휴게소 옆 냇가
▽ 애미랑재-->한티재가는 들머리
애미랑재-->답운치가는 들머리는 저 고개 너머에 있고 그곳에 물이 쫠쫠쫠 흐르는 냇가가 있다.
<<애미랑재~칠보산~깃재 <
급경사로 깍아낸 절개지를 올라가는데 첫걸음부터 여간 발이 무겁지 않다.
애미랑재를 절개하지 않고 터널로 만들었다면 나도,이곳 주인인 동물들도 편했을텐데,,,
깍아지른 절벽 절개지로 동물의 이동은 불가능하게 되어 버렸다.
헉헉대며 올라가니 작은 봉우리 하나 나오고 약간 우턴해서 왼쪽을 보니 칠보산이 보인다.
저번 산행때 뾰죽하게 그토록 높게 보이던 칠보산,,,
그 칠보산이 그리 높게 보이지는 않지만 반시계 방향으로 크게 휘돌아 간다.
칠보산에 도착하니 애미랑재에서 1시간 15분이 걸린다.
칠보산에서의 전망은 잔가지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다만 삼각점과 빨간색으로 쓰여진 작은 칠보산 안내판이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어디로 어떻게 길이 이어지는지 어디로 가는 지 방향을 잡기가 힘들다.
4월초,,,
생명의 숨결을 느껴야 할 때이지만 사방 어디에도 눈을 즐겁게 해주는 꽃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다.
복수초,생강나무,,,모두 어디로 갔나.
▽ 애미랑재에서 30분 낑낑대고 올라와서 보이기 시작하는 칠보산
크게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간다.
▽ 애미랑재에서 1시간 15분 걸려 올라온 칠보산 삼각점
▽ 칠보산에서의 보물은 어디갔는 지,,,전망도 없더라.
▽ 어디로 흘러가는 지 알수는 없지만 한참 내려간다.
▽ 4월이건만 봄의 생기를 아직 느낄 수가 없다.
올해는 유달리 긴 겨울이다.
3월에도 폭설이 내리지를 않나,,,
어려움을 견디고 봄을 기다리는 새싹이 없지 않듯이
인간만이 만들 수 있는 감동적인 이야기도 많을텐데
주위엔 온통 들리는 거라고 우울한 이야기 거리 뿐이다.
그렇다고 귀 닫고,눈 감고 살 수도 없고,,,
정신 건강은 스스로 챙겨야 할 수 밖에,,,
이런 생각으로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지 않나 싶다.
뒤를 돌아 보거나 좌측을 보면 칠보산이 보인다.
일곱가지의 보물,,,
내가 가진 것에서 중요한 일곱가지는 뭔가라는 생각해 본다.
오늘 산이 주는 즐거움은 별로 없다.
단지 산과 같이 호흡한다는 것 외,,,
새싹의 생명력도 없고
꽃이 주는 화려함도 없고
전망도 없고
바닥엔 낙엽이 잔뜩 쌓여 먼지만 폴폴 날리고
새소리도 별로 없고
주위엔 온통 바람에 꺽여진 나무들이 어수선하게 널부러져 있고
밑둥이 빠지거나 꺽여진 덩치 큰 나무들이 길을 가로 막고 있다.
마주치는 사람도 없고
오르고 내리고 또 오르고 내리고,,,
마눌은 좀 가다가 벌써 힘든 지 얼굴이 편치 않다.
이러다 오늘 계획대로 될 런지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새신고개는 어디 있는 지 모르고 지나쳤다.
나중에 산행기와 사진 비교해 보고 나니
아,,,그 곳이 새신고개였구나 하였다.
오름길이 있으면 오르고
내리막길을 있으면 내려가고,,,
그러다 앞에 10지춘양목이 나온다.
10지 춘양목을 또 못보고 지나가면 어쩌나 했는데 길가 옆에 바로 있어 그럴 염려는 안 해도 될 것이었다.
옛말에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라는 말이 있다.
정말 살면서 실감나게 느끼는 말이 아닐까 싶다.
자식이 많아서,돈이 많아서,가진 것이 많아서,,,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바람 잘 날 없어도 돈 한번 실컷 써 봤으면,,
돈에 구애 받지 않고 살아 봤으면,,,ㅎㅎㅎ
행복의 총액은 같다고 누군가 이야기하지만 과연 그럴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돈 많은 부자와 마음 넉넉한 부자,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요즘은 너무 많은 정보와 사고 사건들
너무 빠르게 진화하는 물질문명의 이기(利器)들
단순하게 살고 싶은 욕망은 모두에게 있지만 버리는 것,쉽지 않다.
무소유를 강조하시던 법정스님이 3월 11일 입적하셨다.
종교는 없지만 법정스님은 많은 사람들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해 오신 분이 아닌가 싶다.
몸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지만 그 분의 가르침은 이 세상에 계속 남아 있으리라,,,
10지춘양목에서 30여분 더 가니 표지기가 많이 달린 곳이 나온다.
깃재라 쓰여진 표지기 마져 없었다면 깃재 인 지도 모르고 지나쳤을 텐데.
좌우로 길이 나있는 듯하지만,,,탈출구로는 별로 인 듯하다.
애미랑재에서 깃재까지 3시간반 정도 예상했었는데
3시간20분 소요되었다.
▽ 이곳이 새신고개인데 모르고 치나치고 만다.
▽ 아직은 삭막하기만한 길,,,화사한 꽃,생기를 느끼게 해주는 새싹들이 없어 아쉽기만
▽ 만남
▽ 칠보산을 지났건만 좌측을 보거나 뒤를 돌아보면 한참을 따라온다.
▽ 묘인것 같은데,,,한 가운데 나무뿌리가,,,
▽ 나무의 속과 겉
▽ 어딘고?
▽ 세월을 느끼게 하는 소나무들이 자주 보인다.
▽ 그대는 뉘신 지.
▽ 별 특징없는 길,,,내리막길이 있으며 내려가고 오름길이 나오면 올라갈 뿐.
▽ 일원산 방향
▽ 십지춘양목,,,금강송,황장목,적성목,춘양목,,,,유명하다 보니 여러가지로 불린다.
▽ 가지 많은 나무 바람잘 난 없건만 그래도 십지춘양목이 이런 꼴 면한 건 그 나무의 위세에 눌린 탓일까.
일본넘들이 송진 채취를 위해 이리 했다고 한다.
↑ 소나무를 자르고 난 뒤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면 뿌리 부분에
이를 송근이라고 하며,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송근으로 만든 기름 ‘송근유’를 항공기 기름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송진을 대량으로 채취하기 위해 소나무에 제초제를 주입하면 그 부근에 다량의
소나무가 제초제에 저항하기 위해 송진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 좌우의 산세들이 만만치 않다.
▽ 어디갈려고 또 그리 내려가는 지.아이구 다리야.
▽ 쉬었다 가슈
▽ 깃재
▽ 요 표시 아니었으면 깃재 인줄도 모르고 지나칠 뻔 하였다.ㅎ
▽ 좌우 등로는 확실해 보이지만,,,
<<깃재~길등재~한티재 <
깃재에서 부터의 오름에 오늘 더 쉽게 지치는 것 같다.
눈요기할 것이라는 지
아니면 취나물,곰취 채취하는 재미도 없고,,,
마냥 걸어가기만 하니 그럴 만도 한 것 같다.
마눌은 처형이라도 있으면 수다스러움으로 힘든 것을 잊어 버릴 수도 있을텐데,,,
점점 마눌의 얼굴이 일그러 지니 좀 멀리 떨어져 가는 편이 좋을 듯하다.ㅎ
깃재 오기 전에는 칠보산이 계속 뒤나 좌측에서 계속 쫒아다니더니
깃재부터는 일월산이 계속 앞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다.
일월산은 주변 산보다 높고 군부대 시설이 있어 쉽게 눈에 잘 띈다.
▽ 군사 시설이 있어 일월산임을 쉽게 알수 있다.
▽ 뭘 찍은 건 지,,,눈 요기할 거라곤 별로 없어 심심
▽ 가는 길 오른쪽에 희멀건 한 저건 뭔 지.
▽ 낙은 위치에 자리한 겨우살이,,,겨우살이 가까이 보긴 처음
▽ 좌우를 보면 산세가 심상치 않다.
소천25 2004 재설이라 쓰여진 삼각점에 도착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이 지도상의 884.7봉이다.
좀 내려가니 소나무 큰 가지가 꺼꾸로 떨어져 있다.
저게 어디서 떨어졌나 보니 옆의 큰 소나무에 뿌러져 나간 부위가 선명하게 보이는 걸 보니 얼마되지 않은 모양이다.
올해 눈이 많이 와서 무게를 견디지 못해 뿌러진 나무들이 특히 많은 것 같다.
자연은 그런 시련을 겪어낸 것들만 살아 가도록 한다.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도 없고,반드시 없어야 하는 것도 없다.
단지,모질고 인정 사정없는 약육강식에 의한 질서에 의해 자연계가 유지된다.
단순 보편적인 이 진리를 위배,조정하는 유일한 동물이 인간이다.
신의 영역에 과학의 힘으로 도전하는 인간
하지만 그 영역에 도달하는 순간이 인류의 멸망의 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볼 게 별로 없으니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긴다.
바닥엔 낙엽이 너무 많이 쌓여있어 내려가는 길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요즘 이 쪽으론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별로 없다.
884.7봉을 반시간 그렇게 내려오니 안부에 습지가 나타난다.
습지지역을 벗어나 얼마 가니 좌우측으로 도로와 시설물이 군데군데 나타난다.
시간은
마눌은 중간 어디쯤 빠져나가자고 한다.
탈출할만한 곳은 길등재가 적당한데,,,
다음 산행하기엔 한티재에서 끊어야 교통편이나 여러모로 좋을 듯한데 할 수없다라는 생각에
길등재에 도착해서 택시를 부르려 하니
안테나가 두어개,,,
연결이 되었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는 지 끊어 버리고 만다.
▽ 임도,,도로가 보이는데 가까이 가면 저 멀리 달아나고 또 달아나고,,,에구
▽ 마눌이 오늘 무척 힘들어 한다.
▽ 어딘지 모르겠지만,,,오늘 산길에 한 사람도 만나지를 못했다.
▽ 오늘 처음 만나는 안내판
▽ 방화선 용도인가보다.
▽ 하늘은 맑건만 힘들고 지치고
▽ 지도상의 612봉
▽ 길등재의 모습.차량 통행이 별로 없고 사면흙이 군데 군데 쓸려 도로에 널렸다.여름철 장마가 걱정된다.
▽ 인상적인 표지기
한티재까지는 아직 한시간 정도 가야 할 것 같다,,,하니 완전 얼굴이 죽상이다.ㅎ
하지만 난 오히려 잘되었다 내심 실실 속으로 웃으며
화가 난 마눌 뒤 멀치감치 떨어져 걸어간다.
통화가 안되는 것이 나의 잘못은 아니니 나를 원망은 말게,,,ㅎㅎㅎ
별 특징없는 길을 한 시간 지나니 한티재가 나타난다.
양쪽 모두 차량 통행이 많은 도로다.
88번 국도상의 한티재는 일월면과 수비면을 연결하고
다음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좋은 듯한 도로인 것 같다.
한티재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같은 지명을 사용하는 곳이 많은가 보다.
이 근처에 감마산 휴양림이 가까이 있다.
하여간
5분도 채 안되 도착한 택시를 타고 애미랑재로 간다.
지도로 볼 땐 별 멀지 않아 보였는데 한참을 꾸불꾸불 달린다.
그런데 이 택시기사분 앞을 보는 시간보다 좌우 양쪽을 보는 시간이 길게 운전하니 영 불안하다.
애미랑재에 도착해서 오늘의 들머리 반대편(애미랑재~답운치 들머리)에 있는 냇가에서 씻고 집으로 향한다.
또 고속도로를 이용하기 위해 풍기IC로 가기위해 적지않은 거리를 국도+지방도를 타고 달려야 하는데 언제가누,,,
산에 다녀온 지 몇일 밖에 지나지 않는데
사방엔 목련과 개나리,진달래가 활짝 피어 있다.
활짝 핀 꽃들을 기대하고 갔던 삭막한 산풍경과 달리 몇 일만에 화사한 꽃들의 잔치를 보니 딴 세상같다.
긴 겨울에 비해 봄은 그렇게 갑짝스럽게 왔다.
그 화려함도 花無十日紅일텐데,,,
현대인의 수명은 의료과학의 발달로 늘어났지만
너무도 바쁜 일상,,,
어느 묘비명에 적혔있다는
“우물쭈물 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말을 떠올려본다.
▽ 급하면 저곳에 도움 요청하면 될 듯ㅎ
▽ 발리리 마을,,수비면 마을의 시작이란다.
▽ 가운데 높은 산이 일월산.
▽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 한티재,,,이 도로 양쪽으로 차량통행이 많다.
알고가기>>>>>>>>>>>>>>>>>>>>>>>>>>>>>>>>>>>>>>>>>>>
발리리
경상북도 영양군 수비면에 있는 리(里)이다.
수양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 고장은 수비면의 중심지가 되어 면사무소, 파출소, 초·중등학교와 우체국이 있다.
발리리의 발(發)은 시작을 뜻하며, 수비면의 첫 마을이란 뜻으로 풀이 할 수 있다. (네이버)
소나무의 쓰임새에 대하여
◆문화재 복원에는 같은 목재 사용=국제 비정부기구인 이코모스(ICOMOS·
세계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국제협의회)는 역사적인 가치를 갖는 문화재 보
존을 위해 동일한 수종의 목재와 품질을 사용토록 규정하고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문화 유산이 보수에 보수를 거치는 동안 목재 측면에서는 누더기
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코모스가 비정부기구인 만큼 이런 규정을
각국에 강제할 수는 없다. 이코모스의 규정이 아니라 해도 한국민과 소나무
는 오랜 세월 동안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 왔다. 세계적으로 한국·일본·중국
이 소나무의 주 분포 국이며, 그중 한국이 중심국이다. 중생대 백악기 시절
부터 한반도에 자생해 왔다. 소나무는 땔감에서부터 약재·목재에 이르기까
지 오랜 세월 한국민과 같이해 오면서 자연스럽게 ‘국민 목재’가 됐다.
그러나 주요 건축물의 기둥 등 핵심 목재의 수종은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
다. 고려시대에는 목조 건축물 기둥의 55%를 느티나무로, 40% 정도는 소
나무로 했다. 조선시대 후기로 갈수록 소나무 사용이 많아져 70% 이상에
이르렀다. 고려시대의 대표적 목조 건축물인 경북 부석사 무량수전의 기둥
모두는 느티나무, 조선시대의 궁궐·사찰 등의 목재는 대부분 소나무다. 숭
례문에 사용된 목재 역시 모두 소나무다.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로 가면서
주요 목재가 느티나무에서 소나무로 옮긴 것은 느티나무의 공급량이 달렸
기 때문이라고 국립산림과학원은 분석했다.
◆
물질 중 하나다. 소나무 중 최고의 품질로 치는 황장목은 수령이 300~400
년 된 소나무의 내부에
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관 제작용으로 황장목을 사용했다. 송진은 수분
흡수를 막아 목재의 수명을 늘리는 역할을 한다.
송진은 한때 경제적으로도 가치가 높았다. 소나무를 자르고 난 뒤 어느 정
도 기간이 지나면 뿌리 부분에
고 하며,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송근으로 만든 기름 ‘송근유’를 항공기 기름
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송진을 대량으로 채취하기 위해 소나무에 제초제를
주입하면 그 부근에 다량의
위해 송진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목재와 송진을 동시에 얻기 위한 방법으로
임업에서 사용한다.
소나무 숯은 재가 적어 옛날에는 제철용으로 주로 사용했다. 이때 섭씨 600
도의 고온으로 올라가는 시간이 짧으며, 급격하게 온도가 떨어지는 특성도
우수하다.
◆목재 가치 높고 가공 쉬워=목재로 사용하기 위한 나무는 전봇대처럼 쭉
뻗어야 가치가 높다. 그런 특성을 갖는 나무는 침엽수가 많다. 한반도에 자
리 잡은 수종으로는 소나무·은행나무·주목·잣나무·가문비나무·전나무가 있
지만 그중 소나무가 가장 많았고 강도도 가공하기에 적당했다. 그렇게 무겁
지도 않아 운반하기에도 좋다. 소나무는 완전히 말렸을 경우 무게가 처음
벌채했을 때의 44%에 불과하다. 목재로 쓸 때는 수분이 13% 정도 되게 한
다.
한국에 있는 소나무는 지역에 따라 동북형·금강형·중부남부평지형·위봉형·
안강형 등 다섯 가지로 나뉜다. 함경남도와 강원도 일부에 분포한 동북형과
금강산·태백산에 분포하는 금강형은 쭉 뻗어 목재로서 가치가 크다. 울산에
퍼져 있는 안강형은 난쟁이형이며 구부러져 있어 관상용으로 좋다.
◆소나무 산림 면적 급감=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산림지역의 60% 정도가 소나무였다. 지금은 25%로 급감했다. 국립산
림과학원
아 어린 소나무가 후계목으로 자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소나무
는 햇빛이 적은 곳에선 클 수가 없다. 이 때문에 계획 조림을 하지 않으면
소나무 종주국으로서의 한국의 위상은 크게 위협받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
들의 연구 결과다.박방주 과학전문기자
< 사니조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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