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16차 (7구간)
<부항령~삼도봉~석교산(화주봉)~우두령>
○ 2006.11.25 (토) / 오전 흐림,오후 맑음
○ 거리 및 시간 : 19.25km, 8시간 25분 (접근 시간 10분 제외)
주요 지점 | 시간 | 소요시간/누계시간 | 구간/누계거리 | 비 고 |
삼도봉 터널 | 16:50 | - | ||
부항령 | 07:00 | 0분 / 0분 | 0 | |
헬기장(1030봉) | 08:05 | 1시간5분/1시간5분 | ||
백수리산 | - | - | ||
1170봉(무풍 304) | 09:20 | 1시간15분/2시간20분 | ||
나무계단 | 09:25 | - | ||
삼도봉삼거리 | 10:30 | - | ||
삼도봉 | 10:40 | 1시간20분/3시간40분 | ||
삼마골재 | 11:00 | - | ||
1123.9봉 | 11:26 | - | ||
밀목재 | 11:45 | 1시간5분/4시간45분 | ||
폐광(위험지대) | 12:32 | - | ||
1175봉 | 13:12 | - | 점심20분 | |
석교산(화주봉) | 14:15 | 2시간30분/7시간15분 | ||
헬기장 | 14:45 | - | ||
샘터 | 14:43 | - | ||
우두령 | 15:25 | 1시간10분/8시간25분 |
구간 거리는 포항 셀파 자료 기준 / 누계시간은 중요 지점에만 표기
사진은 진혁진님 개념도입니다.
열여섯번째의 백두대간 길입니다.
시작이 반이라지만 백두대간 길은 아직 멀기만 합니다.
오늘은 경북,전북,충북 3개의 도가 한곳에 모이는 곳,
삼도봉을 지나는 백두대간길입니다.
부항령 첫걸음부터 올라가더니 급비탈로 시작해서 힘들었습니다.
전망은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삼도봉가기 전 눈꽃을 구경한 것이
가장 좋았던 것으로 기억될 대간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뻐해야 할 백두대간길에서 기분이 살짝 나빠지더군요.
우리의 역사가 중국과 일본에 의해 왜곡되고 있지만 정작 무관심하고
무성의한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씁씁하기만 하더군요.
태백산맥,소백산맥,,
저도 학교에서 이런 용어로 배웠지요.
하지만 이제는 이런 용어는 일본 학자 고토 분지로에 의해 정립된
지질학적인 개념상의 용어임을 이제는 많은 분들이 알고 있지요.
『태백산맥은 없다』(조석필. 사람과 산. 1997)에서
작가는
일본의 조선침략정책의 일환으로 실시된 광물탐사사업의 학술 책임자였던
고토 분지로가 1900년과 1902년의 두 해에 걸쳐, 14개월동안 이 땅을 답사하고
만들어 낸 '산맥'의 개념이 어느새 100년동안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이하 중략)
조선침략정책의 일환으로 만들어 낸 산맥개념 속에
태백산맥,소백산맥 등의 용어가 태어난 것입니다.
민족 정기를 끊어 버리겠다고 국토에 쇠말뚝을 설치하던 그들,,,
지질학적 개념이 필요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용어를 바꾸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백두대간은 지형적인 개념상의 산맥 개념이기에 백두대간 상에
태백산맥,소백산맥 등의 지질학적 단어는 적절하지 못한 표현이지요
삼도봉 대화합 기념탑에,백두대간 한복판에 태백산맥,소백산맥이라고
버젓이 쓴 글을 보고는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삼도화합을 이룬 것은 지질이 아니라 지형상의 삼도화합입니다.
경북 김천시장,전북 무주군수,충북영동 군수의 명의로 한 이 대화합의 탑을
조국을 위해 숨져간 분들이 보시면 좀 열좀 받으시겠습니다.
백두대간은 이젠 법적 보호대상입니다.
자연적 보호 대상만이 아니라 민족의 자존심도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부항령 ~ 삼도봉 <07;00~10;40> 3시간 40분>
삼도봉터널 06:50
새벽 2시반
알람에 일어나 부리나케 준비해서 북수원IC->영동->경부 고속도로를 타고 황간 IC에서 톨게이트비 9,600을 지불하고 좌회전하여 49번과 901번 지방도로를 타고 꼬불 꼬불한 길을 올라가니 산행기에서 많이 보아 온 우두령이 나옵니다.
도착하자 말자 차안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있으니 미리 예약한 무풍택시가 도착합니다.
택시를 타고 다시 대간 들머리인 삼도봉터널로 이동합니다.
택시비는 3만원
삼도봉 터널에 도착해서 준비하고 올라갑니다.
부항령 07:00
헬기장(1030봉) 08:05
삼도봉 터널에서 10분만에 도착합니다.
부항령에서 출발하자 말자 박세게 오릅니다.
가다 보니 묘가 나오고 또 묘가 나오고 또 묘가 나옵니다.
3번째 묘에서 왼쪽길로 올라가는 길도 있고 완만한 오른쪽 길도 있군요.
오른쪽 길은 우회길이고 물이 있다고 표시되어 있지만 왼쪽 올라가는 길을 택해 올라갑니다.
숨이 차 헉헉헉 대며 올라갑니다.
올라 가다 보니 앞에 큰 봉우리 2개가 보입니다.
어디로 가나??
나중에 알고 보니 왼쪽 봉우리을 먼저 거쳐 오른쪽 봉우리로 연결이 되더군요.
아마도 오른쪽 봉우리가 헬기장이 있는 1030봉입니다.
헬기장에서 커피한잔을 하고 다시 나섭니다.
저 멀리 가야 할 대간길 봉우리에는 구름이 잔뜩 끼여있습니다.
하늘에서 후두둑 소리를 내며 뭔가 떨어 집니다.
눈보다는 무겁고,,,좀 더 과장하면 우박,,이 떨어집니다.
나뭇가지엔 눈꽃이 피어 나고 있습니다.
겨울에만 피는 꽃.
▼ 부항령
▼ 헬기장
▼ 지나온 두개의 봉우리,왼쪽 봉우리에 헬기장이 있고
▼ 후두둑 뭔가 떨어지더니
▼ 눈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1170봉 09:20
눈 꽃을 보며 걷는 대간길은 행복 그 자체입니다.
이럴 땐 힘들어 하며 대간 가자고 하면 엄살부터 부리는 마눌에게 한소리합니다.
“남편 잘 만나 이런 구경도 하고 좋치 않아.어딜 가서 이런 구경하겠어”,,
그러나 이런 말도 늘 대간 막판가면 조용해야 합니다.ㅋㅋ
가다 보니 삼각점이 나옵니다
위에는 무풍 304, 아래에는 2003 재설이라고 쓰여져 있군요.
1170봉이라고 합니다.
나무계단 통로 09:25
1170봉을 지나 10분도 채 안돼 나무계단 통로를 만들어 놓은 곳에 도착합니다.
이곳은 여러 산행기를 보니 수해가 심한 곳인가 봅니다.
나무도 풀도 없어 비만 오면 토사 유실이 심할 듯,,,
안개가 끼여 잘 보이지를 않아 바닥을 자세히 보니 사면 보호 시설을 해놓았군요.
▼ 1170봉이라고 하는군요
▼ 경북 방향
삼도봉 삼거리 10:30
고도가 낮아 져서 이젠 눈꽃 구경 재미도 없어 졌습니다.
대신 물기가 머믄 산죽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습니다.
완전히 사우나 하는 기분,,,축축하고 차가운 기분
겪어보신 분들만이 아실 것입니다..
바지 가랑이는 흙이 묻어 낭인의 옷이 됩니다.
삼도봉 삼거리에 도착하니 이젠 햇볕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삼도봉 삼거리엔 김천 소방소에서 설치한 119비상구급함이 있군요.
대간에서 처음본 구급함입니다.
삼도봉 삼거리 이정표엔
해인리 0.5km 삼도봉 0.5km 중미마을 4.3km라고 쓰여져 있군요
▼ 삼도봉 안부,,,삼도봉 삼거리
삼도봉 10:40 / 3시간 40분
삼동봉 삼거리에서 삼도봉까지는 10분 걸리는 군요.
부항령 출발한 지 3시간 40분이 지났고,,
삼도봉 올라가기 전 둥그런 공이 먼저 모습을 드러내고
삼도봉에 올라 가자 말자 길은 왼쪽길과 오른쪽 길이 나옵니다.
왼쪽길은 석기봉,민주지산 가는 길이고 대간은 오른쪽 길입니다.
남자 한 분을 만납니다.
오늘 처음 만나는 분입니다.대덕산 쪽으로 가신다고 하더군요.
사진 한장 부탁하고 헤어집니다.
삼도봉.
3개의 도가 나뉘어 지는 곳
3개의 도가 합쳐지는 곳.
백두대간상에 나타나는 삼도봉이 3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리산 삼도봉- 전남 구례,전북 남원,경남 하동이 만나는 곳
거창의 삼도봉- 경남 거창,경북 김천,전북 무주가 만나는 곳
민주지산의 삼도봉 충북 영동,경북 김천,전북 무주가 만나는 곳,,,
그러나 민족대화합 탑에 쓰여진 태백산맥,소백산맥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안내문을 보니 기분이 별루 입니다.
민주지산 쪽은 안개가 끼여 전혀 보이지를 않습니다.
민주지산도 본래 충청도쪽에서 바라볼 때 산세가
민두름(밋밋)하다고 해서 '민두름산'이라 부르던 것이
일제가 지도제작을 하면서 지명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유사한자인 민주지산으로 잘못 굳어진 것이라 고 합니다.
처음 민주지산이라는 산이름을 들었을 때엔 민주(民主)라는
단어와 뭔 관계가 있나 하고 생각 했었는데,,
전혀 관계없다고 합니다.
이래 저래 여기 있기가 싫어집니다.
빨리 가자,,,
▼ 석기봉,민주지산,,아무 것도 보이지 않군요
삼도봉 ~ 석교산 <10;40~14;15> 3시간 35분
삼마골재 11:00
삼도봉을 내려가니 삼마골재에 도착합니다.
삼마골재는 삼도봉의 안부입니다.
설치한 이정표엔 삼도봉 0.9km 황룡사 3.5km라고 알려 줍니다.
지도를 보니 황룡사쪽으로 가면 물한리계곡으로 빠지는 군요.
▼ 삼도봉 내려가는 길
▼ 또 다른 삼도봉 안부,,삼마골재
▼ 뒤돌아 본 삼도봉과 삼마골재
▼ 민주지산
▼ 경북 방향
1123.9봉 11:26
밀목재 11:45
폐광지역 12:32
삼마골재를 지나 다시 올라 가면서 뒤를 돌아 보니
저 멀리 석기봉과 민주지산 산줄기가 보입니다.
30분도 채 안돼 이정표가 나옵니다.
지명은 표시되지 않았고 누군가 1123봉이라고 알려주고 있군요.
대간은 이 1123봉에서 우측 직각으로 꺽여 갑니다.
1123봉에서 20여분만에 또 다른 이정표에 도착합니다.
이번에도 누군가 밀목재라로 알려 주고 있군요.
저것을 낙서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 같군요.
오늘은 잡목이 무척 많아 멋대로 뻗친 가지들이
찌르고 핱키고 때리고 잡아 끌고,,,
어떤 놈은 눈을 찌릅니다.안경이 썼는데도,,
그래도 기분은 좋습니다.
가다 보니 철판이 보입니다.
철판 안내문을 보니 여기가 폐광지역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푹 꺼질지도 모르니 5M씩 간격을 두고 가라고 합니다.
세명이 함께 다 서 있으면 매몰될려나,,
어이쿠!!! 겁난다 빨리 가자,,
▼ 1123봉
▼ 가야할 대간길
▼ 밀목재
▼ 폐광지역
▼ 지나온 길
▼ 중앙에 대덕산이 보이고
1175봉 13:12
출발한 지 5시간이 넘으니
슬슬 배고 고프고,,
힘도 들고,,,
전망이 좋은 높은 곳이 나옵니다.
일망무제 [一望無際]의 장소이나 안개가 끼여 그리 맑지는 못하지만
사방팔방이 다 보입니다.
뒤를 돌아 보니 지나온 대간길과 석기봉,민주지산이 활짝 펴져 보이고
앞에는 가야 할 석교산의 화주봉이 보입니다.
왼쪽을 보니 높은 산줄기가 보이고 그 산이 황악산이더군요.
오른쪽에는 경북 부항면 대야리 마을이 보이고 그 너머 산군들이
보이고 나중에 여러 산행기를 살펴보니 대덕산도 보입니다.
이 곳이 1175봉입니다.
전망도 좋아 아예 점심 식사할 곳으로 정하고 자리를 잡습니다.
▼ 1175봉에서 바라본 민주지산
▼ 다음에 가야 할 황악산
▼ 지나온 길들
▼ 경북방향,,오른쪽에 대덕산이 보이고
▼ 석교산 화주봉
석교산 14:15 / 7시간 15분
20여분의 점심식사 후 석교산으로 출발합니다.
1175봉을 내려가는 길을 보니 오늘 처음 로프 구간입니다.
남자도 머리카락이 설만큼 급경사 비탈입니다.
처형이 먼저 내려가시고 마눌이 그 다음.
처음에는 로프만 보면 기겁을 하더니 이젠 제법 잘 갑니다.
훈련의 효과가 나타나는 군요.ㅋㅋ
내려 가는 동안 사방을 보며 찍사의 본분에 충실합니다.
작년 설악 공룡능선에서 내려가던 사람이 잘못해서 떨어뜨린 돌맹이에
밑에 있던 사람이 다친 사고를 산행기에서 읽은 후 동시에 내려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마눌이 먼저 내려 간 것을 확인 후 내려 갑니다.
출발한 지 50분이 채 안돼 석교산에 도착합니다.
해발 1207M
오늘 대간길 중 가장 높은 곳입니다.
정상석은 백두대간 석교산 1207M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이젠 내려 갈일만 납았군요
하지만 쉽게 대간이 보내 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 오늘 제일 난코스,,제일 위험한 곳
▼ 지나온 1175봉
▼ 가다 보니 멋째이님 표지기가 떨어져 있어 나무가지에 걸쳐 응급처치를 하고
▼ 지나온 1175봉과 그 뒤로 민주지산 능선
▼ 석교산 정산,,오늘 제일 높은 봉우리
석교산 ~ 우두령 <14;15~15;25> 1시간 10분
헬기장 14:45
샘터 14:43
우두령 15:25 / 8시간 25분
산책길 같은 길을 가다 보니 저 멀리 도로가 보이는 군요.
산책길도 한가한 산행에서나 산책길이지만 대간 끝무렵의 산책길은 고생길입니다.
가다 보니 헬기장이 나타납니다.
여기의 헬기장은 수십명이 모여도 될 만큼 크군요.
헬기장을 바로 지나자 나무에 물병이 하나 매달려 있습니다.
물이 있다고 표시해 두었습니다.
가보니 샘터가 있는데 마시는 물로는 좀 꺼려집니다.
어지간히 급하지 않는다면,,,
더구나 앞으로 40여분만 더 가면 우두령이고,,
멀리 송전탑이 보이는 군요.
석교산에서 출발한 지 1시간 10분만에 송전탑이 있는 우두령에 도착합니다.
우두령 도착 전 왼쪽 오른쪽에서 소 울음 소리가 들립니다.
우두령에 도착하니 소 형상의 표지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대간 출발 전에 우두령 검색을 해보니 이런 기사가 있더군요.
중부지방산림청 보은국유림관리소는 20일 영동군 상촌면 흥덕리 산 62-1
우두령 정상(해발 720m)에서 백두대간 표지석 제막식 및 복원식재 행사를 갖는다.
우두령 백두대간 표지석은 산림청이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금강산 설악산을 거쳐
지리산에 이르는 한반도 중심의 약 1400km에 이르는 구간중에 지역 역사 정보 등을
수록한 자연석의 표지석을 제작 설치했다.
한편 중부지방산림청 보은국유림관리소 백두대간 연구 혁신동아리회는
매월 1회 충청 지역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구간 별 탐방 및 보호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산지정화 및 산불예방활동과 함께 등산객을 대상으로
백두대간 사랑홍보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 다 좋은데 후손들에게 망신 당하지 않도록 잘 합시다.!!!”
▼ 가야할 대간길,,반시계방향으로 크게 돌아 돌아 황악산으로 갑니다.
▼ 가야 할 대간길
▼ 매일유업 김천공장 관련 시설물인 듯
▼ 우두령 가기전 헬기장
▼ 물병이 나무에 걸려 있고 물이 있다고 알려줍니다,
▼ 가보니 샘터가 있지만
▼ 석교산에서 우두령가는 길은 순합니다.
▼ 우두령에 있는 송전탑
▼ 우두령입니다.
▼ 최근 설치된 표지석
▼ 내용이 인터넧 자료로 찾은 것과는 내용이 좀 다른 것 같은데,
어떤 것이 맞는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부항령 ~ 우두령 산행시 참고 사항
1. 부항령에서 우두령가는 대간 길은
- 부항령에서부터 급비탈 오름길이 시작되어 초반부터 힘들었고
- 잡목 등이 많아
- 전망이 많은 곳이 별로 많지 않았고
- 삼도봉에서 민주지산 가는 길과 대간길이 있어 주의 진행
- 1175봉에서 석교산 가기 길은 급비탈 : 위험 주의 구간
- 석교산을 지나 우두령까지는 순한 길이었습니다
2. 표지기가 적절한 곳에 있고 안내판과 표지기만 잘 따라 오면 별 무리없이 진행할 수 있음
3. 식수 구할 곳 :
- 삼도봉 터널(부항령)에는 화장실과 정자가 있음
화장실에는 수전이 없었 물이 없는 듯,,,
- 우두령 터널 바로 옆에는 매일유업 김천공장이 있음
유사시 이용 가능할 것으로 보임
- 부항령에서 3번째 묘 근처 물 구할 곳이 있다고 하나 확인 못함
- 우두령 가기 40분 전 샘터가 있음 : 깨끗하지는 않았음
4. 부항령에서 우두령 : 30,000원(무풍택시 011-689-6660)
무풍택시가 3대 있어 사전 예약하는 것이 좋음
참고 자료 !!!
○ 교통 : 자가용 왕복 460km
북수원à영동à경부à황간IC-> 49번 à 901번 지방도로
○ 경비 : 약 11만원 (차량 유류비 포함)
유류비 : 6만원
톨게이트비 19,200 (9,600*2)
택시비 30,000 (무풍택시 011-689-6660)
○ 준비물 :
물 : 약 3리터 (보온병 1.5리터 + 500ml 3병)
먹거리: 점심 (밥+멸치+고추장+김치)
간식거리(커피,사과 3개,귤 약간,과자 1개,복숭아캔 1캔,가래떡 약간)
휴대품 : 모자,수건,장갑,스틱,지도(1;50,000 조선일보 백두대간 제공)
비상용 물품 : 비상약품(대일밴드+스프레이파스,신경근육이완제)
기타 : 헤드렌턴2+디카+건전지(핸폰,디카,헤드렌턴)
휴지,비닐봉지(쓰레기)
알고가기 !!!
『태백산맥은 없다』(조석필. 사람과 산. 1997)에서 인용
이렇게 분류를 하고 보면 명확한 사실을 한 가지 알 수 있다. 중간에 무엇인가가 잘못 끼어 들었을 가능성 말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 백두대간은 보이는 것 중심이니 지리학에서 다루고, 태백산맥은 보이지 않는 지질 구조 중심이니 지질학에서 다루면 제자리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태백산맥은 지리학의 자리까지 차지하고 있고, 백두대간은 제자리를 잃고 잊혀져 왔다. 중간에 잘못 끼어 든 것은 바로 일제의 식민지 정책과 그 정신적 유산들이다. 그 결과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마치 보이는 것인 양 교육을 받아 왔고, 또 그렇게 믿고 살아 왔다. 그 세월이 어느새 100년이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분명히 잘못된 것 같기는 한데,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무슨 관계가 있나. 이 때까지 그 사실을 모르고서도 잘 살아왔고 생활의 불편을 느끼지도 못했는데...."
이런 분들께는 다음 이야기를 들려 주고 싶다.
몇 백년 전 유럽에서는 천동설과 지동설이 자리다툼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알려진대로 천동설은 지동설이 등장할 때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태양, 달, 별들의 운행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이론으로서 천년이 넘게 사람들에게 의심없이 받아들여 졌다. 사람들은 하늘을 보면서 천동설을 생각하진 않았겠지만, 배워 온 대로 지구는 움직이지 않고 하늘이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늘을 보며 천체를 관측한 자료가 쌓여 갈수록 천동설로는 해결 안되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생겼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천동설은 자꾸만 복잡해져 갔다.
그런데 조금 다른 관점을 가진 이론이 나타났다. 바로 지동설이다. 지동설의 등장은 천동설보다 훨씬 간단 명료한 이론으로 천체와 지구에 관련된 사실들을 설명해냈다. 특히 관련 자료가 쌓여갈수록 이 이론의 진가는 더욱 빛을 발했다. 하지만 이 이론을 인정하는 데는 혁명적인 인식의 전환을 필요로 했고, 그 결과 기득권을 가진 종교 및 학자들에 의해 이단으로 몰리게 되었다. 이후의 결과는 역사가 말해준다. 천동설은 역사속으로 사라졌으며, 사람들은 지구가 돌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이며 하늘을 바라보게 되었다.
느닷없이 천동설과 지동설의 역사를 꺼낸 것은 백두대간과 태백산맥으로 대표되는 지리개념의 자리다툼도 이와 비슷해 보이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의 부활이 초기에는 산악인 중심으로 이루어 졌는데 그렇게 된데는 다음과 까닭이 있다. 산행이나 등산을 통해 이 땅을 속속들이 알고 싶어하는 산악인들의 열망은 태백산맥 종주, 소백산맥 종주같은 좀 더 인내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종주 산행으로 이어졌다.
태백산맥 종주는 태백산맥이 백두대간의 일부와 낙동정맥을 이어놓은 것이므로 아무 의심의 조건이 없었다. 하지만 소백산맥을 종주하려던 이들에게는 상황이 달랐다. 고로쇠 물로 유명한 전남 광양의 백운산은 지리산을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산 중의 하나로 소백산맥의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소백산맥의 종주는 이곳이 출발점이 된다.
(그림/ 백운산은 지리산을 지척에서 서로 바라보고 있지만, 소백산맥을 따라가서는 지리산에 가 닿을 수 없다. 하지만 호남정맥을 따라가면 멀지만 닿을 수 있다. 붉은 색의 점선은 소백산맥을 나타내며, 타원형안에는 백운산과 지리산 사이에 섬진강이 흐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종주팀들은 백운산의 마루금(능선)을 따라 지리산을 향해 힘든 발걸음을 내딛었다. 지리산이 멀리 보이는 곳에 도착했을 때, 난감한 일이 생겼다. 더 이상의 산행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누가 부상을 입어서도 아니다. 이유는 바로 앞에 섬진강이 누워 있기 때문이었다. 배를 타지 않으면 건널 수가 없는 상황이다. 학교 때부터 우리는 산맥은 산에서 산으로 이어진 것으로 배웠고, 당연히 그럴 것으로 생각했다. 분명 소백산맥은 산으로 이어져 있어야 했다. 그런데....
누군가 이런 설명을 내놓았다.
"일단 소백산맥을 지리산에서 끝나는 것으로 하는 것이 어떨까. 백운산은 독자적인 산으로 인정하자. 그러면 소백산맥은 끊김이 없이 계속 이어지니 이제 문제가 없다. 하지만 소백산맥에는 분명 백운산이 포함되어 있으니 어떻게 하나. 아마 책에서 실수를 한 것 같으니...."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푸념했다.
"지질학적으로 같은 구조선이라는 데야. 그것이 이어지건 안이어지건 무슨 상관이야.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면 되지. 쩝쩝...."
그렇게 이해하고 산악인들은 소백산맥의 종주는 불가능함을 알고 포기했다. 하지만 갑갑함은 영 가시지 않았다.
설명이 복잡해지거나 쩝쩝같은 말이 등장하면 본질과는 자꾸만 멀어지게 된다. 설명할 수 있는 간단 명료한 이론을 찾든지 아니면 만들어 내든지 그도 아니면 그 설명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백두대간의 등장(1980년 『산경표』 발굴)은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백두대간의 개념으로 보면 왜 백운산에서 지리산으로 갈 수 없었는지 바로 답이 나온다. 지리산은 백두대간에 속해 있고, 백운산은 호남정맥에 있는 산이다. 그러니 거리는 지척이라도 호남정맥을 빙 돌지 않으면 가 닿을 수 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가 닿을 수는 있는데 소백산맥을 타고서는 안된다. 산경도를 보면 이 사실이 명확해진다.
이제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태백산맥(지질구조선에 따른 산맥)은 지질학이나 지구과학의 교과서로 자리를 옮겨야 한다. 일반인을 교육시키는 지리학에는 백두대간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래야 <대동여지도>를 비롯한 옛부터 내려 오는 지도들도 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거기에는 단순히 이 땅을 현대 지도에 비추어 비슷하게 그렸구나 아니구나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닌 조상들이 땅을 바라보는 시각, 자연과 우주 바라본 관점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는 땅은 살아있는 생물체와 같은 존재 곧 함부로 다루거나 헤쳐서는 안되는 용으로 상징한 '땅의 기운(地氣)'이 흐르고 있다는 인식이 들어 있다.
일본의 조선침략정책의 일환으로 실시된 광물탐사사업의 학술 책임자였던 고토 분지로가 1900년과 1902년의 두 해에 걸쳐, 14개월동안 이 땅을 답사하고 만들어 낸
'산맥'의 개념이 어느새 100년동안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일제의 침략기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해방이 된지 55년이 되어 가는 이 시간에도 아직 (정신의) 식민지는 계속되고 있다.
또 한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아직 한 번도 우리 손으로 이 땅을 제대로 조사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교통과 통신 시설이 너무나 보잘 것 없던 시절, 말을 타고 다니며 100년 전 한 개인이 조사한 지질 구조가 현재에도 그대로 이 사회에 통용되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이 땅을 식민지로 만드는데 기초 자료를 수집하려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백두대간을 살리는 일이 비단 이름을 하나 바꾸고 안바꾸고 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조상들이 이 땅을 바라본 관점에서 현재의 개발과 보존에 대한 지혜를 얻어야 한다. 또한 우리 손으로 이 땅을 다시 답사하고 조사하여 민족의 자존심을 되살려 후손들에게 정신적으로도 부끄럽지 않을 나라를 만들어 가야 한다. 이 모두의 중심에 백두대간이 서 있다.(00/12 처음 작성)
행복한 하루 되소서 <사니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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