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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테마산행/일반산행

모락산-백운산-광교산 <계원예술대~모락산~오메기고개~백운산~광교산~형제봉~문암골>

by 사니조은 2021. 2. 8.

 

 

모락산-백운산-광교산

<계원예술대~모락산~오메기고개~백운산~광교산~형제봉~문암골>

○ 2021.2.7(일)

○ 홀로

○ 14km/6시간 10분

모락산과 백운산을 연결하는 산책길 같은 편한 길
한남정맥 개념도

 

 

0835 계원예술대

0925 모락산(387)

0940 절터약수터

오메기고개

1030 포장도로/의왕터널

1045 백운동산

1145 백운산(567)

1225 광교산(582)

1253 토끼재

1305 종루봉/비로봉

1343 형제봉

1445 문암골

1455 광교저수지

 

 

산행기>>>>>>>>>>>>>>>>>>>>>>>>>>>>>>>>>>>>>>>>>>>>>>>>>>>>>>>>>>>>>>>>>>>>>

 

 

어제는 마눌과 양평 바람쐬러 갔다 오고

오늘은 가까운 산으로 갈 생각으로 어디로 갈까 궁리하다 모락산-백운산-광교산 코스로 정했다.

이 코스는 10여년 전 한번 시도했었는데 모락산에서 백운산으로 연결되는 길에서 길을 차지 못해

실패했던 경험이 있는 코스인데 최근 많이 다니는 길인 듯 산행기에서 자주 등장하곤 한다.

 

집에서 마을버스 6번을 타고 계원예술대 버스 정거장에서 하차해서

학교로 가기 전에 화장실이 있는 공원에 들머리가 있다.

예전 이 근처는 아이들 초교학교 시절 학원가였다.

근처에 계원예술대가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위치를 몰라 궁금해서 오늘 이 곳을 들머리로 잡았다.

 

중앙 화장실 좌측으로 계원예술대 정문이 보이고 우측으로 들머리가 보인다.

 

들머리 계단으로 올라간다.

등로는 질퍽하고 미끄럽다.

청계산,모락산,백운산,광교산의 이런 질퍽한 등로가 싫고 사람이 많아 잘 안 오던 산이었다.

칠퍽한 등로 바로 밑에는 얼은 곳이 있어 자빠링하지 하지 않토록 조심조심,,,

이런 곳에서 넘어지면 대책이 없다.그냥 하산해서 집으로 가야 한다.

 

매주 산행하건만 몸이 무겁게 느껴진다.

두어번 쉼을 하고 나서야 예전 기억을 떠 올리게 만드는 바위들이 나타난다.

세종의 4째 아들 임영대군이 세조의 칼날을 피해 이곳으로 피난 생활을 했던 곳이라는

사인암을 지나 묘 한기 있는 곳에 도착한다.

산길샘 지도는 묘 바로 위 공터를 정상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아무런 표식이 없다.

 

 

산령각,,,나무 위에 딱따구리가 연신 쪼아대는 소리가 들리고
질척한 등로
안개가 자욱한
사인암
세종의 4째 임영대군이 세조를 피해 이곳에서 은신한 곳이라고 한다.
왕의 자손으로 태어나 부귀한 삶을 살다 외진 곳에 쫒겨 산다면 그 혼란스러움이란,,,
모락산의 정상인데 정상 취급 못 받고 있는,,,
백제시대의 산성
산길샘 지도상의 정상
백운산 갈림길

자료를 찾아보니 모락산 전투의 승리로 유엔군은 1번 국도와 47번 국도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고, 안양을 지나서 인천과 영등포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로써 한강 이남에 주저항선을 두고 서울을 사수하려는 중공군의 계획을 무산시켰다고 한다.

 

이정표 따라 백운산 방향으로

 

모락산성에 대한 설명판도 있지만 성터 흔적은 본 적이 없다.

공터에서 내려가 1951년 6.25전쟁 때 1월과 2월 사이에 있었던

중공군과의 전투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한 설명판이 있는 곳에서 백운산 방향으로 향한다.

 

모락산과 백운산으로 가는 길,,,

오늘 산행에서 가장 편안 산책길 같은 산길이었다.

아무도 없는 산길을 편한 마음으로 산책길 같은 오솔길을 걷는 즐거움,그 맛이란,,,

 

 

절터약수터 큰 바위
물이 잘 나온다.
땅 주인이 임영대군이라고

 

길찾기 주의 지점
사람없는 산책길,,,
예전에는 왜 헤맸을까?
여기가 능안고개
모란백운2 지점이다.
유일한 포장도로
모락백운3 지점
차량통행이 제법 많다.
잘 안보여 확대
백운동산,,,공원묘지
엄마+딸 팀 그리고 노년의 부부팀,,,무슨 사연일까?
요즘 자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여기가 모란백운 4지점
너무 빨리 갈려고 서두는 것보다는 자신에게는 알맞은 속도로 가야 한다.
백운산 정상에 도착한다.

 

 

 

백운산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많다.

광교산도 마찬가지,,,

백운산에서 광교산으로 가는 길에 한남정맥 길을 만난다.

백운산에서 부터 광교산을 지나 토끼재,형제봉으로 이어지는 길은 한남정맥의 길이다.

그 한남정맥의 길을 다시 걸어본다.

 

 

정상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이런 길들도 좋다.
한남정맥 길과 만나고

 

 

백운산과 광교산 가는 길에는 tbs중계소 송신탑 등을 지나게 된다.
높은 철탑 들이 보이고
억새밭,,,여기도 오랜만에 와 본다.
노루목,,,대피소도 잘 있는 것도 확인했고...
광교산 정상,,,시루봉
수원231
광교산 정상에서 바라 본 백운산(좌측 방향)과 바라산(우측)
수원과 용인의 경계지점인데 용인 방향
예전 용인시에서 설치한 시설물은 없었는데 오늘 와 보니 많이 설치해 놨다.

 

 

 

광교산 정상에서 다시 백해서 백운산 방향으로 가다 좌측으로 꺽어 토끼재,형제봉으로 간다. 

이 길은 개인적으로 추억이 있는 길이다.

이 길따라 광교저수지로 가서 저수지 구경도 할 참인데 배가 출출하다.

오늘 배낭은 가지고 왔지만 먹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때 마침 가는 길에 산중 포장마차가 나타난다.

그냥 넘어 갈 수가 없다.

컵라면에 막걸리 한잔으로 허기를 채우고 광교저수지를 거쳐 집으로,,,

 

토끼재로 향한다.
용인으로 내려가는 길도 많이 보인다.예전에 없었던 이정표들,,,
비로봉(종루봉)이 있었나??기억이 없었는데,,,
백운산(좌)과 광교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뒤돌아 보고
비로봉(종루봉) 정상

모락산은 6.25전쟁,,,이곳 광교산은 병자호란 때 전란이 잇었다고 한다.

자료를 찾아보니

광교산 전투(光敎山 戰鬪)1637128일부터 131일 까지 경기도 용인 광교산에서 벌어진 전투로, 전라도 근왕군이 청 제국 군대와 맞붙어 승리한 전투이다.

전라병사 김준용은 상당수가 정규군이 아닌 의병으로 구성된 병력 몇 천 명을 이끌고 광교산에 주둔하였다. 이날 새벽에 청군은 광교산으로 진격하였다. 그리고 조선군에게 기습공격을 가하려고 하였다. 기습전법은 청군이 조선군을 격퇴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된 전술이었다. 청군이 광교산 정상으로 올라가자, 여기에 매복하고 있었던 조선군 살수와 포수들이 청군에게 총탄과 화살을 수없이 많이 쏘았으며, 매복해 있던 조선군이 달려나와 닥치는 대로 청군을 베고 찔러 죽였다. 결국 청군은 심각한 타격을 입고 퇴각하였으나, 이후 다시 재정비하고 공격해왔다. 조선군은 청군의 가공할 만한 공세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싸웠다.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진 끝에 청군은 참패하였고, 청군 장수 2명이 전사하였으며, 양고리는 조선군의 활에 맞아 전사하였다. 광교산 전투는 병자호란 최대의 조선군의 승리였으나, 김준용은 남한산성으로 가지 못하였다.

 

이쪽은 젊은 사람들이 많이보인다.
형제봉
예전 동아리줄만 있었는데,,,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안전하다.
장사 잘되네,,,친절하지는 않다.

 

이거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여기서 우측 문암골로 내려간다.
문암골???
이 물은 광교저수지로 흘러 안성천을 거쳐 서해로 흘러들어가겠지?
광교저수지

 

  

 

다음주 금요일이 구정이다.

한 해가 시작된 것이 어제 같은데 달력한장 없어지고 벌써 2월이다.

 

작년 시작된 코로나로 평범한 일상이 사라졌다.

학교에서도 비대면 졸업식을 한다고 한다.

친구들 얼굴 한번 보지도 못하고 헤어지는 것이다.

 

사회 곳곳에서 코로나 후유증이 보인다.

잘 견뎌 내야 좋은 앞 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사니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