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50대 시민이 우리 땅 한반도의 산줄기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1712~1781년) 선생의 '산경표'를 재편집하고 한글로 번역까지 한 책을 발간해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은 박의석(57) 씨. 명함에는 산경표연구소 소장이라는 직함을 넣어 뒀지만 스스로 "말이 연구소지 나 말고는 연구원 한 명도 없는 1인 연구소"라고 밝히며 겸연쩍게 웃는 박 씨의 진짜 직업은 부산의 명소인 자갈치시장에서 해산물 가게를 운영하는 일이다.
언뜻 생각하면 해산물 가게 대표라는 직업과 산경표의 연관 관계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박 씨는 '산경표'를 새로 편집해 세상에 내놓게 됐을까.
박 씨는 "어릴 때부터 한자와 한학 공부를 많이 했는데 산에 빠져 산행을 하면서 우리 산줄기를 가장 체계적으로 정리한 기념비적 유산인 '산경표'에 관심이 갔다. 그런데 현재 통용되고 있는 산경표는 여암 선생이 작성한 원본에서 변형되거나 내용 누락 등의 문제가 있어 내 손으로 바로 잡고 싶었다"고 책을 낸 동기를 밝혔다.
사실 박 씨가 자신의 순수 저술도 아닌 이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는데는 10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 걸렸다. 생업과 자료 조사 및 산줄기 답사를 병행하기가 그리 녹녹치 않았는데다 실제로 원본 자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 씨는 "10년 전까지도 산경표 원본은 세상에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여암 선생의 직계 후손 집에까지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했지만 그 분도 안타까워하며 원본은 없다고 해서 난관에 봉착한 바도 있다"고 회고했다. 일제강점기 때 서울의 한 국어학자가 빌려간 뒤 분실됐으며 그 행방을 지금까지 찾지 못했다는 말을 들은 것. 하지만 박 씨는 각고의 노력 끝에 여암 선생 직계 후손의 친척으로부터 원본의 필사본을 볼 수 있는 협조를 얻어 책 편집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원저자인 여암 선생은 조선 영조대왕의 명으로 동국문헌비고 여지고를 편집하기 위해 전국 산천을 직접 답사한 후 당시까지 나와 있던 모든 지리서를 참고해 문헌을 완성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산경표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 산경표는 백두산에서 지리산 천왕봉에 이르는 백두대간(1대간)과 1정간 14정맥 2지맥이라는 한반도 산줄기 경계의 효시가 됐고 이후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제작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박 씨는 "기존의 산경표는 일제강점기 때였던 1913년 조선광문회가 발간한, 육당 최남선 선생 편수본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는 원본과 상당 부분 차이가 날 뿐 아니라 누락된 부분도 많다. 또한 지금까지 우리가 학교에서 배워 온 산맥 개념은 1903년 일본 지리학자 고토 분지로가 만든 개념이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의 산줄기를 왜곡하고 나아가 민족 정기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박 씨는 10여 년 동안의 노력을 쏟은 이유가 바로 우리 선조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산경 개념을 바로 세우기 위한 것이었던 것. 그는 "서울과 부산의 많은 출판사를 찾아 다녔지만 모두가 '돈이 안된다'며 손사래를 치는 바람에 결국 입력은 딸이 하고 출판은 자비를 들여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전반부는 한자로 된 표이고 후반부는 이에 대한 한글 번역 및 해설 부분이다. 서면 영광도서에서 1만 원에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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