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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세상이야기

이외수

by 사니조은 2022. 4. 26.

이외수 소설가가 뇌출혈로 3년간의 투병 끝에 25일 한림대 춘천성심병원에서 폐렴으로 별세했다.

© news1소설가 이외수씨가 뇌출혈 투병 중 폐렴으로 25일 오후 8시께 향년 7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사진은 고인이 지난 2017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장편소설 '보복대행전문주식회사' 출간 기자간담회 당시 모습. 고인은 지난 2020년 3월 강원도 화천 감성마을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려져 수술을 받았다. 고인은 1946년 9월 10일 경남 함양군 수동면 상백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작품으로는 소설 '꿈꾸는 식물', '들개', '칼날', '병오금학도'를 비롯해 에세이 '내 잠속에 비 내리는데', '말더듬이의 겨울수첩', '하악하악' 등이 있다. (뉴스1 DB) 2022.4.25/뉴스1
© news1이외수 작품 표지© 뉴스1
© news1소설가 이외수씨가 뇌출혈 투병 중 폐렴으로 25일 오후 8시께 향년 7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사진은 한림대 춘천성심병원에서 투병중이던 고인의 모습. 고인은 지난 2020년 3월 강원도 화천 감성마을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려져 수술을 받았다. 고인은 1946년 9월 10일 경남 함양군 수동면 상백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작품으로는 소설 '꿈꾸는 식물', '들개', '칼날', '병오금학도'를 비롯해 에세이 '내 잠속에 비 내리는데', '말더듬이의 겨울수첩', '하악하악' 등이 있다. (이외수 페이스북) 2022.4.25/뉴스1

고인은 향년 76세로 사망할 때까지 숱한 베스트셀러를 발표했고, 삶 자체 역시 언제나 화제였다. '가난' '기인'·'존버' '트통령' 등은 고인은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고인은 1946년 외가인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본가인 강원도 인제에서 성장했다. 모친은 초등학교 교사였으며 그가 3살 때 질병으로 타계했다.

직업군인이었던 부친은 6.25전쟁에 참전했으며 예편 후 교사가 돼 고인이 초등학교 6학년 시절엔 담임교사를 맡기도 했다.

고인은 춘천교육대학을 8년간 다니다가 1972년 중퇴했다. 같은 해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견습 어린이들'이 당선됐지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고인은 이 시기를 지독한 가난으로 절망의 시절을 보냈다고 회상한 바 있다. 그는 춘천에 거주하면서 하숙집 방세가 밀려서 쫓겨났다. 오죽하면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젊은 시절로 다시 돌아가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내가 미쳤나"라고 답했을 정도였다.

그는 크림빵 하나로 하루를 버티거나 라면 한 봉지로 며칠을 버티기도 했다. 이것마저도 쉽지 않자 구걸하면서 빈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개집에 들어가서 하룻밤을 새우기도 했다.

고인은 미스 강원 출신인 아내 전영자씨와 1976년 11월 결혼했다. 이들은 고인이 DJ를 하던 음악다방에서 1975년 처음 만났다. 전씨가 고인이 즐겨 앉던 의자에 앉은 것을 놓고 말싸움을 한 것이 출발이었다.

1975년 잡지 '세대'(世代)의 문예현상공모에서 중편소설 '훈장'이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결혼 이후 춘천과 원주 등의 사설 학원에서 일하면서 '꽃과 사냥꾼'(1976년작), 첫 장편소설 '꿈꾸는 식물'(1978년작) 등을 발표해 중앙문단에 이름을 알리게 됐다.

결국 1979년 그는 창작에만 전념하겠다며 모든 직장을 포기하고 전업작가의 길을 걷는다. 그는 일상의 편안함을 거부하는 작가정신을 고수하면서 단편소설 '박제', '언젠가는 다시 만나리', '붙잡혀 온 남자'와 중편소설 '장수하늘소', 장편소설 '들개'(1981년작), '칼'(1982년작) 등을 잇달아 발표했다.

고인은 1980년대까지 왕성한 활동을 벌였으나 1990년대에 슬럼프에 빠져 작품수가 줄어들었다. 이 시기에 발표한 장편소설 '벽오금학도'(1992년작)는 소설의 내용보다 집필과정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벽오금학도'를 집필하기 위해 방 자체를 감옥처럼 바꿔버렸고, 식사도 아내가 사식처럼 갖다주는 것으로 해결했다.

고인은 2005년 '장외인간'을 발표한 이후 방송 활동도 적극적이었다. 텔레비전 광고도 찍고 MBC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에서 고정 배역도 맡았다. 그는 2008년 라디오 '이외수의 언중유쾌'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방송 활동과 더불어 SNS 활동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2010년대 초반 트위터 상에서 148만여명의 팔로워를 거느려 소위 '트통령'(트위터 대통령)이라고 불리며 오래 버틴다는 의미인 신조어 '존버'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현재 그의 트위터 팔로워 수는 177만명에 이른다.

그는 2020년 3월22일 강원도 화천 감성마을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다. 부인 전영자씨는 2018년 졸혼이란 이름으로 각자의 시간을 갖기도 했으나, 남편이 쓰러지자 제일 먼저 달려와 병간호에 매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