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이야기/아름다운 사람들

어느 국수집이야기

by 사니조은 2012. 1. 31.

'옛집"이라는 국수집



서울 용산의 삼각지 뒷골목엔
'옛집'이라는 간판이 걸린
허름한 국수집이 있다.
달랑 탁자는 4개뿐인...

주인 할머니는 25년을 한결같이
연탄불로 뭉근하게 멸치국물을 우려내
그 멸치국물에 국수를 말아낸다.

10년이 넘게 국수 값은 2,000원에 묶어놓고도
면은 얼마든지 달라는 대로 더 준다.
몇 년 전에 이 집이 SBS TV에 소개된 뒤
나이 지긋한 남자가 담당 PD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전화를 걸어온 남자는 15년 전 사기를 당해
재산을 들어먹고 아내까지 떠나버렸다.
용산 역 앞을 배회하던 그는 식당들을
찾아다니며 한 끼를 구걸했다.

음식점마다 쫓겨나기를 거듭하다보니 독이 올랐다.
휘발유를 뿌려 불 질러 버리겠다고 마음먹었다.
할머니네 국수집에까지 가게 된 사내는
자리부터 차지하고 앉았다.

나온 국수를 허겁지겁 먹자
할머니가 그릇을 빼앗아갔다.
그러더니 국수와 국물을 한가득 다시 내줬다.
두 그릇치를 퍼 넣은 그는 냅다 도망쳤다.
할머니가 쫓아 나오면서 뒤에 대고 소리쳤다.

"그냥 가, 뛰지 말구. 다쳐!"
그 한 마디에 사내는 세상에 품은 증오를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