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하면 생각나는 것들,,,
광우병,쇠고기,유전자변형,,,부정적인 이미지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많다.
배울점이 많은 나라라고 생각한다.
특히 극한상항 중에 보여준 미국시민들의 행동과 그들의 사고방식,,,
난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런 상항을 맞이한다면
과연 저런 행동을 할수 있을까 자문해 본다.
지금까지 보여준 한국 사회를 생각한다면 나는 No라고 답한다.
비난을 받더라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어제 일어난 새떼에 충돌한 비행기가 뉴욕 허드슨강에 불시착한 사건이 있었다.
침착하게 대응하는 미국 시민의 모습에서
지난 911사건에서 보여준 그들의 모습을 또 보게 되었다.
또 지난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한국인이 미국인에게 아픔을 준 사건이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한국인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WASP라는 미국 주류 지배 계급이 있다.
‘White Anglo-Saxon Protestant’의 약자로
많은 미국인의 정신적 지주 역활을 하였다.
부정적인 모습도 있지만 존경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들은 약자를 도와주는 것에 인색하지 않다.
우리나라에도 WASP에 해당하는 상위권층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한국의 WASP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약자를 착취할 생각만 골몰하고 있을 뿐이다.
약자를 잘 도와주지 않는다.
도와주더라도 부메랑 효과로 자신에게 도움되는 일만 한다.
그들은 그런 모습들만 보여 주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분명 21세기 리딩 국가임에 틀립없어보인다.
그들 사회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 등은 미국에 비하면 한참 먼 미개 국가라 생각한다.
그들 사회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WASP이란?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White Anglo-Saxon Protestant’의 약자로 흔히 미국 주류 지배계급을 뜻한다.
애초에는 정통적 미국인을 지칭했는데,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의 자손으로,
자신들을 다른 민족이나 종교로부터
차별화하기 위해 이 말을 만들었다.
현대 들어서는 앵글로색슨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포괄적 의미로 사용되는데
북아메리카에서는 관행상 네덜란드·독일·프랑스·스칸디나비아·
스코틀랜드·스코트아일랜드·웰시계 신교도 등을 포함한다.
현대 미국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전까지는 정계·재계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절대적 조건이기도 하였다.
1920년대까지 미국 200대 기업의 대부분이 이들 소유였으며
미국의 정치 권력도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이들의 독점체제로 이어졌다.
보수성이 강하며 예의범절을 중요시하고 엄격한 교육으로 자녀들을 가르치고
클럽 활동을 통해 친목을 도모하는 것이 특징이다.
1930년대 들어 대공황으로 이들 출신 대자본가들이 무너짐에 따라
유대인 등 신진세력에 의해 재계 판도가 바뀌는 현상이 일어났고,
정치에서는 아일랜드계 가톨릭교도인 케네디와 아일랜드계 신교도인 레이건이 집권했다.
이들은 미국의 현대사를 이끌어 오는 주역임에는 틀림없으며
1989년 아일랜드계 상류 출신의 신교도인 조지 부시가 당선된 데 이어
2000년 그의 아들 조지 W. 부시가 다시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저력을 보여주었다.
현재는 문화다원주의 시대를 맞아 유대계, 가톨릭계, 유색인종 등에게 기득권을 배분하는 등
그 동안의 배타적 사고에서 벗어나고 있다.
한편 최근에는 이 용어가 평균적·배타적, 그리고 비창조적이라는 의미를 가진
경멸적인 말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네이버 백과사전)
15일 오후 3시 30분경(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고층빌딩 숲 바로 위로 여객기 한 대가 굉음을 내며 낮게 날고 있었다.
비행기는 고층빌딩을 피해 맨해튼 서쪽 허드슨 강물 위로 ‘착륙’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뉴욕 시민들은 두 대의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 빌딩에 충돌했던 2001년 9·11테러의 악몽을 떠올렸다.
사고 비행기는 이날 오후 3시 25분경 승객 150명과 승무원 5명을 태우고 뉴욕 라가디아 공항을 이륙해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을 향하던 US항공 1549편 여객기였다.
여객기는 이륙 직후 새 떼와 맞닥뜨려 엔진 속으로 새들이 빨려 들어가면서 양쪽 엔진이 모두 꺼지는 최악의 위기상황을 맞았다.
1600피트(약 487m) 상공에 떠있던 이 여객기의 조종사 체슬리 슐렌버거 3세(57)는 3시 28분경 공항 관제탑에 숨 가쁜 목소리로 사고사실을 알렸다.
관제탑은 근처에 있던 테터보로 공항에 착륙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엔진이 꺼진 비행기는 빠른 속도로 고도가 낮아졌다.
미 공군 전투기 조종사 출신인 슐렌버거 씨는 눈앞에 보이는 허드슨 강에 비상착륙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착륙에 앞서 “충격에 대비하라”고 기내방송을 했다. 승객들은 모두 머리를 숙였다.
수면 비상착륙은 비행기 날개가 꺾이면서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슐렌버거 씨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상착륙에 성공했다.
목격자들은 비행기가 마치 아스팔트 위에 착륙하는 것처럼 강물에 착륙했다고 전했다.
착륙 직후 비행기 안으로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승객들은 승무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구명조끼를 입고 비상구로 빠져나왔다.
남자 승객들은 어린이와 여자 승객을 먼저 내보냈다.
승객들은 영하 7.7도의 추위 속에서 물속이나 비행기 날개 위에서 구조를 기다렸다.
운도 따랐다. 허드슨 강을 오가는 맨해튼 통근용 페리 3척이 사고를 목격하고 동시에 구조에 나섰다.
관제탑을 통해 연락받은 뉴욕 시 구조대와 경찰 해안경비대도 현장에 출동했다.
155명의 승객과 승무원은 모두 무사히 구조됐다. 일부 승객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CNN 등 미국 방송은 사고 소식을 긴급뉴스로 시시각각 보도했다.
미국 언론은 조종사의 판단력, 공포 속에서도 질서를 유지했던 승객들,
사고 현장 인근에 있다가 구조를 도운 통근용 페리,
경찰과 해안경비대의 신속한 구조시스템이 만들어낸 ‘기적의 드라마’라고 평했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과 데이비드 패터슨 뉴욕 주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조종사를 ‘영웅’이라고 치켜세웠다.
|
미국의 건국과 발전
1776년 7월 4일, 북아메리카 내 13개 영국 식민지 대표들이 미국의 독립을 선언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는 그 해 7월 2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제2차 대륙회의에서 미국의 영국으로부터 탈퇴를 결의,
7월 3일 신문에 발표, 7월 4일 대륙회의에서 승인, 7월 8일 독립기념관의 발코니에서 승인 내용을 공식 선언하였다.
또한 선언서의 공식 제목은 '아메리카 합중국 13개 주의 만장일치 선언'(The unanimous Declaration of the thirteen United States of America)이다.
워싱턴을 총 사령관으로 하는 독립군은 독립 전쟁 초기에 영국군에게 일방적인 패배를 당했으나, 워싱턴의 지구전 전략과 프랑스 왕국 해군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전세는 독립군에게 점점 유리해졌다. 결국 영국은 요크타운 전투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여 1783년 9월 3일에 프랑스 파리에서 미합중국의 독립을 승인 하게 된다.
1803년부터 1848년까지의 미국은 "서부 개척시대"라고 불린다.
당시 백인들은 담배 농사에 필요한 새로운 농토를 찾아서 서부로 이동했는데, 이러한 백인들의 서부 이동은 북미 원주민인 인디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여 인디언들과 미국 정부 간의 갈등이 벌어졌다.
당시 미국 정부는 인디언 보호 구역 강제 수용(1830년), 세 차례에 걸친 인디언 학살(약 300만 명 학살, 어린이와 여성 포함), 인디언들의 식량 동물인 들소 학살 등의 인디언 말살 정책으로 그들의 토지를 강탈하였다.
물론 인디언들은 그들의 생활 터전을 지키기 위해서 백인들에게 저항했으나, 백인들의 화력을 이기지는 못했으며 인디언들의 참정권을 인정한 1930년대까지 차별 받으면서 살았다. 실례로 마크 트웨인의 소설 《톰 소여의 모험》을 보면 인디언을 어린이들을 해치는 잔인한 존재로 묘사하는 인종차별적인 내용이 나온다.
1783년, 독립 전쟁의 승리로 미국은 스페인령의 플로리다 반도 일대를 제외한 미시시피 강 동쪽의 영토를 다스리게 되었다.
1803년,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미시시피 강 유역의 상업을 장악하기 위해 프랑스의 나폴레옹으로부터 루이지애나 지방과 뉴올리언스을 구입하였다. 이것은 루이지애나 매입이라고 불리며 이 매입으로 인해 미국의 영토는 두 배로 증가하였다.
물론 이는 미국과 프랑스 간의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나폴레옹의 정치적인 계산과 영토를 넓히려는 미국의 욕심에 따른 것이다.
미국 산업 발전의 토대를 다졌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분열을 조장했던 1860년에 발발한 남북 전쟁이었다.
이 전쟁에서 공업 국가를 지향하던 북부의 자본주의 세력이 농업 국가를 지향하던 남부 지주 세력을 격파함으로써, 남북 전쟁 이후의 미국 산업은 공업 중심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만약 이 전쟁에서 남부가 승리하였다면, 오늘날의 미국은 북아메리카의 중견국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이 전쟁은 그 당시까지도 뿌리 깊었던 지역 감정을 해소하는 데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이 되기 시작한 결정적 계기는 제1차 세계 대전이었다.
유럽 전체가 이 전쟁에 휩쓸렸을 때, 중립국이었던 미국은 연합군에 막대한 군수물자를 판매하여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보았다. 또한 훗날, 독일이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1,250명의 민간인이 탑승하고 있던 루시타니아 호를 격침시키고 영국으로 가던 미국 상선이 계속 격침되자, 1917년 미국은 연합군에 참전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 전쟁 덕분에 미국은 세계에서 정치적 입지를 크게 넓힐 수 있었다. 그러나 또한 알고 있어야 할 것은, 미국은 1차대전 이전 이미 세계의 제일가는 공업국, 농업국으로 성장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1860년대 남북전쟁 당시 이미 유럽인들은 전쟁을 수행할 정도로 거대한 물자 조달 능력, 인구 등을 목격하고 놀라워하였다. 그러한 이유로, 이민자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고, 인구 증가, 산업 발전 등으로 스페인과의 전쟁에서의 승리, 푸에르토리코 획득 등의 계기를 거치며 강대국이 되었던 것이다. 미국이 1차 대전 당시 유럽에 판매할 물자를 생산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미국은 1차 대전만으로 강대국이 된 나라가 아님을 입증한다.
현재 한국어에서 쓰이는 미국(美國)이라는 명칭은 청나라 시기 중국인들이 아메리카(America)를 중국어 발음에 가깝게 적은 음차표기인 美利堅을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은 미리견이 줄어들어 생긴 말이다. 여기서 美라는 한자는 의미와는 관계없이 아메리카의 "메"음을 적는 소리글자의 용법(가차)으로 쓰인 것으로, 미국을 일컬어 아름다운 나라라는 의미로 지었다고 하는 것은 한자의 뜻에 이끌린 잘못된 해석이다. 일본에서는 ?米利加로 표기하였으며, 이를 줄여서 米?이라고 하나, 역시 한자의 뜻과는 관련이 없다. 중국식과 일본식 표기이외에 며리계(?里界)라는 독자적인 음차표기도 존재했다. [1]
'사는 이야기 > 주절주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09년도 홀대모 모임 (0) | 2009.10.20 |
---|---|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0) | 2009.02.07 |
2008 무자년을 보내며 (0) | 2008.12.31 |
답답한 마음에,,, (0) | 2008.12.27 |
나의 병동일기 (0) | 2008.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