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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주절주절,,,,

나의 병동일기

by 사니조은 2008. 12. 4.

 

나의 블로그의 시작은 나의 산행 기록 자료를 별도로 관리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언제나 원하면 보고 싶은 자료를 볼 수 있게,,,,

나의 가족들이 원하면 언제든 볼 수 있게,,,

나의 흔적이기도 하고,,,

 

오늘 지난 일기를 뒤적이다 지난날 평생 처음 입원하게 된 사연,,,,

그 일들이 살다보면 우울한 날,

아마도 이 병동일기를 읽어보면 나를 괴롭히는 것,,, 모두 부질없는,,,

그래서 삶의 고갱이가 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될 것 같아 내 개인적인 기록을 올려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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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동일기

 

작성일 : 2004.11.05

 

어제 간만에 술을 많이 마신 것 같다.

언제나 후회하지만

 

어제 문득 지금까지 그 때의 일들을 정리하지 않았구나 하며 다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리해 놔야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간단하게 그때의 일들을 일기 형식으로 써 놓은 것은 있지만..

 

기억을 하나 하나 더듬어 가며 1 8개월전으로 돌아 간다.

 

2003.02.14() 병마와의 싸움

 

공무부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처음엔 이가 아팠다.

병원에 가야 겠다 생각하고 점심 시간에 맞춰 나와 병원비를 찾기 위해 제일은행과 우리은행을 왔다갔다 하는 동안

이가 아프고 목과 어깨의 통증이 느껴진다.

호흡이 가파라지고 가슴부위의 통증 그리고 목부위의 통증 그리고 두통 그 중 목부위의 통증이 가장 심했다.

치과를 갈려고 나왔는데 무슨 병원부터 가야하나치과 내과

먼저 치과가 보일길래 먼저 갔더니 X-RAY를 찍어보더니 상한 것은 없다고 한다.

그 도중에 점점 목과 어깨의 아픔이 더 해와 앉아 있기 조차 힘들 지경이다.

다시 내과를 찾아 갔으나 점심 시간이라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식은 땀이 나고 아픔은 더 해져 왔다.

한참을 참고 만나 의사 왈

컴퓨터 사용으로 인한 근무 자세,침대 사용 등의 일상 생활에서 온 근육통이라고 하며 처방을 내리더니

사우나가 효과가 있을 것이라 하여 약을 밑에 있는 지하 1층 약국에서 받은 후 근처 사우나로 간다.

사우나에 가서 잘 가지 안던 더운 곳만 찾아가 참으며 있었으나 그 증세가 점점 더해가고 한 숨 자고 나면 괜찮을려나 해서

2층으로 가 누울려고 했는데 이런 눕기 조차 힘들다.

다리를 구부리는 것도 팔을 바닥에 뻗쳐 방바닥에 닿게 하는 거 조차 힘들다.

간신히 모로 누워 머리를 바닥에 닿지 않는다.

모로 누울려고 하니 이 것도 잘 안된다.

마치 식물인간 처럼 몸이 뻣뻣해 맘대로 안된다.

누워 있으니 오히려 아픔이 사방팔방으로 밀려온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사우나를 나와 부하직원에게 차를 가져 오게 하고 집으로 향한다.

도저히 근무를 할 수 없을 것 같다.

집으로 가는 한시간은 정말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식은 땀이 나고 고개를 돌려 빽미러를 볼수가 없다.

집에 오자 마자 방에 드러누웠다.

아이들을 가르키고 있던 정숙이가 뭔일인가 하며 왔다.

나 혼자 일어 서고 눕는 등의 가벼운 움직임도 혼자 할 수 없다.

완전 실물인간이다.

큰 일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2/15() 다음날

집 근처에 제일 큰 병원인 00병원에 갔다.

지하 1층에 있는 재활의학과에 갔다.

기다리고 있는 동안 앉아 있기도 힘들다.식은 땀이 난다.호흡하는 조차도 힘들다.

토요일이라 의사가 없어 레지던트의사가 진찰한다.

이름이 주형,조카 이름하고 비스하다.

근육통이고 이틀이면 나을 수 있다고 한다.

정말

난 지금 걷기도,서 있기도 누워 있기도 심지어 호흡하기도 힘들다.너무 힘들다.

평생 이 처럼 아픈 적이 없었는데...

그런데 이틀만에 나을 수 있다고..지금의 몸의 상태로는 믿기지 않았다.

그날과 일요일은 눕고 일어서는 것 조차 혼자 할 수 없었다.

정숙이의 힘을 빌려야만 했다.

정말 홀로 사는 것은 젊고,돈있고,건강할 때에는 좋겠지만 이 처럼 몸이 아플땐 눈물이 핑 돌 것 같다.

 

정말 의사 말대로 이틀 지난 월요일에 회사를 출근했다.

2003.02.18 일기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현재 아직 몸이 완전치 않다.

이제는 혼자 눕고 일어서서 가벼운 운동도 한다.

하지만 머리가 어지럽고 기침을 제대로 할 수 없고 가슴이 답답하고 가끔 통증도 있고 자주 춥기도 하고 자주 덥기도 하다.

 

 

2월말일 경 x-ray

 

몸이 아직 성치않다는 신호를 계속 뇌에 전달한다.

해서 한번 더 진찰을 받아보자..

그냥 한번 진찰 받으러 간다는 마음으로,별일 없겠지 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간다.

 

처음 내과로 접수해서 x-ray사진을 촬영하고 회사로 출근한다

그 전에도 가끔 x-ray사진을 찍어 본 적이 있어 

별일 아니예요 약 좀 처방해 드릴 테니 몇일 드셔 보시고 약발이 안 먹히건든 다시 한번 오세요라고 할줄 알았다.

 

몇일 후의 결과 때에는 아내가 가기로 하고 아내가 내과 의사를 만난다.

근데 좀 이상하니 정밀 검사를 받아보세요그런다.

그리고 다음에는 내과로 오지 말고 흉부외과로 가란다.

정밀 검사해 봐야 돈만 아까울텐데..하는 마음으로 평생 처음 CT촬영을 하러 간다.

 

3 2일 호흡기 폐 검사

3/5 CT촬영

 

옛날 병원 현장 근무 시절 생각이 난다.

CT촬영실,X-RAY 실 등에 설치한 동판으로 둘러 쌓인 촬영실이 생각난다.

하지만 CT촬영기가 어떻게 생겼는 지도 모른다.

난생 처음 접하는 가운데가 뚤려져 이는 원통 모양의 속으로 내가 누워 있는 침대가 들어간다.

혹 이근처에 아주 강한 자장이 있응 거이라는 추측과 x-ray선과 같은 강한 투시력을 가진 걱이 나의 몸을 뚤고 지나 가겠지 하고 추측한다.

그리고 머리가 어질질하다. 약간 마취된 듯이

 

그 후 병원에 정숙이 혼자 병원에 갔다가 충격적인 말을 듣고 온다.

종격동 종양,흉선종이라고 판정

 

 

3/10

처음 접하는 A라는 의사

좀 깐깐하게 생겼다.

좀 마른 듯 하지만 또 자세히 보면 피부는 그런대로 윤기가 있어 보인다.

잘 먹구 잘사나 보다라는 생각이 든다.

의사

돈 많이 버는 의사

저 사람이 나보다 뭐가 잘났지.

집안에 의사가 생길려면 3대 걸린다던데

갑자기 내가 초라하게 느껴진다.

한참의 침묵 어색한 분위기..

이상하게 생긴 사진을 한참 보며 아무 말도 안한다.

의자를 돌리며 나에게 처음 말을 한다.

그 때까진 종양이 뭐야할 정도로 의학 지식이 없던 나다.

무식하긴

하긴 무식하니까 꼭 때어내야 합니까?라고 했고 사진을 보여 주며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

뭐가 뭔지 모르는데 식도와 기도사이에 동글동글한 것이 있는데 요것이 때어내야 하는 종양이라고 한다.

크기는 얼만인지 가름이 안된다.

떼어내서 조직 검사를 통해 양성인지 악성인지 안다고 한다.

양성이 뭐고 악성은 뭐야요

의사가 왜 이토록 커질 동안 아무런 느낌이 없었냐며,증세가 없었냐고 물어본다.

직업이 무어냐고 물어 본다.

건설 계통 일을 한다고 하니 원래 그 쪽 방면 사람들이 좀 둔하다,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핀잔도 준다.

젠장..

 

그 것을 때내 조직 검사를 하여야 만 양성인지 악성인지 판명된다고 한다.

양성이면 그냔 종기 같은 종양이고 악성이라면 암이다.

만약 암이라면

그재서야 아! 빠른 조치를 취해야 함을 느꼈다.

입원하란다.

회사일,의사 일정 등을 고려하여 3 20일 수술날짜를 잡으니 3 18일 입원하기로 하고 집에 왔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종양이 클수록 악성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 것은 정숙이 에게 말하지 않았다.프린트물도 보이지 않게 했다.

또 흉선종은 흔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오는 도중 기분이 굴굴했다.

나에게 왜 이리 재수없는 것이 있을까

하기야 내가 가지고 태어난 복은 마누라복,자식복 밖에 없다라는 생각이 든다.

있는 복이나 잘 가꾸며 내 삶을 가꾸어야지 ㅎㅎㅎㅎ

 

집에 가서 도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집에 와서 정숙이 에게 태연하게 간단하게 말한다.

회사에서 3 31일까지 휴가를 내 논 상태

 

3/18 입원 1일째

오전 10시쯤 입원 수속과 심전도 TEST 오후 2에 입원하기로 하고 집으로 되돌아 왔다.

정숙이도 아무 말도 안한다.

별일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오후 2에 입원한 곳은 6 611호 실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면 왼쪽으로 가면 복도 끝부분이고 오른쪽 복도로 길게 난 복도를 좀 가다 보면 양쪽으로 갈라지는 복도가 나온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복도를 기준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병실이 있는 T자형 평면의 병원이다.

그 복도 3개가 마주치는 곳에 간호원 테이블이 있고 나의 병실은 오른쪽 복도 왼쪽편 3번째쯤으로 기억된다.

맞은편에는 화장실이 있다.

6인실 병실 문쪽 맨 구석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주위를 둘러 보니 나이 어린 고등학생도 있고 나이는 어려보이지만 오토바이 배달을 하다 다친 사람도 있었다.

오토바이 운전에 자만하여 위험하게 차량 사이 사이를 오가며,다소 불량스럽게 운전을 하던 꼴을 많이 보아온 터라 별 이뿐 맘이 없다.

이리하여 10일간의 병원 생활이 시작하였다.

정숙이는 여기 있으면 더 마음이 심란할까봐 집으로 가라 했다.

입원은 했는데 멀쩡한 몸으로 있으려니 갑갑도 하고,이게 꿈 속의 일 아닌가 라는 생각도 해본다.

혼자서 여러 생각을 한다.

이 것이 암이라면..

최악의 상태를 생각하다가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종신보험 하나 가입했어야 하는데..

의사 말대로 미련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죽는 것보다는 살 사람들 살아갈 길 걱정이 더 앞선다.

진짜 죽는다는 것이 아니어서 그런지 죽을 것 같지도 않고 또 설사 죽는다고 하더라도 발광을 해대며 더 살고 싶다고

하늘에다 대지도 않는 떼를 쓰고 싶지도 않다.

내가 없으면 정숙이는 어떻게 되나..과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마음이 무거워 진다.

~이 죽는것도 아닌데 미리 걱정하지 말자며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릴려 애쓴다.

죽는다는 것에 별 두려움은 들지 않았다.

하여간

간호사가 와서 2대분의 주사기에 피를 채워갔고 X-RAY를 찌고 대변과 가래통 채취용 플라스틱통 2개를 주고 간다.

 

채혈,호흡기 검사,심전도검사 등을 받았다.

오후 5시경에는 이제 막 갓나온 인턴이 큰 주사기를 가지고 와 동맥 혈액을 채취한다며 왼쪽 동맥을 찾는다.

좀 아프다고 해 겁이 난다.

근데 이 친구 동맥 혈관을 왼쪽 손목 여기 저리를 살핀다.

쉬이 찾지 못한다.

초짜라 겁이 난다.

드디어 큰 주사기를 들고 막 찌르려 다 멈추고 또 본다.

아이구 나 죽는다.

또 찌르려고 하는데 다른 의사가 나타나더니 왼쪽을 보더니 오른쪽손에 한번에 맥을 잡고 채혈한다.

묵직하게 아팠다.

그래도 한번에 성공했으니 다행이다.

저 초짜한데 걸려 여러 번 찔렸으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솟는다.

오후 5 경 나온 병원의 밥은 정말 먹기 싫지만 눈 딱감고 먹는다.

심심하고 무료한 그러나 어찌보면 나 혼자 이렇게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져 본 것이 얼마 만의 일인가.

그래도 시간은 어김없이 잘도 흘렀다.

그래도 병원에서는 TV가 제일 인기이다.

안보던 TV Killing time용으로 본다.야인시대를 재미있게 본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다고 한다고 난리다.

전쟁으로 발생될 향후의 문제점,대외 국제적인 동향,우리의 선택,전쟁 전 후의 발생 문제 등

공격 시기 등 이렇꿍 저렇꿍 언론 매체에서 떠든다.

이 전쟁은 앞으로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것인가?

아마도 유가가 오르겠지,물가도 오르고...

자기 말을 안 들으니 무력으로 하겠다는 미국

강자만이 살아 남는다.

약육강식의 법칙은 결코 동물세계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테러는 결코 무력으로는 없어지는 않는다.

또 테러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풍선 효과처럼, 이 쪽 두더지를 치면 다른 쪽으로 나타나는 두더지 게임 처럼..

동전의 이면과 같이 한쪽이 웃으면 반대편에는 우는 사람이 있다.

갈등의 시작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앞 바로 발잔등에 떨어진 불이 더 급하다.

 

 

3/19 입원 2일째

오전까진 아무런 처방이나 검사도 없다.

9:30 심폐검사를 하라고 하여 갔으나 3/2일 검사로 대체되었고 오후 3시경 수술에 대한 설명을 한다고 한다.

정숙이는 혼자 설명을 듣기 무섭다며 종남이 아빠에게 SOS를 보내 오시게 한다.

그러더니 간기능 검사 결과 간 수치가 높다고 하여 포도당 주사를 놓는다.

지금까지는 자유롭게 걸어 다녔으나 이제 바퀴가 달린 주사통 걸이를 달고 다녀야 한다.

평생 처음 해보니 어색하기도 한데 금방 숙달된다.

내일 평생 처음 수술대에 오른다는 생각을 하니 그 시간들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든다.

지금 이 순간이 수술이 끝난 상태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수술 후 얼마의 고통이 있는 걸까..으으 생각하기도 싫다.

 

앞 침대에는 멀쩡하게 생긴 고등학생이 수술을 한단다.직접 물어 보지는 않았지만

외형적인 성장에 비해 내부 장기의 비정상적인 성장으로 균형이 맞지 않아 생기는 병이란다.기흉이라는 병이다.

이 학생의 경우는 폐가 쪼그러 들어 좀만 뛰거나 힘든 것을 하면 숨이 차 일상적인 생활이 어렵다고 한다.

참 별 이상스런 병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러한 것이 현대병으로 많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랄적 추운 겨울에도 손에 때를 제대로 벗기지 않아 손이 뜨고 그런 상황에도 추운 밖에 나가 팽이치기,구슬치기,연날리기 등을 하여

알게 모르게 내부 장기 즉 폐,심장 등을 훈련시켜 단련시킨 결과인데 요즘 아이들은 그런한 활동을 덜 하게 되어 생기는 병인가 생각해 본다.

 

또 한 사람

집이 의왕시이고 식당을 한다고 한다.

55세때까지 어느 대기업에서 직장을 다니다 모아논 돈으로 먹는 장사를 하여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데 폐가 좋치 않다고 한다.

나중에 본 이제 갓 결혼한 아들를 보니 잘 키운 것 같다.

그 아들 부인도 예쁘고 환자 간호한다면서 밤 늦게 까지 병 수발를 하다가 가곤 했다.

환자의 부인도 여러 번 수술 경험이 있어 병원에 있으면 머리가 아프고 그때 일이 생각이 난다고 또 식당일을 보기 때문에 자주는 못 온다고 한다.

그래도 나중에는 남편을 위해 몸 보신용 음식을 가지고 가끔 들린다.

나중에 퇴원할 쯤 한번 오라고 명함을 주었는데 아주 근사한 식당이었다.

부러웠다.

나도 저 나이쯤 되면 저 정도까지 될려나

 

오후 3시쯤 담당의사인 홍기우박사가 아니고 B라는 의사에게 수술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과 질문의 시간이었다.

설명한 바로는

앞 가슴의 흉골를 쫙 가른 뒤 그 뼈를 벌려서 그 속의 종양을 띄어낸다는 것이다.

좀 어려운 수술이라고 한다.

부작용에 대한 설명이 더 무서웠다.

지금 자세히는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부작용에 대한 내용은 수술이상으로 공포심을 주었다.

기억나는 한가지는 수술를 하고 나서 폐에 물이 차거나 그러면 다시 부작용에 대한 수술도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이제와 생각하니 그 사람들은 최악의 경우를 염두하고 한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정숙이와 이렇게 설명을 듣고 나와 둘은 서로 별일 아닌 것 처럼 태연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서로 걱정할까봐

마음 속으로는 수술를 한번 받기도 힘든데 또 잘못되면 다시 한다고.

제발 부작용은 없어야 할 땐데..

또 간기능 검사 결과가 좋치 않아 수술날짜가 연기될 수 있다고 한다.

병을 고칠려다 병을 만드는 악순환은 제발 없도록

지금까지는 튼튼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병원에 누운 적도 없고 그 흔한 닝겔병도 꽂지않았던 몸 아닌가

나 이대로 살게 해줘 줘.. .

 

지금 나는 병원에서 밖에 돌아 다니는 사람들이 마냥 부럽다.

그러나 수술을 해서 나을 가능성이 있는 나를 부러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저녁에 간기능 검사 결과가 나온다고 한다.

같은 실의 한 노인분은 간기능이 약해 수술을 연기해 짐을 싸서 집으로 가는 것을 보고 수술이라는 것도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았다.

간기능이 약하며 마취에서 깨어 나지 않아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다고 한다.

저녁쯤 의사가 오더니 나도 간기능 검사 결과가 좋지않아 수술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한다.

최종 판단은 마취과 의사가 결정한다고 한다.

마취과 의사의 역할이 이렇게 큰 줄은 몰랐다.

야 너는 왜 모르는 것이 많냐?짜증나게

맘을 다스리려고 얼마나 애쓰며 속으로 수술에 대한 공포를 잡아 놓고 태연한 척하려 애쓰고 있건만 이게 웬말이냐

다행히 저녁에 다시 와서는 좋지는 않지만 해도 된다고 한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매 맞기를 두려워 하며 기다리는 것보다 그냥 참고 매맞는 편이 훨씬 정신적 건강에 좋다는 것을 아동기 때 체험한 바 아닌가

어짜피 건너야  할 강,못건널 강도 아니다.

 

 

입원 3일째 3/20

오늘이다.

떨리거나 불안함은 없다.

수술로 인한 최악의 경우의 수도 따지지 않는다.

단지 받아 넘기는 거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오전 11 30분경 옆에 있던 꼬마아이 (나중에 알고보니 2번째라고 함)가 먼저 수술실로 가라고 한다.

난 그 꼬마 녀석에게 잘 할 수 있지라며 어른스런 여유로움을 보인다.

병실의 환자들은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 임박설를 다루는 뉴스를 보고 있다.

그러나 그 후 몇 초후 한 간호사가 수술있으니 내려가실 준비하셰요라는 말을 듣고는 드디어 올 것이 오는 구나하며 약간 떨린다.

 

아프지도 않은데 침대에 누우란다.

그때 두 처형이 오신다.

멋적다.

지금 나는 어디 한군데도 아프지 않은데 왜 내가 수술를 받아야 하지?

이게 꿈이야 생시야

수술실 가기전에 화장실에 다녀와서 이동용 침대에 누우니 이동한다.

정숙이의 눈에 눈물이 고인 것을 보았다.

수심이 가득찬 얼굴로..

괜찮아 정숙아 속으로 위로하지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바로 수술실 문이 열리고 잠시의 인사를 나눌 시간도 없이 밀고 들어간다.

정숙이의 모습이 보인다.

사랑한다. 정숙아.

문이 닫힐 때까지 정숙이의 모습을 보았다.

몇 개의 양 여닫이 문이 열리고 닫힌다.

벽에 달린 시간을 보니 12시 30이었다.

옆에 대기자가 있다.

그를 보니 그 꼬마 였다.

그 꼬마가 들어가고 그 후 몇 명이 나를 거쳐 수술실로 들어간다.

50여분이 지난 오후 1 20 대기 시간을 보내고 나니 침대가 이동한다.

처음 보는 수술실

철망으로 씌여진 천정과 그 가운데 동그란 4개의 큰 전구가 든 사각형 박스 2개가 있다.

7~8명의 흰가운을 입은 이들이 자기네 끼리 나는 안중에는 없다는 듯이 보지도 않고 뭔가를 이야기를 나눈다.

집도할 의사가 누군가하고 찾아 보지만 흰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어 누가 누군지를 알수가 없다.

그리고 잠시 후 누군가 마스크 같은 것을 대더니 숨을 들이 쉬셔요 한다.

그리곤 깊은 잠에 빠져든다.

 

갈래갈래 찢기는 고통과 발버둥 거림,처형의 목소리,지예엄마의 목소리 등이 들렸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약 5시간에 걸친 수술을 하고 기나긴 기다림 속에 수술실에 누가 나오더니 막 아프다며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니 나였다고 한다.

난 기억이 없는데..

남자가 뭔 이리 참을성이 없냐고 누군가가 꾸짖을지는 몰라도 낸들 어찌 알겠는가?

나도 모르게 소릴 질러댄게..

나도 창피함을 모르는 인간은 아닌데..

그런 후 곧장 중환자실로 들어 갔고 정숙이를 비롯한 두처형은 또 지루한 긴 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한다.

이 때의 기다림은 수술실에서 기다리는 시간과는 좀 여유 있는 기다림이겠지만..

아픈 사람도 고생이지만 그 긴 시간의 기다림 속의 그들도 엄청 고생을 했을 것이다.

 

깊은 잠에서 다시 깨어나 보니 또 잠이 왔다.

지금 생각하니 마취 때문인 것 같다.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 나지 못하면 위험한 사항에 올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를 깨울려고 뺨도 때리고 했다고 한다.

 

그 다음 기억나는 것은 정신이 멍하고 어딘가 묵직하고 춥고 몹시 갈증이 난다.

눈을 뜨려하니 잘 안 뜨인다.

억지로 눈을 뜨려하니 잘 안된다.

끝난건가,살아 있는 건가..

 

 

몸을 움직이려 하니 묵직한 고통

아 살아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기쁨 보다는 고통이 더하다.

하지만 생각보단 고통이 크지는 않았다.

정숙이가 아주 비싼 것으로,내가 아프지 말라고 돈은 얼마 들어도 좋으니 가장 비싼 그리고 아프지 않는 마취를 해 달라고 한 덕분인가 보다.

이른 바 무통 주사

그 효과 덕인지 아프다는 느낌보다 갈증이 나고 가래가 들 끌었다.

고개를 들려고 해도,방향을 돌리려 해도 안되고,누군가 부를려고 해도 말이 나오질 않는다.

입에 고인 가래를 혀로 밀어낸다.

입으로 밀어낸 가래가 입밖으로 나가며 내 얼굴을 스치고 귓가로 흘러도 마치 벌레가 기어가듯한 느낌.

기분나뿐 느낌

그러나 어쩔수가 없다.

자꾸 생기는 가래를 그렇게 처리를 하고 있는데 누가 와서 휴지로 딱는다.

간호사들인가 보다

좀 시간이 흐르고 옆에 누가 낑낑댄다.

중년의 줌마 목소리 같다.

약간 돌릴 수 있는 것 같다. 1~3도 각도 정도로

근데 누군가 나를 일으키더니 엄청난 아픔이 몰려온다.

인상을 찌그리자 왠 엄살이냐며 구박하며 목에 뭔가를 잡아 뺀곤 솜뭉치로 꽉 누른다.

아이고 아 야야야~

비명은 지르지 않았지만 그리고 비명 지를 힘도 없지만

좀 전의 그 아픔은 비교도 안될 정도로 아프다.

우와 어떤 놈이야 눈에 힘을 주어 보며 그 놈의 얼굴을 익혀 둔다.

나중에 만나면 한방 매기고 싶은 생각 어휴 그냥 꽉

뭐가 아프냐며 그러는 놈에게 너도 이래 봐라 안 아픈가 xx눔아

 

그리고 그 놈 의사가 나가고 잠시 후 A 박사가 나타나더니 입원실로 가기로 한 뒤 정숙이가 들어온다.

반가왔다.

정숙아 나 살아 있다.

아마도 첫 면회인가보다

여기가 중환자실인가를 이 때 안 것 같다.

들어온 정숙이의 목소리는 젖어 있었고 그러면서도 반가움이 담긴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그 떄 어떤 대화를 했는 지는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마도 약간의 대화를 한 뒤 또 깊은 잠에 빠지는 것 같았다.

 

하여간 눈을 떠 보니 아까 보다는 많이 움직임은 다소 수월한고 가래도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묵직하고도 아린 고통이 더 많이 느껴진다.

그 와중에 주위를 보니 흰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여기 저리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잠시 후

그리고 어떤 애띤 얼굴의 남자가 들어와 나의 하복부에서 또 뭔가를 띄어낸다.

얼얼한 느낌이다.

앵 하복부가 이상하게 허전하다.

내가  내복도 입고 있지 않나.

그럼 누가 벗겼나

여긴 여자 들이 많은데

다행히 몸에는 이불이 덮혀져 있었다.

나중에 생각하니 그 것은 아마도 소변을 닫아 내기 위한 호스인 것 같았다.

그 땐 나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나의 몸에는 4개 정도의 호스가 있었던 것 같다.

오른쪽 목,그리고 갈비뼈가 끝나는 아래 배 중앙 부분,오른쪽 옆구리 부분,그리고 지금의 소변 호스 이렇게 4개 정도의 호스가 있었다.

목과 소변 호스는 중환자실에서 떼어지고 나머지 2개는 나중에 입원실에서 떼어진다.

또 와서 무슨 주사를 들고와 주사를 놓고 가고 그러더니 침대가 움직이면서 중환자실를 나온다.

밖의 정숙이와 두 처형이 보인다.

반가왔다.

이렇게 형제가 힘들 때 마다 힘이 되어 주는 것이 진정한 형제임을 확인 하는 것 같다.

정숙이도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나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지만 왔다갔다해야지 집안일을 해야지

가능한 병원에 있지 말고 집에가 일을 보라 했다.수술 첫날은 나를 간호하느냐고 여기서 잤다.

다음 날 부터는 집으로 가라고 제촉한다.

성한 사람이 남자들만 드글드글한 이방에 여기 있으려면 얼마나 곤역이겠는가?

나 혼자 있을 때 가장 문제가 화장실이다.

침대 반대편에 끈을 매달아 놓고 윗몸을 일으켜 세울 때 사용한다.

그래서 가능한 참다가 가곤한다.

 

 

입원 4 3/21 ~ 입원 7일째 3/24

매일 아침 7,12,오후 5가 식사 시간이다.

또 매일 아침 6시경 x-ray 를 찍으라고 한다.

늦게 가면 사람이 많아 늦게 된다.

첫날에는 좀 꾸멀꾸멀 거리다 좀 있다 갔더니 줄를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그 곳에 가니 정말 아픈 사람들도 참 많다는 것을 느낀다.

병원에만 오면 사람이 살면서 아프지만 않고 살아도 감지덕지하며 살아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막상 일생생활로 돌아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며,잘났네 못났네,아웅다웅 산다.

우린 무얼 위해 긑도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치고 받으며 가고 있는 걸까?

또 어디로 가는 걸까

그 끝은 또 어디고 어디쯤일까?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내가 정하고,또 옮기고 싶을 땐 언제나 옮길 수도 있고, 가고 싶을 때 가고 쉬고 싶을 때 쉬면서 내 맘대로는 안되는 걸까?

그러나 현실은 일방통행이다.

이미 짜여져 있는 듯한 길로 쉼없이,너무 혼란스러워 잠시 멈추어 추스릴 사이도 없이 계속된다.

하여간 1층에 있는 방사선과에서 돌아와서 다시 잠을 청한다.

잠은 잘온다.

자고나도 왜 그리 잠은 잘 오는지

낮에도 별일 없을 경우 잠이 오면 또 잔다.

나중에 이 글을 쓰기 위해 그 병아닌 병에 대해 알아 보니 그 증세가 아마도 중증무기력증인 것 같다.

계속 눈까풀이 내리고 힘도 없고 계속 잠만 오는 것이었다.

평소 잠이 많다고 별 이상 스리 생각하지는 않았다.

또 그 증세가 기침이라는 증세가 있는데 그 전에도 기침을 심하게,아주 심하게,옆에 있는 사람이 놀랄 정도로 심하게 하곤 했는데 담배를 피기 때문이라 단순하게 생각했다.

수술 1년전 2002.02.02 담배를 끊었고 그런 심한 기침이 없어 담배를 끊어서 그런지 아니면 종양을 제거해서 그런 것인지는 나로선 알 수가 없다.

 

신문이나 책을 보면 멍하게 잃혀 진다.

계속 진통제와 항생제가 6시간 마다 투약되고 간수치가 높다면서 약을 먹고 있다

때론 강하게 때론 약하게 그렇지만 크게 아프지는 않고 묵직한 느낌의 그러한 아마도 진통제 효과 때문이리라.

진통제는 그 후 몇일 동안 맞은 것 같다.

진툥제를 놓으면 환자는 편하지만 회복이 늦고 몸에 좋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어찌하랴 지금 당장 아픈 것을...

뼈를 길게 짜른 후 그 안의 10*11cm정도의 종양을 꺼낼 수술을 받았으니 안 아프면 더 이상한 것 아니겠는가?

 

안에 플라스틱 작은 공이 들어 있는 원통모양 4개 병렬로 달려 있고,한쪽옆에 호스가 달려 있는 것을 주고 연습하란다.

흡입연습 그래야 폐에 물이 안찬다고 한다.

한번 흡입해 봤다.

그런데 왼쪽의 빨간 작은 공이 움직인 듯 안한 듯 움직였다.

이번엔 더 세게 흡입해 보았다.

아이구 가슴이야 통증이 왔다.

빨간 작은 공은 바닥에서 아까 보단 약간 더 높이 올랐을 뿐이다.

주위의 같은 실의 동료들이 한바탕 웃는다.

옆자리의 아저씨 아들이 간단하게 4개의 기둥 모두 빨간 공이 올라가게 한다.

역시 나이와 건강이 좋다.

그만큼 일반인에 비해 심폐의 기능이 떨어 진다는 말일 것이다.

이 것을 괴을리 하면 폐가 어떻게 되나 보다.

의사도 열심히 하라고 다짐하기도 하고 폐에 물이 차면 안되니 하며 겁을 주기도 한다.

담당 의사가 매일 아침 9에서 10 사이 토요일,일요일만 빼고 다니나 보다.

아침 볼 때 마다 불어 보라고 해서 불어 보니 두개 원기둥의 빨간 공이 올라가고 세번째것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열심히 안한다고 구박이다.

이구 서러워 아파 죽겠는데 구박까지 당하구

 

입원 8 3/25

조직검사한 결과가 나왔다.

양성이란다.

정숙이와 나는 겉으로는 드러나게 조직검사의 결과에 대해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하루 하루가 초조하게 지내고 있는 중이었다.

마치 지금 진행 중인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처럼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아닌가?

그런데 그런 사항을 의사는 오후 내진을 돌면서 스쳐가는 말로 양성이예요라고 한다.

아무튼 2003년도 2 14일 치통,근육통으로 시작된어 2003.3 14일의 자동차 브레이크 파열 사건 등로 이어지는 악몽의 터널을 빠져 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늘 검은 옷을 입은 죽음의 악마가 따라 다니는 듯한 느낌에서 환한 빛이 비추는 듯하였다.

 

입원 9 3/26

아직도 퇴원의 이야기가 없다.

전일 띠어낸 종양을 한번 볼 수 있냐고 주문을 했더니 김건일의사가 보여준다.

10*11센티미터 정도의 잘 익은 빚깔 좋은 큼직한 동글동글한 고구마 같았다.

크기는 자를 옆에 두고 가로 세로의 크기를 알수 있게 찍은 사진

저렇게 큰 것을 내가 달고 다녔다고..믿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꺼내기 전 절제해 양쪽으로 갈라진 뼈와 살덩어리의 사진

 

입원 10 3/27~28

퇴원이 결정된다. 3 29()이다

 

머리를 쭈빗쭈빗하게 하는 것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 있었으니

그 것은 이른 바 소독한다고 소독약으로 그 곳을 매일 고문을 한다.

간호사를 한 명 동행하고 나온 레지던트 의사가 집게에 소득약을 묻힌 솜이 든 통에서 솜을 꺼내 문지른다.

그러면 차가 미끄럼 방지에 바퀴가 닿아 드릇드릇 소리를 내듯 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약간 뚱뚱한 체격의 친구는 맘이 좋아 보인다.

웃으면서 치료를 하지만 나는 벌레 싶은 표정으로 대한다.

아프다는 말을 못하고 마치 큰 집게 벌레가 기어 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몇 일 동안 거의 병원에 있을 동안 나는 마음이 아플까봐 그 곳을 보지 않았다.

치료할 때도 보지 않았다.

궁금하기도 할 텐데 전혀 보고 싶지도 않았다.

약 폭 5센티미터,길이 15센티미터의 흰천을 흰 테이프로 가로로 길게 찢어 붙여져 있는 그 곳에 차마 눈길를 주지 않는다.

그 희테이프 자리나 나중에는 무척 근지러워 혼난 기억이 난다.

 

몇일간은 그렇게 기분나쁜 치료를 하더니 4,5일 후부턴가 고름을 쫘야 된다며 수술 부위 윗쪽부터 양쪽손으로 중앙부분으로 꽉 쬐면서 압박을 한다.여러 번 그렇게

남자가 그것도 못참느냐고 흉볼까봐,또 병실의 분위기가 망치지 않기 위해 아프다는 소리도 못하고 입을 다물고 참는다.미리카락이 쭈빗하고 식은땀이 난다.

다 하더니 다음 날도 고름을 쫘야한단다.

치료 후 한참을 침대에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참느랴고 힘을 다 써버려 기운이 없다.

어휴 정말 내일이 오는 것이 겁이 난다.

얼마의 고통을 더 느껴야 퇴원을 하게 되는 걸까?

다행히 그 다음날은 어제 처럼,어제 하루 종일 걱정한 것에 비해 그렇게 많이 아프지 않았다.

 

입원 12 3/29일 퇴원

그뎌 퇴원  

병원 생활은 다지 가지를 놓는다면 편했다.

직장 생활에서 주는 스트레스도 없고 만의 시간,잠도 맘대로 있어 좋다.

이제 신선놀음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가서 부딪기며 살아 가야 한다.

자의 의무를 치르러

병원에 있으면서 하복부 배가 엄청나왔다.

당시는 몰랐으나 여름휴가 찍은 사진을 보고 놀란다.

그리고 멀리 여행가기가 어려워 가까운 관악산에 가면서 산에 다니게 된다.

 

글의 마무리 정리하고 있는 지금 2004 11 11

병원을 퇴원한 벌써 1 8개월 정도가 지났다.

때와 마찬가지로 같은 일상 생활를 때나 지금이나 하고 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하지만 나의 인생에 있어서 이번의 병원 생활이 많은 변화를 ,간접적으로 주리라고 생각한다.

좋은 방향으로.긍정적인 방향으로

그리고 인생을 활기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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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흉선종이란
흉선은 종격이라고 불리는 부위에 있는데, 실제로는 몸의 거의 중앙에 있으며, 흉골의 뒤쪽, 심장의 앞쪽에 있는 작은 장기입니다. 우리에게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장기입니다만, 태아에서부터 유아 때까지는 몸의 면역기능을 담당하는 중요한 일을 합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 기능을 마치고 퇴화됩니다. 흉선종은 퇴화된 흉선의 세포에서 발생하는 종양입니다. 따라서 흉선종은 자가면역질환이라고 불리는 면역기능이상과 관계되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전신의 근력이 저하되는 중증근무력증입니다.

흉선종은 결합조직이 피막으로 덮여서 비교적 천천히 증식하며, 전이가 일어나는 경우도 극히 드뭅니다. 그러나 진행되면 주위의 , 심장, 대혈관으로 침윤하거나, 파종이라고 하여 흉강에 씨를 뿌리듯이 퍼져갑니다. 극히 드물기는 하지만 흉선종 중에서는 상당히 악성도가 높은 것이 있는데, 이들은 흉선암이라고 불러 따로 구별하고 있습니다. 흉선종은 30 이상의 성인에게서 발생하며 남녀 차이는 없습니다. 흉선종은 비교적 드문 질환입니다. 소아에게서 발생하는 일은 더욱 드뭅니다. 원인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앞에서 말한 면역이상과 관련된 중증근무력증, 적혈구빈혈, 셰그렌병 등을 합병하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2.
증상

흉선종에 의한 증상은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있습니다. 가지란 종양 자체에 기인하는 증상과 면역이상 등의 합병증에서 오는 증상입니다.

흉선은 성인에게 있어서는 기능적으로 퇴화된 조직이기 때문에, 부위에서 발생하는 초기의 흉선종이 증상을 나타내는 일은 드뭅니다. 초기 흉선종의 대다수는 정기검진 등에서 찍은 흉부 X 사진의 이상을 통해 우연히 발견됩니다. 흉선종의 증상은 종양이 커져서 주위의 장기를 압박하거나 침윤해서 파괴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가슴의 통증, 기침, 객담, 호흡곤란, 상반신 특히 안면, 경부의 울혈, 부종 등입니다. 그러나 이들 증상은 상당히 진행되고 나서야 나타나는 것이며 무증상인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 한편 합병증에 의한 것으로 대표적인 것은 앞에서도 언급한 중즌근무력증, 적혈구빈혈 등입니다. 중증근무력증의 자각증상에는 눈꺼풀이 내려오거나, 사물이 개로 보이거나, 손발의 근력이 저하되거나, 삼키는 힘들어지는 등이 있습니다. 적혈구빈혈에 의한 빈혈증상이 나타납니다. 이처럼 합병증이 먼저 나타나는 경우에, 흉선종 자체는 나중에 전신을 검사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발견되게 됩니다.

한가지 주의해야 점은, 빈도가 낮기는 하지만 흉선적출 후에 중증근무력증이 발증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흉선종은 종격의 흉선에서 발생한다. 소아에서는 드물고 성인에서는 모든 연령층에 걸쳐 발생하는데 특히 20-40대에서 호발한다. 발생빈도상 성별간의 차이는 없다.

  • 환자의 반에서는 증상이 없다.
  • 그외 증상이 있는 경우는 흉통, 호흡곤란, 객혈, 기침등이 나타날 있다. 악성인 경우 주위장기의 압박이나 침입에 의한 증상이 보다 빈번히 나타날 있는데, 상대정맥증후군을 일으키기도 한다.
  • 종종 면역기전과 연관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전신증상이 나타날 있다.
    • 중증근무력증은 이중 대표적인 질환으로 흉선종 환자의 10-50%에서 나타날 있다.
    • 기타 적혈구 무형성, 쿠싱 증후군, 저감마글로불린 혈증, 전신성 홍반성 루프스, 류마키스양 관절염, 거대식도증, 육아종성 심근염 등과 연관될 있다.

 

외상성(外傷性)기흉과 자연기흉으로 분류되는데, 자연기흉에는 폐결핵과 폐렴 등에 의한 증후성(症候性) 임상적으로는 나타나지 않는 특발성(特發性) 있다. 기흉이 갑자기 생기면 심한 통증과 숨이 차고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보통, 안정을 취하면 자연히 치유되지만, 인공적으로 흉막강 내의 공기를 배출한다든지, 때로는 외과적인 개흉술도 필요하게 된다. 폐결핵의 경우에는 병소(病巢) 있는 폐엽(肺葉) 위축 ·안정시킬 목적으로 하는 인공기흉술이 있지만, 항결핵제(抗結核劑) 같은 화학요법 발달로 최근에는 거의 시행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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