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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경표란 무엇인가/알고가자

산경표 자료 모음 -

by 사니조은 2012. 7. 28.

 

 

을유년 벽두부터 ‘백두대간’이 화제다. 정부 산하 연구기관의 첨단기술로 ‘대동여지도’와 별 차이 없는 백두대간의 실체가 확인됐는가 하면, 시민단체는 ‘백두대간 국가 지도에 표기하기’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올해는 또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는 원년이기도 하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해 두류산, 금강산, 오대산, 태백산, 소백산, 속리산, 덕유산, 영취산, 지리산으로 끝간 데 없이 어깨 겯고 이어지는 우리땅의 등뼈다. 그 마디마디에서 1정간과 13정맥이 갈라진다.

- 생명 길러낸 우리땅 등뼈 -

백두대간의 장쾌한 마루금을 떠올리며 4년 전 세상을 떠난 이우형 선생을 생각한다. 그는 재야 고지도 연구가이자 산악인이었다. 대동여지도 연구에 빠져 있던 그는 1980년대 초 서울 인사동 고서점에서 18세기 초 여암 신경준이 제작한 것으로 여겨지는 옛 지리서인 ‘산경표’를 발견했다. 그것은 우리땅의 인문·지리 개념을 바꾼 ‘대사건’이라 할 만하다.

그는 대동여지도와 산경표를 일일이 대조하면서 백두대간이 우리 국토의 큰 뿌리임을 일찌감치 알아차렸다. 틈만 나면 대동여지도와 산경표를 배낭에 넣고 산과 강을 쏘다녔다. 그는 산경표를 현대 지형도의 능선에 맞춰 새롭게 그려낸 ‘산경도’를 제작했다. 실측을 통해 ‘우통수’로 알려졌던 한강의 발원지를 태백 ‘검룡소’로 바로잡은 것도 지리학계의 소득으로 남았다.

지금까지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산맥이란 개념은 일제의 지리학자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가 땅속의 지질구조를 근거로 만들었다고 한다. 호남정맥과 노령산맥의 차이는 이름에만 그치지 않는다. 산맥선을 따라가면 도중에 강이 막아서고, 실제 지형과 일치하지 않는다. 노령산맥의 속리산과 운장산을 금강이 갈라 놓는다. 태백산맥에는 태백산이 없다.

반면 백두대간의 산줄기는 결코 강이나 내로 끊어지는 법이 없다. ‘산은 물을 건너지 않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원리다. 같은 산자락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같은 물을 마시고, 같은 사투리를 쓰고, 같은 문화를 나누는 공동체의 울타리가 된다. 이것이 이우형 선생에 의해 ‘재발견’돼 우리 산줄기에 대한 인식의 틀을 뿌리부터 바꿔놓은 백두대간의 핵심이다.

그는 학계와 산악인들을 상대로 백두대간 개념의 탁월함을 설명했고, 태백산맥 대신 백두대간이라는 말을 쓰자고 호소했다. 남난희씨 등 산악인들이 그의 뜻에 호응해 마루금만 따라서 남쪽 백두대간을 종주했다. 뒤를 이어 대학 산악반이 줄지어 대간 종주팀을 꾸렸다. 90년대 중반부터 일반인들도 가세했다. 백두대간 종주자들이 늘어나면서 대간의 환경문제가 부각됐다. 이는 환경단체들의 백두대간 난개발 반대운동으로 이어졌다.

- 우리 산줄기 이름 찾아야 -

90년대 초 이우형 선생을 만났다. 그는 제도권 학자들에게서 푸대접을 받고 있었다. 고토에 의해 우리나라 민족 자존심과 국토인식의 왜곡이 시작됐다고 했다. 학생들의 지리 교과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생전에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시대의 고산자’ 이우형 선생이 백두대간을 복권시킨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이제 와서 고산자가 발품을 팔아 만든 지도가 오늘날의 등고선 지도보다 더 정확하다고 호들갑 떠는 것은 좀 생뚱맞다. 하루 빨리 태백산맥이니, 소백산맥이니, 차령산맥이니 하는 산맥 명칭을 우리 전통의 산줄기 인식에 따라 백두대간, 호남정맥, 한북정맥으로 되돌리는 일이 먼저다. 그것이 실제 지형과 일치하며, 우리네 고유의 지리인식이기 때문이다. 늦어도 너무나 늦었다. ‘애국이란 땅을 사랑하는 것이고, 다음은 그 땅에 사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우형 선생이 평생의 가르침으로 여겼던 고산자의 말은 그의 대동여지도만큼이나 여전히 유효하다.

〈김석종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