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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간9정맥(산경표)/한북정맥(完)

마음따라 발길따라 한북정맥<작은넉고개~죽엽산~비득재~축석령>

by 사니조은 2009. 5. 28.

 

 

마음따라 발길따라 한북정맥

<작은넉고개~죽엽산~비득재~축석령> 

  

 

2009.5.24 () 맑음

○ 홀로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산방기간이 끝났지만

대간은 고사하고 집 근처 산에도 다니지 못하다 겨우 한북 한 구간 다녀왔습니다.

 

지난번 단속이 심하다고 해서 가지 못했던 죽엽산.

비도 촉촉하게 내렸으니 일단 부딪혀 보자,,,

 

만우절 같은 토요일 아침.

16노무현 대통령 소식에 마음만 생숭생숭했던 하루였습니다.

지난 해 10최진실 소식에도 그리했지만 이번엔 강도가 더 세더군요.

세상사에 시달리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들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만,

밉고 안밉고,잘잘못을 떠나,안타까운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더군요.

 

이럴 땐 아무 생각없이 맘껏 녹음에 젖어 산길을 걷는 것 만큼 좋은 것은 없습니다.

5~6시간 예상하고 갔었는데 귀신에 홀린 듯한 역주행을 포함한 4번의 알바를 경험하고 돌아왔습니다.-_-;

 

죽엽산 이외에는 별 다른 특징없는 곳이지만 수락지맥이 이번 구간에서 분기점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수피령에서 시작한 한북 정맥을 솔고개까지 연결시키게 해준 산행입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궤어야 보석이다,,,라는 의미에서 구슬이 보석(?)이 되게 한 산행이지요.

 

큰 짐(?)을 진 분은 산에 갔으나 마음을 산에 두지 못했고

가벼운 짐을 지고 간 저는 산에 마음을 두고 왔습니다.

 

 

○ 작은넉고개~축석령 구간의 산행을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1) 들머리 : 33번버스à 큰넉고개와 작은넉고개 버스 정류장 중간인 맹촌 버스 정류장 하차-진목4거리

  à 마을 콘크리트 임도 도보 20à작은 넉고개

 

2) 작은넉고개~죽엽산입산통제 안내판까지는 표지기를 따라 진행하면 되지만 숲이 우거져 전망도 볼 것도 없고,

  사람 통행이 별로 없었고 원시림(?)을 맛볼 수 있음

 

3) 죽엽산 입산통제 안내판~죽엽산 정상~임도( 50분 소요)까지는 표지기를 볼 수가 없어 주의 진행(통제 구간)

- 죽엽산 정상석 표시 없음,정상 바로 옆에 헬기장이 있음

- 죽엽산 정상에서 5분 정도 지나면 林(?) 모양의 측량석(?)이 나오고 다시 5분 정도 진행하면

  좌,우 갈림길이 나옴 à 여기에서 오른쪽이 정맥길 (주의 구간) : 표지기 없음

- 갈림길에서 내려가면 내림길에 노송 군락지가 나오고 곧 바로 폭 5m 정도의 포장되지 않은 임도

  à 임도에서 직진

- 내려오면서 방향 확인 필요 : 송전탑 방향 확인 진행

 

4) 비득재에서~축석령까지는 표지기가 있으나 주의 진행해야 할 구간 많음

- 비득재에서 노고산(고모산) 까지는 약 30

- 노고산(고모산)에서 40분 정도 가면 정면에 묘 한기

 à 정맥길은 급 좌틀 (숲이 우거져 표지기가 잘 보이지 않음)

      ** 무심코 직진하여 알바

- 묘 좌측으로부터 천주교 공동묘지 지역 à 10분 정도 진행  

à 앞쪽에 숲 + 군부대 철조망이 보임

- 이후 군 철조망을 오른쪽에 두고 계속 진행

à 중간에 안부하나 나오고 계속 철조망 따라 가다

오르막 왼쪽 숲에 표지기에서 좌틀(잘 보이지 않아 주의)

à 다름고개

-  다름고개는 포장된 98번 도로이며 많은 차량이 오가며

앞쪽에 식당이 있고 도로 건너 오른쪽으로 약 50미터 가면

표지기 보임

- 이후 귀락터널까지는 별 무리없음

(수락지맥 분기점이 있어 수락지맥 표지기 확인 진행)

- 귀락터널에서 축석령은 15분 정도의 거리이지만 알바하기 쉬운 곳임

  도로 건너 귀락터널을 등지고 앞쪽으로,,,등로가 도로와 같이 진행됨 

 

○ 거리 및 시간 : 도상거리 12.1 km / 7시간 10(알바 약 2시간 포함)

 

○ 교통편 : 전철 2,버스 2

갈때 : 의정부역 à 33번 버스 à 맹촌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진목사거리, 1시간) à 작은 넉고개

올때 : 축석령 à 의정부역(20~30분 소요) à

 

○ 준비물

먹거리: 점심 + 기타 먹거리

: 1.5리터

휴대품 : 수건,장갑,스틱,지도

기타 :비상약품(대일밴드+스프레이파스,신경근육이완제),디카

건전지(핸폰,디카,헤드렌턴),휴지,비닐봉지(쓰레기)

 

○ 소요 경비 : 1 만원 (전철2+버스2+ 기타 잡비)

 

주요 지점별 산행 시간/거리

 

작은넉고개           11:00

철탑                 12:18

죽엽산입산통제안내문 12:20

601(소삼각점)     12:24

헬기장               12:47

죽엽산 정상          12:50 (누계: 1시간 50)

(?)표시석          12:55

갈림길               12:59

: 알바(1)            12:59~13:05

임도                 13:13

철탑                 13:21

: 알바(2)            13:21~13:55

4거리               14:03

토지지신             14:04

 

비득재               14:10 (누계: 3시간 10)

철탑                 14:14

:점심                14:14~14:30
노고산               14:55 (누계: 3시간 55)

4거리                15:13

놀이시설             15:19

                  15:35

: 알바(3)            15:35~16:30             

천도교공동묘지       16:30~16:40

다름고개(98번도로)  17:02

귀락터널             17:34

: 알바(4)            17:34~17:50

축석령               18:10 (누계: 7시간 10)   

 

 

 

<산행기 >>>>>>>>>>>>>>>>>>>>>>>>>>>>>>>>>>>>>>>>>>>>>>

 

의정부역에서 제2청사 출구로 나와 좌측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33번 버스를 타고

큰넉고개와 작은 넉고개 정류장 중간, 맹촌이라는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니 진목4리 교차로다.

 

내린 방향에서 직진하면 구리/진접 가는 방향,우측으로는 양주,의정부 가는 방향,왼쪽으로 진목리 방향이라고

알려주는 교통표지판이 보인다.

 

횡단보도를 건너 바로 있는 마을 입구에서 콘크리트 임도를 따라 쭉 올라가기만 하면 작은 넉고개가 나오는데

올라가면서 보니 의정부,양주 가는 도로 밑으로 지난다.

 

작은 넉고개에 도착하니 오전 11.

3개월만에 오게 된 작은 넉고개,,,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성황당고개라는 부른다고 한다.

 

 

 

▽ 버스에서 하차 후,진목교차로,진지를 구축하고 적의 길목을 지킨다는 의미라고 한다.

 

   진목리(眞木里)
   본래 내촌면 내동면에 속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광현리를 병합하여 진목리라 하고 내촌면에 편입시켰다
.
   흔히 참나무정이라 불리는 이곳은 군인들인 진지(陣地)를 구축하고 적이 지나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는 의미인 진목리(陳目里)의 의미가 변화된 것이며

   참나무를 진목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 사진 한가운데 숲과 숲이 만나는 경계선,,,저곳이 작은 넉고개

    옛날에는 성황당고개라 불리웠다고 한다.

 

 

▽ 영글어 가는 포도

 

 

 

▽ 찔레꽃???

 

 

▽ 작은넉고개에 있는,,노부부가 살고 계신다.

 

    넉고개 이름 유래 : 함경도~한양 잇는 옛 교역길

 

    넉고개는 가산면과 내촌면 경계를 이루는 한북정맥을 넘는 고개다.

    이 고개를 기점으로 죽엽산과 국사봉이 구분된다. 이 고개는 옛날 함흥에서 한양으로 가는 간선도로로 인마(人馬)의 통행이 끊이지 않았다 한다.

    고개 이름은 본래 높고개로 불렸으나 세월 따라 변음하여 ‘넉고개’로 불리게 된 것이라 전해진다.

    함경도~한양 간에 제일 높은 고개라 하여 높고개라 했다 한다.

 

   그러나 사실 이 고개는 높이가 170m에 불과하다. 그러나 높고개라 부르게 된 사연은 옛날 어떤 선비가 이곳에 사는 어떤 노인을 만나게 되어

  “이 고개가 무엇이 높습니까?”라고 비아냥거렸다 한다. 이에 그 노인이 선비에게 “당신 지금 함경도에서 올라왔소? 내려왔소?”라고 묻자

   선비가 “올라왔지요”하고 대답하자  노인이 “그러니까 높은 고개가 아니오”라고 답하였다는 우문우답(愚問愚答)의 해학이 담긴 전설이 전해진다.

 

   넉고개는 큰넉고개와 작은넉고개 두 곳이 있다. 참전기념비가 있는 구도로 고개가 큰넉고개이고,

   작은넉고개는 구 도로에서 서쪽 한북정맥으로 약 1.5km 거리에 있다.

   작은넉고개는 해발 약 200m.   (출처: 월간산)

 

 

 

<<<<작은넉고개~죽엽산~비득재 <11:00~14:10> 3시간 10>>>>>>

 

작은넉고개           11:00

철탑                 12:18

죽엽산입산통제안내문 12:20

601(소삼각점)     12:24

헬기장               12:47

죽엽산 정상          12:50 (누계: 1시간 50)

(?)표시석          12:55

갈림길               12:59

: 알바(1)            12:59~13:05

임도                 13:13

철탑                 13:21

: 알바(2)            13:21~13:55

4거리               14:03

토지지신             14:04

비득재               14:10 (누계: 3시간 10)

 

작은 넉고개 들머리를 올라서니 바로 묘가 나온다.

대간과 정맥을 할려면 묘지와 익숙해져야 하는 것인가 보다.

어릴적 아버님과 함께 듣던 전설따라 삼천리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귀신,처녀,하얀색,빨강색,파랑색,권선징악,,,이런 이미지가 남아있다.

 

묘지가 무서워 가까이 하기 싫었던 내가 산을 헤집고 다니면서

수많은 묘를 만나는 취미를 가지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선가 삶과 죽음이 다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묘지가 더 이상 무서움의 대상은 아니다.

 

전망은 없으나 울창하여 햇살 마져 잘 들어오지 않는 숲길,,,

대간길에서 많이 보던 우산나물,둥굴레, 등도 보이고 찔레꽃도 보인다.

산딸기는 많이 봤지만 산딸기 꽃은 처음본다.

 

땅바닥에 푸른 움직임이 있어 보니 실같이 가는 놈,,,

처음엔 사마귀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도마뱀 같기도 하고,,,

온통 푸릇푸릇한 주변에서 눈에 특히 잘 띄는 빨간색의 작은 풍뎅이 같이 놈도 보이고,,,

숲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드는,,,원시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개념도 지도만 달랑 들고 와서 어디가 어딘지,,,철탑이 보인다.

지도에 보니 이제 죽엽산,,,출금 지역이 다가오고 있다,,,

 

철탑을 바로 지나니 하얀 현수막이 보인다.

한치의 머믓거림없이 출금지역으로 들어선다.

 

지금까지는 자유로운 산행이 가능했고 표지기도 있어 별 어렵지 않게 왔지만

이제 부터는 긴장을 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가파른 길을 오른다.

왼쪽에는 하늘을 찌를 듯 나무들이 쭉쭉빵빵이다.

산림청에서 표지기를 모두 제거했는 지 예상대로 표지기를 볼 수가 없다.

 

언제나 편한 맘으로 산을 다닐 수 있으려나,,,

일방적으로 정해진 규칙을 어기면 범법자로 내몰린다.

법을 만든 사람들이 오히려 법을 더 악용하는 세상,,,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가쁜 숨을 내쉬며 오른다.

배도 고프지만 빨리 출금 지역을 벗어나 한가로이 식사를 하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가는데 앞에서 움직임이 보인다.

 

왼쪽에 바위가 있어 몸을 숨겨본다.

남녀 여러명이 지나간다.

어느 여자는 아예 야호~~~~라고 소리를 지른다.

~~~~~~~????#@%&*

 

출금지역이라 숨소리,발소리마저 죽여가며 이렇게 사람보자 말자

바위에 몸을 숨긴 나는 뭐고, 저리 소리지르는 저 사람들은 뭐야????

 

나만 바보인가???

다시 길을 나서는데 앞에 또 사람들이 온다.

22,,,서로 긴장한 목소리로 수고하십니다,,,’

서로 인사를 건내고 서로 갈 길을 간다.

 

잠시 후 오름길을 오르니 헬기장이 나온다.

이 곳이 죽엽산 정상 옆에 있는 헬기장이다.

 

헬기장 바로 지나 있는 죽엽산 정상에는 정상석도 없고

단지 출금 지역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안내 플래카드만 있을 뿐.

 

작은넉고개에서 1시간 50분 소요되었다.

 

 

 

▽ 들머리에서 바라본 진목교차로 방향 전경,,,바로 앞 도로가 지도상의 광능숲 우회도로,,,광릉수목원가는 길.

 

 

 

▽ 산딸기는 많이 봤는데,,,그 꽃은 오늘 첨 본다.ㅎ 

 

 

▽ 이런 길을 한참 간다.

 

 

▽ 계곡으로 변해가는 중,,,

 

 

▽ 이 작은 녀석은 뭔가,,,사마귀인 줄 알고 봤더니 도마뱀 같기도 하고.

 

 

 

 

 

▽ 대간길에 많이 보던 둥글레,우산나물(?)

 

 

▽ 가지 많은 나무,,,역삼각형 모양이라 특이하게 보이던 녀석

 

 

▽ 울창한 숲,,,숲이 살아 있다.토양도 좋아 보이고.

 

 

 

 

 

▽ 지도상의 철탑,,,출금지역 죽엽산 시작 임을 미리 알려준다.

 

 

▽ 멋진 소나무,,,왜 출금 지역인가 미리 맛뵈기로 보여준다.

 

 

 

▽ 이제 부터 본격적인 죽엽산 출금지역

 

 

▽ 출금 지역인데 우측에 줄 하나 쳐 놓고 경고문도 걸어 놓았다.   출금지역에 또 출금 금지,,,아놔,난 내 갈길로 가련다. 

 

 

 

 

 

 

 

 

▽ 지도상의 601봉,소삼각점이 있다.

 

 

 

▽ 죽엽산 정산 바로 전에 있는 헬기장

 

 

▽ 죽엽산 정상.정상석도 없다.

 

 

 

정상에서 5분여쯤 걸어가니 경계측량석 비슷한 시설물 상단에 林 비슷하게 세겨져 있다.

산림청에서 설치한 것이라 짐작하고 5분쯤 다시 가니 나무 하나가 가로로 길게 늘어져 있고

길은 오른쪽과 왼쪽길 두갈래길이 나온다.

 

또 시험에 빠져들게 한다.

어디로 가야 하나,,,

이번에도 오른쪽으로 내려 갔다가 아닌가 싶어 다시 올라와 왼쪽으로 갔다 되돌아오는

짦은 알바를 하다 오른쪽 길에 운을 던지고 나선다.

 

내리막길을 좀 가다 보니 잘생긴 소나무 군이 나타나고 가다가 정상을 오르는 남녀팀을 만난다.

 

지도를 보여주며 길을 확인하니 확신이 서지는 않았는데

임도를 보았냐고 하니 임도를 지나쳐 왔다고 한다.

 

잠시 후 폭 5미터 정도의 임도,,,

양쪽으로 잘생긴 노송이 있는 산책길 같은 임도가 나타난다.

임도 양쪽으로 표지기가 없어 직진한다.

 

지도상의 송전탑도 지나고,,,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정맥상의 송전탑은 아닌 듯,,,,

송전탑을 지날려고 하는데 땅이 울리더니 큰 뭔가가 도망친다.

직감적으로 멧선생인가 보다,,,무척 빠르다,,,~~~~

 

그런데 이번에 작은 뱀이 길을 막아 선다.

스틱으로 땅을 몇 번 쳤더니 도망치다가 안되겠는지

또아리를 틀고 머리를 뻣뻣이 세우곤 비키질 않는다

 

보니 배가 불룩한 것이 식사 후 따뜻한 길에서 오침 중이었나 보다.

실랑이 하다 스틱으로 걷어낼까 하다 그냥 내가 돌아가기로 한다.

 

나무에 걸려있는 명칭표

참나무,굴나무,리기다소나무,물박달나무,서어나무,,,느긋하게 걸어간다.

그런데 작은 산골길 같은 길이 나왔는데 표지기도 없고 위치상 정맥 위에 있는 것 같지가 않다.

 

또 알바다.

요즘은 알바를 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치는 모양이다.

 

주변을 살펴보고 지도를 보니 오른쪽 송전탑 쪽으로 가야 할 것 같다.

방향을 잡고 가는 길에 제법 운치 있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한 마리의 개가 나의 발소리를 듣고 짓는다.

그러자 지나는 방향으로 집집마다 개가 있는 지 개소리가 전달전달 되어 개소리가 끊이지를 않는다.

개가 그리 싫지는 않았었는데 요즘 하도 개들에게 시달리다 보니 개가 싫어진다.

개 주인에게는 충성스럽게 보일지는 몰라도 공격성을 보이는데 누가 좋아 하랴.

 

 

별장 수준의 집에서 제법 값이 나가 보이는 개가 또 나를 향해 죽어라 짓어댄다.

 

가진 것이 많으니 빼앗길까 걱정되니 저런 개를 키우나 보다.

~~~~~~라 엿이나 먹어라.

 

지나는 길에 작은 연못에 흰두루미가 나의 발소리에 멋진 날개를 펴고 날아간다.

 

산길로 들어서니 표지기가 반갑게 맞이해 준다.

정맥길에 복귀해 낮은 산길을 걸어가다 보니 송전탑이 나온다.

아마도 지도상의 송전탑인가 보다.

아까 본 그 송전탑은 아마도 알바 중인 줄도 모르고 지도상의 송전탑인 줄 알았으니,,,

 

송전탑을 지나고 사거리가 나오고 토지지신 묘가 있는 곳을 지나니

중앙선이 그려지지 않은 포장된 도로가 나온다.

 

지도상의 비득재.

작은 넉고개에서 3시간 10분 소요되었다.

 

비득재에는 운영 중인 식당도 있고 길 건너 폐쇄된 식당도 있다.

매점이 있으면 막걸리나 한통 사려고 했는데 매점은 없다.

 

 

 

▽ 이것 지나고

 

 

▽ 죽엽산 정상에서 10분만에 나타난 양 갈래길,,,오른쪽이 정맥길.

 

 

 

 

 

 

 

  

 ▽ 임도

 

 

 

 

▽ 임도에서 직진해서,,,갑장 반갑수,,,

 

 

▽ 여기까지는 잘 온 것 같은데,,,

 

 

▽ 이 송전탑은 지도상 정맥길의 송전탑은 아닌 듯,,,알바중???

    이 곳에서 땅이 울리더니 뭔가 휙 도망가는 멧선생,,,그리고

 

 

▽ 이 놈을 만났는데

 

 

▽ 도망가는 척하더니 힘에 부치는 지 포기하고 또아리를 틀고 비켜 주지를 않는다.

 

 

▽ 서어 나무,,,뱀 껍질 같아 보이던 이 나무가 서어 나무라고 한다.

 

 

▽ 알바 중

 

 

 

 

 

 

▽ 연못이,,,이곳에서 본 흰두루미가 날개를 펴고 날아 가는 모습,,참 우아하다.

 

 

 

▽ 다시 정맥길에 복귀해서

 

 

▽ 이 송전탑이 지도상의 송전탑인 듯.

 

 

 

 

 

 

▽ 뒤 돌아본 죽엽산의 모습

 

 

 

 

 

 

 

▽ 비득재

직동리와 고모리 사이에 위치한 고개 이름으로

닭이 닭장으로 날아든다는 의미인 비덕의 발음이 변화된 것으로

옛날에는 닭장을 주로 마굿간에 만들었는데 인접한 내촌면의 마명리가 마굿간을 상징하는 것이다.

 

 

 

 

 

 

 

 

<<<<<비득재~노고산~축석령 <14:10~18:10> 4시간>>>>>>>

 

 

비득재               14:10 (누계: 3시간 10)

철탑                 14:14

:점심                14:14~14:30
노고산               14:55 (누계: 3시간 55)

4거리                15:13

놀이시설             15:19

                   15:35

: 알바(3)            15:35~16:30            

천도교공동묘지       16:30~16:40

다름고개(98번도로)  17:02

귀락터널             17:34

: 알바(4)            17:34~17:50

축석령               18:10 (누계: 7시간 10)   

 

 

비득재를 출발하여 노고산 가는 길에 허기가 져서 더는 못 갈 것 같아

적당한 곳을 물색 중 철탑 주위 공터가 눈에 띈다.

 

된장,청량고추+양파,계란말이,,,정신없이 먹는다.

숲 속에서의 음습한 분위기,벌레,지져분한 느낌이 드는 곳을 피하여

큰 돌이 있고 전망이 좋은 곳,,,점심 자리로는 그만이지만 어디 찾기가 쉽던가,,,

적당한 자리를 찿지 못해 허기진 상태로 왔더니 무척 시장했나보다.

 

허기를 채우고 여유있게 방울토마토까지,,,먹거리 모두 털어넣고 일어선다.

 

점심 후의 가파른 길,,,그러나 철탑에서 고노산(고모산)은 그리 높지도 멀지도 않아 다행이었다.

 

고모산은 비득재에서 불과 30분이면 오를 수 있는 산이다.

전망은 있으나 그리 멋스럽지는 않다.

 

고모산에는 송신탑(?)이 있고 노모산산악회에서 세운 정상석

빨간 글씨로 정상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씌여진 나무말뚝이 있다.

 

그 뒤로는 그리 크지 않은 바위가 있다.

바위에 올라 보고 다시 길을 나서니 바로 이곳이 고모리산성터가 안내판이 있다.

 

가면서 지도를 꺼내 보는데 땅 쪽에 뭔가 푸르스름 한 기를 느낌과

 동시에 내딛던 왼 발를 급히 뒤로 물린다.

 

푸르스름한 빛이 도는 뱀 한마리.

오른발로 그 놈의 꼬리를 밣을 뻔 했다.

진동을 느꼈는 지 뱀이 잠시 움직이더니 더 움직이지를 않아

스틱으로 땅을 몇 번 때렸더니 그제서야 억지스럽게 물러난다.

 

가늘고 긴 동물을 싫어 하는데 오늘 정말 많이도 본다.

오늘 3마리의 뱀,알바 4,묘지에 홀려 역알바하는 경험도 하는 날.

미리 알았다면 오지 않았을 것이다.

 

고모산에서 10분 정도 내려 오니 제법 사람 통행이 많을 듯한 사거리가 나오고

다시 5분 더 가니 운동시설이 있는 곳이 나온다.

 

10여분 지나 앞에 묘 한기가 나오고 별 생각없이 그냥 직진한다.

이 것이 오늘 역주행 알바,1시간 알바의 시작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묘 바로 앞, 좌측에 있는 나무에 표지기도 있고

그 나무를 바로 지나치면 천주교 공동 묘지가 펼쳐져 있었는데

숲이 우거져 있어 보이지를 않았던 것이다.

 

 

 

하여간 어이 없는 역알바의 사연인 즉,,,

묘 앞에서 좌틀해야 했지만 표지기를 보지 못하고 아무 생각없이

묘 앞으로 지나쳐 또렷한 길이 있어 길을 내려 가니 양 갈래길이 나온다.

이번에도 오른쪽,왼쪽 길을 번갈아 내려 왔다 올라갔다,,,

이럴 때 기운이 다 빠져나간다.

결국 두 갈래길 모두 정맥길이 아니다 싶어 다시 묘 앞으로 왔는데,,,

 

묘 앞에 지나온 길 옆으로 표지기가 보여 그 길 따라 간다.

가는 길에 지도를 계속 보며 걷는다.

거리와 시간 정보 준비 없이 왔더니 어디가 어딘지를 알 수가 없다.

날은 덥고,,,

 

운동시설이 있는 곳이 나온다.이 지역에는 운동시설이 많네,,,

 

그런데,,,

 

~~~,,,언제 지나쳤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눈에 익은 곳이다.

완전히 귀신에서 혹한 기분이다.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어느 산행기에선가 한곳에서만 뺑뺑 돌다 기운을 다 빼고 돌아왔다는

산행기도 읽어 본 적이 있지만 막상 당하니 황당 그 자체다.

 

똑 같은 느낌의 장소를 두번 지나간다???,,,지도상의 위치도 불명하고,,,

앞으로 좀 더 가면서 그냥 집으로 갈까,,,,

다시 되돌아 가 다시 귀신이 있는 지 없는 지 확인하기로 한다.

 

어디서부터 알바가 시작되었고,어디서 잘못되었는 지 도통 모르겠다.

이러다 오늘 목표한 대로 끝내지 못하고 집으로 가야 할 판이다.

 

허겁지겁 정신없이 가다 보니 다시 그 묘로 돌아 왔다.

묘 주변을 살펴보니 묘 근처로 360도 길이 나있다.

 

그리고 보이지 않았던 표지기도 보인다.

나뭇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나뭇잎을 제치고 앞으로 나가자 갑자기 앞이 확트인다.

 

참 어이없다.

집에 와서 시간을 따져보니 1시간의 알바다.

 

알면 쉽고 모르면 정말 어려운 세상살이.

그러나 알바가 이번 끝이 아니었다.

 

 

 

▽ 고모산 가기 전 송전탑(?) 여기서 늦은 점심을 먹고

 

 

 

 

▽ 노모산에는 이런 시설도 있다.

 

 

 

 ▽ 노모산에서 바라 본 이곡리 방향 전경

 

 

 

 

 

 

▽ 지도 보면서 걸어가다 나를 깜짝 놀라게 한 녀석,,,하마터면 저 녀석 꼬랑지 밟을 뻔,,,1센티미터 정도의 간발의 차이

 

 

 ▽ 동네 산인 듯,,이런 사거리가 자주 나온다.마을과 가까운 정맥길.

 

 

▽ 운동시설이 있는 곳,,,한 시간 후 또 이곳으로 올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ㅎ

 

 

 

 

 

▽ 알바 중,,,

 

 

▽ 이 묘 좌측길이 정맥인데,,,좌측에 표지기도 있으나 나무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 다시 되 돌아와 만난 운동 시설 있는 곳,,,묘지에서 약 10여분 거리,,,참 미치겠다.

 

 

▽ 다시 되돌아 논 묘지 앞,,,오늘 이 묘지를 3번째 오게 된다.

 

 

 

 

 

정맥 능선 자체가 공동묘지화 된 곳을 지나간다.

가끔 있는 나무에 표지기가 간간이 보이고,,,

날이 흐리고 앞이 보이지 않을 땐 여기도 알바하기 쉽겠다는 생각이 든다.

흐릿하고 우중충한 날씨 속의 공동묘지에서 알바,,,

으시시하다.

 

정맥길은 앞쪽 숲과 오른쪽에 있는 군 철조망 사이로 진행된다.

군 철조망을 오른쪽에 두고 계속 길이 진행된다.

풀이 자라 또렷하지도 않은 길,,,그러나 철조망이 길을 안내한다.

 

표지기도 없애 버렸는 지 잘 보이지 않는다.

왼쪽 편에 평지와 오른쪽에 군후문(?)이 있는 안부에서 다시 철조망을 따라

올라간다,,,지루하게 재미없이 오르다 왼쪽 숲에 표지기가 보인다.

이 표지기도 날이 흐리고 시야가 좋지 않을 땐 잘 보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는 길에 군부대에서 키우는 개들인 지 짓어대기 시작한다.

 

별 재미없고 지져분한 느낌의 길,,,다시는 별로 오고 싶지 않은 길이다.

군 부대 후문에서 10여분 흐른 뒤 포장된 2차선 도로가 나온다.

 

시골길 같은 이 길,,,차량 통행이 많다.

앞에는 삐노클레라는 바비큐 집이 있다.수목원포도 간판도 있고,,,

 

잠시 왼쪽으로 가야 할 지 오른쪽으로 가야 할 지 판단이 서지를 않는다.

이럴 땐 느낌이 중요하다.

역시 도로를 건너 도로 제일 높은 곳을 지나 왼쪽 숲에 표지기가 보인다.

 

왼쪽 숲으로 들어가 5분 정도 걷자 왼쪽에 탁트인 공간이 나오며 논이 나온다.

마치 일부러 숨겨놓은 공간 같은 생각이 든다.

 

2분 정도 걷자 작은 4거리가 나오고 또 10여분 더 진행하자 다시 4거리가 나오고

오른쪽 편에 민가도 보인다.

이 곳을 살짝 넘어가자 큰 도로가 보인다.

직감적으로 귀락터널 있는 곳이라 생각하고 앞으로 가니 길이 갑자기 없어진다.

 

수로에는 흙과 풀이 자라 있고,,,뱀 생각도 나고,,,

어디로 가야 하나,,,

 

수로를 따라 좌측으로 가 보니 희미한 길이 나있다.

귀락터널 위를 지나니 표지기가 반갑게 맞이 해 준다.

 

그러나 이 곳에서 마지막 4번째 알바를 한다.

보통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이 곳에 길이 여러 군데로 나 있다.

수락지맥 표지기도 보이고,,,

자칫 잘못했다가는 수락지맥으로 빠질라,,,

 

표지기를 하나 하나 확인해 가며 따라 가니 도로 쪽으로 가게 된다.

느낌이 하산길인 듯 하여 다시 빽하여 귀락터널 위에서 다시 이리 저리 헤매어 보지만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 지,,,날은 저물어 가고 얼마나 더 가야 할 지,,,

홀산 백곰님,소주한잔님에게 전화해 보니 받지를 않는다.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지도를 자세히 본다.

지도를 보면 귀락터널을 등지고 오른쪽에 모텔을 두고 정맥길이 표시되어 있다.

일단 개념도 이지만 지도를 믿어 보는 수 밖에,,,

 

지도와 표지기를 확인해 가며 가니 처음 진행했던 도로로 빠지는 듯한 길로,,

도로를 오른쪽에 두고 나란히,,,만날 듯이 진행된다.

 

그러나 길은 도로에서 만날 듯하다 점점 조금씩 멀어지며 길이 이어진다.

오른쪽에 도로와 음식점이 나타나고,,,2층집 절 같은 곳에 커다란 이동갈비 광고 현수막이 보인다.

,,,저번에 축석령~샘터고개할 때 봤던 음식점.

축석령에 다 온 것이다.

 

숲속에서 남은 물로 손수건을 적셔 머리와 몸을 딱아낸다.

예비 옷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땀 냄새도 엄청 나는데,,,할수없다.

안면에 철판깔고,,,

 

축석령에서 의정부역 가는 버스를 탄다.

노원역 가는 버스도 있지만 갈아타는 번거러움도 있지만 전철이 빠를 것같다.

 

 

버스안은 한국도 이제는 세계화가 된 사회임을 확인시켜준다.

몽고인도 있고,영어를 사용하는 외국인과 한국인 친구,,,

여러 국가의 언어로 소통되는 버스 안에서 20~30분 지나 의정부역에 도착한다.

 

집에 와서 엄청 먹어댄다.

 

물질문명 사회를 살아가면서 감정 조절을 잘 하고 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공부 잘하고 못하고,돈 잘벌고 못벌고,,,좀 못하면 어떻고 좀 불편하게 살면 어떤가,,,아무런 문제없다.

문제가 없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 문제지,,,

 

요즘은 이외수 책에서 본 글이 생각이 자주 생각나는 것은 왜 일까???

 

그대가 진실로 아름답게 살고 싶다면,

가난에 익숙하고 세상살이에 서투르라.’

 

 

 

▽ 묘 죄측으로 살짝 꺽으면 이런 확트인 곳이 나온다.참,,,가림막을 쳐 놓은 것도 아닌데,,,,귀신에게 혹~한 느낌이다.

 

  

 ▽ 10여분 이런 길을 걷다가,,,바로 앞쪽 숲 우측과 좌측에 있는 군부대에서 설치한 철조망 사잇길이 정맥길.

 

▽ 가족묘

 

 

 

 ▽ 군부대 후문,,,철조망만 잘 따라가다,,

 

 

▽ 가다 보면 이런 집도 있다.

 

 

▽ 다름고개,,,98번 도로

 

 

 ▽ 다름고개에서 우측으로 50미터 정도 이동하여 좌측으로 붙으면

 

 

▽ 숨겨놓은 듯한 이런 곳이 나타난다.조금전의 다름고개와는 별개의 세상인 듯한 분위기.

 

 ▽ 귀락터널 직전의 사거리

 

 

 

▽ 귀락터널

 

 

 

▽ 귀락터널 위에서,,,

  나중에 알고 보니 굳이 이쪽으로 올 필요는 없다.

  도로 오른쪽으로 내려가 도로를 횡단해서 왼쪽 숲으로 들어가 계속 앞으로 가면 바로 오늘 목적지 축석령이다.

 

 

 

 ▽ 수락지맥,,,표지기가 여기 저기 있고,,,길도 여러개 있어 10여분 헤맨다.

 

 

▽ 도로와 만날 듯하다가,,

 

 

▽ 오른쪽 도로를 따라 모텔,음식점들이 보인다.

 

 

 

▽ 축석령에 있는 음식점.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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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퍼온 자료들인데 조금 다른 해석도 있는 것 같아 그 정확성은 확인할 수 없으나 참고로 보시기만 하시기 바랍니다.

 

축석령/祝石嶺

축석령은 천보산(天寶山) 기슭에 있는 고개로 포천군 소흘읍과 경계를 이루며
의정부시 북쪽 관문이 된다.
일명 2백리 고개라고도 하는데, 이 고개를 분수령으로 하여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포천천을

거쳐 한탄강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중랑천을 거쳐 한강에 이르므로 철원과 서울까지의
거리가 2백리가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축석령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지금으로부터 3백여년전 포천 어룡리에 오백주라는 효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한번도 부모의 뜻을 어기는 일이 없었다. 자라서 벼슬에 올랐을 때에는 백성들을 부모형제 대하듯 하였으며 성품이 곧고 청렴결백하여 그를 존경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가 귀성도호사로 있을 때 고향에 계신 부친이 병환으로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벼슬을 버린채 고향에 돌아와 정성껏 병 간호에만 열중 했다. 그러나 차도가 없었고 의원들도 무슨병인지 아는 이가 없었다.

 

하루는 여러날을 병간호로 지샌탓에 깜빡 잠이 들었는데 산신령이 나타났다.

 

"네 아비의 병은 산삼과 석밀(벌이 산속의 나무와 돌속에 모아둔 꿀)을 복용하면 나을 터인즉 너는 어찌하여 게으름을 피우며 자고 있느냐"

 

오백주는 정과 망치를 준비하고 길을 나섰으나 겨울철에 꿀을 구한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해가 저물어 내일 다시 찾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이곳 축석령을 넘게 됐다. 고개 마루턱을 거의다 올랐을 때 앞에서 갑자기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서 으르렁! 으르렁! 거리며 금새라도 잡아먹을 기세였다.

 

"내 비록 효성이 부족하여 석밀을 구하지 못하고 죽게됐다. 나 죽는 건 서럽지 아니하나 병환에 계신 우리 아버님은 누가 돌본단 말이냐. 부디 바라건데 석밀을 구한 후에 나를 잡아 먹어라"

 

오백주는 호랑이 앞에 통곡하며 애원했다. 얼마동안 엎드려 애원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호랑이는 온데간데 없고 큰 바위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꿀 냄새가 진동하고 바위틈에서 석밀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백주는 크게 기뻐하며 정으로 바위를 쪼개서 석밀을 정성껏 채취한 다음 산삼과 함께 복용시키니 아버지의 병이 나았다.

 

사람들은 효성이 지극한 오백주에게 산신령이 가호를 베풀어 바위를 호랑이로 변신시켰다 하여 이 바위를 범 바위라고 이름했다. 그후 오백주는 매년 이 바위에 와서 고사를 지내고 만수무강을 축원드렸다고 해서 고개 이름이 "축석령'이 됐다고 전해온다.

 

 

 

 

소흘읍의 역사적 변천과 자연환경

소흘읍은 포천군 남쪽에 위치하여 남면(南面)으로 불렀는데 1896(고종32)에 외소면(外所面) 소속인 송우리(松隅里), 이동교리(二東橋里), 무림리(茂林里), 이곡리(梨谷里), 직동리(直洞里)를 내소면의 이가팔리(二加八里), 초가팔리(初加八里), 고모리(古毛里), 무봉리(茂峰里)와 병합하여 소흘면(蘇屹面)이라 칭하고 9개리를 관할하여 오다가 1996년 2월1 읍으로 승격되었다.

소흘읍은 원래 소흘산면(蘇屹山面)이라 하였는데 이것은 새의 둥지가 있는 산이라는 소을산(巢乙山)의 이름이 변화된 것으로 소흘읍의 소재지인 송우리에서 연유한 것이며 소흘읍의 예전 이름인 내소면과 외소면 역시 새의 둥지를 말하는 것이다
.

소흘읍의 면적은 46.48㎢로 임야가 62%이고 인구수는 2002년 7월 30 현재 10,119세대에 남자가 15,480, 여자가 14,687명으로 총 인구수는 30,167명이다. 지리적으로는 포천군의 최남단에 위치하여 동쪽으로 가산면과 내촌면, 서쪽은 양주군과 경계를 이루고 남쪽은 의정부시와 남양주시, 북쪽으로는 포천읍과 인접하고 있다
.

동부에는 죽엽산(竹葉山)과 남부에는 용암산(龍岩山), 서부에는 천보산(天寶山)의 줄기가 뻗어 삼면이 산으로 둘러 싸여 있고, 중앙에는 태봉산(胎峰山), 노고산(老姑山), 향적산(香積山)이 솟아있다. 축석령(祝石嶺)은 의정부시와 경계에 있는 경관이 수려한 곳이며,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이 축석령과 죽엽산에서 시작하는 포천천은 북으로 흘러 그 유역에 평야를 만들고 있는데, 이가팔리에 있는 속칭 왕뎅이 벌은 옛부터 포천군의 상답(上沓)이라 일컬어지던 곳이다
.

읍사무소 소재지는 ´솔모루´라고 불러온 송우리는 옛부터 동북대로 즉 경원가로(京元街路)의 중심지이다. 이곳은 점막(店幕)과 역원(驛院)이었던 곳으로 옛날 동대문 밖으로는 제일큰 시장이 섰다는 유명한 곳으로 농촌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으며, 지금도 4일과 9일에 5일장이 서고 있다
.

교통은 43번 국도(호국로)가 남북으로 통하고 동쪽으로는 37번 국도가 가산면과 내촌면을 거쳐 춘천으로 향하고 있다. 축석에서 남양주시로 통하는 지방도와 서쪽으로 덕정을 거쳐 평화로 13번 국도로 이어지는 도로망이 발달되어 교통이 매우 편리하고 각종 기업체와 공장들이 들어서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

주산업은 쌀, 잡곡, 채소등을 생산하고 특수작물로 인삼, 과수도 재배하고 있다. 인구증가로 소도시가 형성되었으며 상업도 발달하여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
고모리, 직동리, 이곡리 등에서는 깨끗한 물, 아름다은 자연환경을 이용하여 낚시터를 비롯한 각종레저시설을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임업시험장을 중심으로 한 곳에서는 그 영향을 받아 육모사업과 각종원예사업으로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
.

소흘읍의 문화유적으로는 고모리 노고산에 삼국시대에 축성된 고모루성(古牟婁城)으로 추정되는 성지가 있으며, 무봉리에는 단종복위를 도모하다가 순절한 사육신(死六臣)중의 한 사람인 유응부(兪應孚)를 배향한 충목단(忠穆壇)이 있고, 이곡리에는 명종대의 명재상이었던 심통원(沈通源)의 묘와 신도비, 고모리에는 임진왜란때의 충신 권종(權悰)의 정문, 송우리에는 태봉(胎峰)이 있다
.

공공기관으로는 읍사무소 파출소, 우체국, 농협, 국립임업시험장, 산림박물관과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있다
.


송우리


소흘읍의 읍소재지로서 소나무에 있는 둥지,또는 집이라는 송울에 마을리()자가 합쳐져서 생긴 이름이며 이것은 풍수지리학으로 볼 때, ()의 둥지형상의 명당자리가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

▶ 솔모루


송우리의 옛이름으로 솔은 소나무를 말하는 것이며, 모루는 다락에서 춤을 춘다는 의미인 무루(舞樓)의 발음이 변화된 것으로 다락의 의미가 높은곳에 있는 방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나무위에 지은 새의둥지를 말하는 것이라 할수 있다
.

▶ 새 말


새가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인 새마을이 줄어서 된 것으로 여기에서 말하는 새는 송우리가 의미하는 학을 상징하는 것인데 그것을 마을 이름에 적용한 것 일뿐이다
.

▶ 연봉모루(蓮峰舞樓
)

연봉은 연꽃 봉우리라는 의미로 닭의 벼슬을 상징하는 것이고, 모루는 새가 둥지에서 춤을 춘다는 의미인 무루(舞婁)의 발음이 변화된 것으로 전체적인 의미는 닭을 상징하는 것이다
.

▶ 곤당골


닭이 있는 골자기라는 뜻으로 곤은 산봉우리를 말하는 것으로 한자로는 崑(뫼곤)이라 쓰며, 당은 닭을 발음대로 읽으면 달이되고 이것을 달다는 의미인 당(), 또는 사당이라는 의미인 堂으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

▶ 갈 뫼(추산동
)

글자대로 해석을 하면 가을산이란 의미로 계절을 상징하는 것이고, 가을하면 오동나무가 상징되며 오동나무는 봉황(鳳凰)이 둥지를 짓는 나무라는 뜻으로 근본적인 의미는 비봉형(飛鳳形)의 명당자리가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

▶ 돌문이고개


솔모루와 양주군 회천읍 사이의 고개 이름으로 솔모루가 의미하는 학의 울음소릴가 들린다는 성문(聲聞)이 고개라는 말의 발음이 석문이로 변화되어 돌문이고개란 전혀 다른 지명으로 바뀐것이다
.

▶ 벼락바위


아랫솔모루 남쪽에 있는 바위 이름으로 새가 날아와 앉는다는 의미인 비락(飛落)의 발음이 변화된 것으로 풍수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상징하는 것으로 비봉귀소형(飛鳳歸巢形) 즉 봉황이 둥지로 날아드는 형상의 명당자리가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

▶ 붉은언덕


지역에 따라 붉은덕이 또는 붉은데기라고도 불리며 수탉은 상징하는 것으로 닭장을 옛날에 덕장으로 불리었는데 이것을 언덕이라는 의미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

▶ 새터벌


새터는 새가 있는 장소라는 뜻이고 벌은벌판 도는 평평한 지형을 말하는 것으로 학()이 서식하는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다. 학은 주로 얕은물가나 논 등에서 개구리나 우렁이, 물고기 등을 잡아먹고 산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송우리 지역 역시 들판에 형성된 마을이다
.

▶ 소흘농협협동조합


소흘읍 송우리 187번지에 위치하며, 1970년 5월28 소흘단위농협협동조합을 설립, 행정구역 개편으로 탑동리를 동두천으로 이관(1972.5.2), 정부양곡보관창고 100평을 건축 (1973.3.16),종합판매장 지하1층 지상 2층 건립((1980.1.5), 종합시설 지하1층 지상4층 준공(1989.12.23), 유류취급소 준공(1992.10.12), 연봉무지소 개점(1993.7.29), 종합유통센터(지하 1층 지상 4) 준공 현재에 이루고 있다
.

▶ 송우우체국


소흘읍 송우리 222번지에 위치하며 1940년 2월5 정보통신업무를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6.25때 청사가 소실되어 업무가 일시적으로 중단, 청사를 신축하여 업무개시(1955.1.24), 전화교환업무 개시(1959.8.1), 청사신축 가산면 일원 통합집배업무 개시(1974.12.30), 주요 업무로는 우편 및 금융분야(국내외 우편, 우편환, 대체, 통신금고, 국고금, 우편지로, 자기압수표, 체신예금, 체신보험, 온라인) 등이 있으며 소흘읍, 가산면 일원 우편 소통



고모리(古毛里
)

소흘읍의 동남쪽에 위치하며 고모의의미는 새가 높은곳에서 춤을 추다는 의미인 고무(高舞)의 발음이 변화된 것으로 새가나는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다
.

▶ 죽엽산(竹葉山
600M)

소흘읍 동쪽에 위치하며 내촌면과 가산면에 인접한 토산으로서 옛부터 산림이 울창하고 광릉임업시험림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400여년동안 엄격한 보호아래 관리된 임상이라 원시림을 방불케하는 명산으로 옛날에는 주엽산이라 했다
.
『포천읍지(抱川邑誌)에 따르면 주엽산은 군 남쪽 20리에 있으며 수원산 큰 줄기가 협곡을 지나 이 산을 이루었고 남쪽으로 곧바로 뻗어내려 광릉에 이루었다고 기록되어 있다.이산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그 지맥인 운악산록에 광릉임업시험장 중부지장이 있고 남양주군 지역에는 세조의 묘인 광릉이 있으며, 그 서쪽에는 소리봉, 물푸레봉 등이 시험림과 마주서 있어 수령 400여년의 노목들이 수해를 이루고 있다
.
죽엽산의 의미는 비봉형(飛鳳形)의 명당자리를 상징하는 지명의 하나이며, 옛부터봉황은 오동나무에 둥지를 짓고 대나무 열매를 먹고 산다는 전설이 있다
.

※ 봉 황(鳳 凰
)
상상(想像)의 새이며 상서(祥瑞)로운 동물로 여기며 수컷을 봉, 암컷을 황이라 부르며 닭의 머리, 뱀의 목, 제비의 턱,거북의 등, 물고기의 고리모양을 하였고 오새(五色)빛에 오음(五音)의 소리를 낸다고 한다
.
삼천년을 살며, 죽을 대 몸을 불에 태워 다시 알로 태어난다고 한다. 천수(甘泉水) 즉 예천(醴泉)의 물이 아니면 마시지 않고 쥐를 싫어한다
.

▶ 새 터


새가 있는 장소라는 뜻으로 여기에서 말하는 새는 인근에 있는 죽엽산이 상징하는 봉황을 말하는 것으로 신기(新基)라는 한자표기는 잘못된 것이며 그냥 새터로 부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며 송우리의 새말과는 장소의 차이만 있을 뿐 같은 의미이다
.

▶ 가는골


새터 동남쪽에 위치한 골짜기 이름으로 새가 있는 골짜기라는 의미인 새골의 발음이 세골로 변화되어 가는골이란 전혀 의미없는 이름이 된 것이다
.

▶ 배미산(뱀산
)

인접한 불당골이 의미하는 닭장을 침입하는 구렁이를 의미하는 것이다
.

▶ 불당골


닭이 있는 골자기라는 의미인 닭골을 소리나는대로 읽으면 달골이 되고 이것을 달다는 의미인 당()이나 사당(祠堂)으로 읽은 것을 불당으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

▶ 샛고개


새터에서 무봉리로 넘어가는 고개 이름으로 새를 의미하는 고개, 즉 새고개 또는 새재를 중간을 상징하는 사이고개라는 뜻으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

▶ 신성골


새터 동쪽에 위치한 골짜기 이름으로 새의 울음소리를 한자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


무림리(茂林里
)

새가 춤을 춘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지명의 하나로 춤을추는 장소가 숲이라는 뜻이며 여기에서 말하는 새는 인접한 죽엽산이 상징하는 봉황을 말하는 것으로 한자표기도 舞林里로 바꾸어 쓰는 것이 옳을 듯 싶다
.

▶ 내루동(來樓洞
)

무림리 남동쪽에 위치한 마을로 루()의 의미는 높은 나무위에 있는 새의 둥지를 말히는 것이며 내루는 새의 둥지로 날아드는 새를 말하는 것이며 이러한 것을 풍수에서는 비봉귀소형(飛鳳歸巢形) 즉 새가 둥지로 날아드는 형상을 말하는 것이다
.

▶ 송 정(쇠쟁이
)

소나무 숲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로 학()을 상징하는 것이며 쇠쟁이는 새가 둥지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인 소정(巢停)의 발음이 변화된 것이다
.

▶ 중 말


새가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인 새마을이 줄어서 새말이 된 것을 한자로 잘못 해석하여 사이(, )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

▶ 당모루


닭이 둥지에서 춤을 춘다는 의미인 달무루의 달을 달다는 의미인 당() 또는, 사당이라는 의미인 당()으로 바뀐것이며,
모루는 새가 둥지에서 춤을 춘다는 의미인 무루의 발음이 변화된 것이다.

▶ 배울고개

절골과 이곡리 사인에 있는 고개 이름으로 새가 둥지로 날아든다는 의미인 비울의 발음이 변화된 것이다.


무봉리(茂峰里)

무림리, 죽엽산과 인접하고 무림리와 같은 의미로 새 또는 봉황이 춤을춘다는 의미인 舞鳳의 한자표기가잘못된 것이다.

▶ 거친봉이

무봉리의 다른이름으로 舞鳳을 현재 써있는 한자표기인 茂鳳에 맞추어 해석한 아무 의미없는 이름이며 茂峰이라는 의미도 숲이 무성하다는 의미이지 거칠다는 의미도 아니다.

▶ 배울고개

절골에서 하곡리 배울로 넘어가는 고개 이름으로 새가 둥지로 날아간다는 의미인 비울의 발음이 변화된 것이다.

▶ 새고개

절골과 고모리 새터사이에 위치한 고개로 새를 상징하는 내용을 고개이름에 적용한 것이다.

▶ 찬물내기

거친봉이 남쪽에 위치한 골짜기 이름으로 새가 있는 골짜기라는 의미인 새골이 변하여 샘골이 된 것을 실재의 샘으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직동리(直洞里)

죽엽산(竹葉山) 자락에 위치한 곳으로 대나무 고을이라는 의미인 죽동을 우리가 먹는 음식인 죽으로 해석하여 죽은 별로 좋은 의미가 아닌 것으로 이해해 그와 가장 비슷한 발음인 직으로 부른것인데 직동이란 말 자체도 앞뒤가 서로 어울리는 글자로 보기 어렵다.

▶ 비득재

직동리와 고모리 사이에 위치한 고개 이름으로 닭이 닭장으로 날아든다는 의미인 비덕의 발음이 변화된 것으로 옛날에는 닭장을 주로 마굿간에 만들었는데 인접한 내촌면의 마명리가 마굿간을 상징하는 것이다

▶ 가골버덩

새말과 인접한 곳에 위치하며 가골은 새가 노래하는 골짜기란 뜻이며, 버덩은 지형을 말하는 것으로 약간 높고 평평한 들판이라는 의미이다.

▶ 굉 골

수탉을 의미하는 것으로 계웅골(鷄雄谷)의 발음이 줄어서 된것이다.

▶ 당 재
닭을 상징하는 고개 이름으로 닭고개를 소리나는대로 읽으면 달고개 또는 달재가 되는데 여기에서 달재가 성황당을 의미하는 당재 또는 당고개 등으로 변화된 것이다.


이곡리(梨谷里)

포천군 외소면 지역으로 배울, 배곡 도는 주곡, 이곡 등으로 불리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이곡리라 불리었는데 여기에서 배울은 새가 둥지로 날아든다는 의미인 비울의 발음이 변화된 것이고 배곡은 새가 난다는 의미를 상징하는 비골(飛谷), 주곡은 새가 살고 있는 골짜기라는 의미가 된다.

▶ 양지말

당재나 비득재 등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닭이 우니 날이 밝아온다는 의미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양지마을이 줄어서 된 것이다.

▶ 중간말

새가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인 새말의 새를 사이 또는 중간이라는 의미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이가팔리

이가는 마을에서 노래부른다는 의미이고, 팔리의 팔은 닭을 상징하는 것인데 팔()과 닭과의 상관관계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여기에서 팔이라는 숫자는 팔월달의 월건(月建)을 말하는 것으로 팔월달의 월건은 유()가 되며 유는 닭을 말하는 것이다.

※ 일년 열두달의 월건과 동물
正月( : 호랑이), 二月( : 토끼), 三月( : ), 四月( : ),
五月( : ), 六月( : ), 七月( : 원숭이), 八月( : ),
九月( : ), 十月( : 돼지), 十一月( : ), 十二月( : )

▶ 벌 말(평 촌)

잘군대좌형을 상징하는 것으로 군사들이 마을을 공격한다는 의미를 평지에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 꽃동산

닭의 벼슬을 연꽃의 꽃잎에 비유한 것을 실재의 꽃으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 진딩이

장군대좌형을 상징하는 지명의 하나로 군사들이 언덕위에 진지를 구축하고 머물러있다는 의미이다.

▶ 한 내

봉황을 상징하는 것으로 대나무를 냇물이름에 표기한 대천을 큰냇물이라는 의미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 한성골

대나무숲에서 나는 봉황의 울음소리를 대성리로 표현한 것을 큰소리라는 의미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초가팔리

본래 포천군 내소면 지역으로 1914년 4월1 행정구역 개편때 초내리, 이가팔리 일부를 병합하여 초가팔리라 하고 소흘면에 편입시켰는데 내소면(來巢面)은 새가 둥지로 날아든다는 의미로 풍수지리학에서는 이러한 것을 비봉귀소형(飛鳳歸巢形)이라 표현하며 초내리의 의미는 소나 말의 여물을 상징하고 팔리는 이가팔리와 같은 의미로 닭을 상징하는 것이다.

▶ 붉은덕이

초가팔리에 나오는 팔리와 같은 의미로 닭을 상징하는 것으로 붉은 토종닭을 말하는 것인데 지역에 따라 붉은데기, 불근덕이 등으로 표현하기도한다.

▶ 음성말

초가팔리 동족에 위치한 마을이름으로 소리가 들려오는 마을이라는 의미인 음성마을이 줄어서 된것이며 여기에서 말하는 소리는 닭의 울음소리를상징하는 것이다.

▶ 당 골

닭이 있는 골짜기라는 의미인 닭골을 소리나는대로 읽으면 달골이 되는데 여기에서 달을 달다는 의미인 糖()
과 사당(祠堂), 또는 불당(佛堂)이라는 의미인 당으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 대추나무골

새가 있는 골자기라는 의미인 조곡(鳥谷)을 棗谷으로 잘못 해석하여 대추나무골이란 전혀다른 이름으로 변화된 것이다.

▶ 박석고개

닭을 상징하는 지명의 하나로 흰돌이라는 의미인 백석(白石)의 발음이 변화된 것이며 백()은 오행(五行)으로 서족을 말하고 동물로는 유() 즉 닭을 상징하는 것이다.

▶ 아홉모랭이

붉은덕이에서 고모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름으로 새가 높은곳에서 춤을 춘다는 의미인 고무리(高舞里)를 구모리로 잘못 해석하여 아홉모랭이라는아무 의미없는 이름이 된것이다.

▶ 응 골(鷹 谷)

붉은덕이 남족에 있는 골자기 이름으로 닭과 상대적 관계인 매를 상징하는 것이다.

▶ 가장골

장군대좌형(將軍大坐形)을 상징하는 지명의 하나로 옛날 군인들이 기세를 나타내기 위하여 깃발을 들고 북을 치며 나아가는 형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 검바위,검바위산

장군대좌형을 상징하는 지명의 하나로 옛날 군사들이 사용하는 무기의 하나인 칼()을 상장하는 것이다.

▶ 공세논

군사들이 적을 공격할때의 기세를 의미하는 것이다.

 

진목리(眞木里)

본래 내촌면 내동면에 속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광현리를 병합하여 진목리라 하고 내촌면에 편입시켰다.

흔히 참나무정이라 불리는 이곳은 군인들인 진지(陣地)를 구축하고 적이 지나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는 의미인 진목리(陳目里)의 의미가 변화된 것이며 참나무를 진목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