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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테마산행/일반산행

영종도의 산 - 백련산 (1)

by 사니조은 2020. 12. 6.

영종도의 산

영종도둘레길1코스+백련산

2020.12.4일(금)

홀로

7km/1시간55분

맨 우측 높은 산이 강화도 마니산,,,그리고 그 좌측에 신도 구봉산
영종도 북쪽은 강화도 남쪽은 당진이 위치해 있다.

 

영종도 주변에 무의도-실미도 그리고 장봉도 신도-시도-무도의 섬들이 있다.

 

 

 

 

산행기>>>>>>>>>>>>>>>>>>>>>>>>>>>>>>>>>>>>>>>>>>>>>>>>>>>>>>>>>>>>>>>>>>>>>>>

 

 

앞으로 영종도 주변의 산들을 가끔 찾게 될 것 같다.

영종도는 영종도,삼목도,신불도,용유도 등으로 분리되어 있던 섬이

인천 신공항을 만들면서 하나의 섬으로 합쳐졌다고 한다.

 

노태우 정부 시절 영종도 신공항과 부산 신공항은 공약 사항이었다.

영종도 신공항 건설 계획이 1989년 공식 발표 되고 1992년 착공,2001년 준공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 당시 직장 다닐 때 영종도 파견근무를 다를 기피해서 궁여지책으로 순번을 정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후 해외로 나갈 경우 아니면 갈 일이 별로 없는 영종도,,,

 

그 영종도의 주변을 샅샅이 훝어 볼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영종도에는 제일 높은 산이 백운산이고 그 주변에 낮은 산 몇 개 산이 있다.

그리고 영종도와 연결된 무의도-실미도 그리고 신도-시도-무도 등이 있다.

하나씩 천천히 살펴 볼 생각이다.

 

백운산은 좀 아껴두고(?) 먼저 백련산을 찾게 되었다.

아침에 버스를 타고 오던 길가 영종도 둘레길이라는 안내판을 보게 되었다.

점심 식사를 하고 그 곳으로 가 보니 둘레길이 1,2,3코스가 있다.

온 김에 1코스를 돌아 보기로 한다.

1코스에 백련산이 끼어 있다.

 

버스타고 길가에 발견한 영종도둘레길이라는 것이 있어 호기심에 와 봤다.
그래 오늘은 1코스 돌아보자,,,
1코스 설명도
영종도+삼목도+용유도 그리고 신불도가 영종도 하나로 통합
엄청난 대공사였다.
영종도 주변에는 이렇게 다세대 주택들이 많고 아파트도 들어서고 있다.
아이들에게 6각형의 호신용 노리개를 만들었다는 옴나무
철새 전망대
앞에 보이는 백련산
나중에 연꽃 필 무렵 다시 와 보자,,,

 

백련산 올라가는 길
강화도 마니산도 가까이 보이고
마니산
신도 구봉산(좌) 강화도 마니산(우)
구봉산,,신도
강화 마니산
백련산 정상에는 정자만 덜렁있다.

다음은 영종도에 대한 퍼온 자료들,,,,,

 

인천광역시 중구 영종동에 속한 섬으로, 면적 50.5km2, 인구는 61,965(2016년 기준)이다. 고려사· 세종실록·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자연도로 나와 있는 섬이다.

 

20014월 현재 인천국제공항 건설에 따른 부지 확장공사로 인해 면적은 공사 이전보다 훨씬 넓어진 63.81km2이다. 서쪽과 서남쪽으로 신도(信島) · 시도(矢島) · 삼목도(三木島) · 용유도(龍遊島) · 무의도(舞衣島)와 마주하며, 삼목도 · 용유도와는 연도교로 이어져 있다. 원래 이름은 제비가 많은 섬이라 하여 자연도’(紫燕島)라고 불렸다.

 

섬 중앙에 솟은 백운산(白雲山:255.5m)에는 1,300여 년 전인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고찰 용궁사(龍宮寺)가 자리 잡았으며, 개펄 등 자연생태계를 관찰할 수 있는 학생 해양탐구학습장이 유명하다. 특산물로는 신선한 어패류와 영지버섯, 쌀과 태양고추가 있으며 굴, 백합의 양식업과 염전업(鹽田業)도 이루어졌다. 2001329일 인천국제공항이 개항되어 영종도와 수도권을 연결하는 공항전용 고속도로가 뚫려 있다.

 

조선 시대 지리지에는 자연도(紫燕島)라고 되어 있다. 고려도경에는 "제비가 많아 자연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인천도호부 서쪽 27리 되는 곳에 있으며 주위가 55리이고 목장이 있다."고 되어 있다. 1872년지방지도'자연도(紫燕島)'라고 표기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자연도와 영종도가 별도로 표시되어 있다. 이것으로 보아 작은 섬이었던 '영종도''자연도'와 매립 연결되면서 지금의 영종도를 대표하는 지명으로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대동지지영종포진(永宗浦鎭) 항목에 "영종포진(영종도)은 용유도, 무의도, 월미도, 신불도, 물치도, 응도, 삼목도 등 7개 섬을 관할하였다."고 되어 있다. 영종포진은 1895(고종 32) 폐지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부천군, 1973년에는 옹진군에 편입되었으며, 1995년 인천광역시 중구에 편입되었다.

 

 

영종도의 관문 구읍 나루터

 

영종도에 위치한 구읍 나루터를 영종선착장이라고 부른다. 실로 24년 전에 월미도에서 배를 타고 영종도 구읍 나루터로 건너가 영종도에서 일박을 한 기억이 난다. 고려 시대 중국 송()나라 사신들이 풍선을 타고 흑산도와 위도, 선유도, 태안 안흥정을 거쳐서 영종도 경원정에 머물다가 예성강을 통해 개경으로 들어갔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영종도는 국제 무역선이 왕래하던 항구였고 교통 중심지 역할을 했다. 영종도가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기 전에는 육지로 통하는 유일한 방법이 뱃길이었다. 그리고 영종도 인천국제공항과 송도국제도시를 연결하는 총연장 18.38km의 다리가 개통된 뒤 구읍 나루터는 월미도행 도선이 끊어지고 상가는 폐허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2001년 영종대교 완공 이후에도 예전처럼 배를 타고 인천 월미도~영종도를 오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78월 인천해경에 따르면 1월부터 7월까지 영종도와 월미도행 도선(渡船)항로 이용객이 2006년에 비해 7.4% 증가한 518507명이었다.(2006482892) 일반적인 상식으로 육지와 섬이 다리로 이어지면 여객선 손님은 끊어지고 그 날짜로 항로가 폐쇄되는 것이 관례인데 영종도는 매우 이례적인 사례였다.

 

이 항로가 영종대교 개통 이후에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육로보다 차도선을 이용하면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인천 월미도와 영종도 뱃삯은 3,500, 차량 1대는 7,500원인데 비해 육로를 통해 인천 시내에서 영종도를 간다면 공항고속도로 통행료 3,400원과 40km가량을 더 달려야 하기에 8,000원 정도 기름값이 더 든다.

 

 

영종대교

 

영종대교

 

 

소요시간도 배를 타면 10, 육로는 1시간 정도 걸린다. 배가 다니는 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3척의 배가 30분마다 출발하여 오래 기다리지 않는 것도 승객이 줄지 않는 이유이다. 그러나 200910월 인천대교의 개통으로 인천 송도에서 영종도 이어지는 다리의 통행료는 6,300원으로 책정되어 서로 경쟁을 하는 구도로 변했다. 용주해운 관계자는 시간과 경제적인 이익으로 육로보다 차도선을 이용하여 출퇴근하는 직장인도 많이 있다영종대교와 공항철도, 인천대교가 개통됐지만 아직도 뱃길을 이용하는 손님들이 많아 앞으로도 항로는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영종도 선착장 앞에 있는 해상에는 작약도와 월미도 유람선이 정박하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영종도 뱃터 주변에 산책로가 있고 낚시를 하는 강태공들이 눈에 들어온다. 구읍뱃터 지척에 작은 공원이 있으며 그곳에 올라가면 영종진전몰영령추모비와 제법 큰 누각도 보인다. 공원에서 주변에는 영종하늘도시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다.

 

서해 바다 위의 이름 없는 섬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권에서 멀어져 있던 섬, 영종도. 그런 영종도가 사람들의 입에 뜨겁게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제5공화국 비리의 상징이라고 일컬어지는 새마을연수원 사건이 터지면서부터였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은 새마을운동중앙본부장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영종도에 새마을연수원을 지으면서 그 비리가 세상에 알려지자 덩달아 영종도도 세인들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이었다.

 

영종도 새마을연수원 사건의 파장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지워져 갔다. 이때만 해도 사람들은 몰랐을 것이다. 영종도가 용유도, 삼목도, 신불도와 함께 세계로 뻗어가는 한국의 상징이 되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다만 일제 강점기 시절인 1923, 1km의 제방을 쌓아 인천과 연륙된 월미도와 영종도 사이를 하루 12회 운행하는 카페리선을 타고 바깥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주민들의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그랬던 영종도가 한국의 중심이자, 관문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은 국제공항 건설과 궤를 같이 한다. 필자는 그 가슴 벅찬 대역사의 현장으로 가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배를 타고 영종도에 들어섰다. 영종도는 영종대교를 통해 여러 번 들어갔지만 배를 타고 들어간 것은 1994년 이후 실로 22년 만이다.

 

이름 없는 섬이 한국의 중심이자 세계로 통하는 관문으로 자리 잡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땀을 흘렸을 것인가.

 

영종도를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의미에서 놀랍게 변해 버린 세상 모습을 비유한 말인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단어가 절로 떠올랐다. 이것이야말로 영종도의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대변해 주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정부에서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 바다를 매립하여 약 50km2 규모의 국제공항 건설 계획을 수립한 것은 19903월이었다. 그로부터 11년 후인 2001329일 전천후 해상공항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공항이 건설되기 이전에 영종도와 용유도, 삼목도, 신불도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독립된 섬이었다. 이들은 공항 건설과 함께 하나의 섬처럼 합쳐진 섬 아닌 섬이 되어 버렸다.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의 바다를 매립하는 바람에 그 사이에 끼어 있던 삼목도와 신불도는 자연스럽게 육지가 되었다.

 

사상 유례가 없는 대역사였던 만큼 그 현장에서 생계를 이어가던 주민들의 삶에도 크나큰 변화가 일어났을 것은 자명한 노릇이었다.

 

비행기 이착륙 시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봉긋봉긋 솟은 구릉들을 52m 높이까지 깎아냈다. 항공 장애 구릉 높이는 52m였던 것이다. 인천 국제공항을 보면서 거대한 바다를 메워서 수평선을 지평선으로 바꾸고 그 위에 거대한 공항을 건설한 인간의 위대한 개척 정신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인천 국제공항은 예전의 김포공항보다 무려 7배 이상 크게 조성되어 얼마나 큰 공항인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영종도 국제공항 84개월의 대역사

 

한국은 1988년 올림픽을 개최한 다음 개방화의 조류와 여행 자유화로 항공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기존의 김포공항은 도심지 위치라는 한계 때문에 더 이상의 확장은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에 새로운 공항을 위해 공항 부지를 선정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수도권에서 우리나라의 국제 항공수요의 80%가 유발되기에 서울의 반경 100km 이내에 22개의 예비후보지가 선정되었다. 이중에 영종도, 시화 1지구, 시화 2지구가 최종 압축되었고 1990614일 영종도가 최종적으로 공항을 건설하기로 결정됐다. 199211월 인천국제공항 건설을 위해서 역사적인 첫 삽을 뜨게 됐다.

 

그 당시 서울 여의도의 19배에 달하는 1,700여만 평의 갯벌을 흙으로 메워 공항을 건설한다는 계획이 모험에 가까웠다. 갯벌을 메운 땅에 거대한 건물과 시설을 세워야 하는데 그만큼 시간과 자본과 전문 기술이 필요했다. 예정대로 2001329일 새벽에 어둠을 뚫고 하늘을 날아 온, 방콕에서 출발하는 아시아나항공 3423편 항공기가 오전 440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때 공항 곳곳에서 조용히 이 광경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고 박수를 첬다고 한다. 여객터미널 건물의 길이만 해도 1km가 넘고, 연면적이 15만 평에 달해 국내 최대의 건축물이다.

 

영종대교에 이어 2007년 인천국제공항과 서울을 잇는 전용 철도가, 2009년에는 인천대교가 완공되어 접근성이 다양화되었다.20051014일 오전 11시경 일본 히로시마에서 출발한 아시아나항공의 161편 비행기가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했다. 항공기가 여객터미널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 많은 사람들 속에 뒤섞여 있던 한 여성이 1층의 입국장 대합실에 모습을 드러내자 박수소리와 함께 카메라의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인천국제공항이 문을 연지 불과 56개월 만에 1억 번째 손님을 맞이한 것이다. 그렇지만 화려함 뒤에는 그늘도 있고 침체기에 빠져있는 흔적들도 남아있는 것이다. 근처 북도면 섬들의 비행기 소음과 흐르는 세월 속에 묻혀버린 버린 자연의 지형과 질서들이다.

 

영종도의 거대한 갯벌은 영종도와 신불도, 삼목도, 용유도를 잇는 북단과 남단의 각 섬을 연결하는 공사로 인해 1,400만 평(45km2)이 갯벌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153km2(4,600만 평) 정도의 갯벌이 남아있다. 이곳에는 수만 마리의 도요새와 개꿩, 알락꼬리마도요, 큰뒷부리도요, 노랑부리백로, 왕눈물떼새, 좀도요, 흑꼬리도요 등이 먹이를 찾고 있다. 이 새들은 남쪽의 오스트리아에서 북쪽인 시베리아로 이동하는 철새들이다.

 

영종도 갯벌은 공항건설 이전까지 매년 20만 마리 정도의 철새가 도래하였지만 매립후에는 1/10 정도로 영종도 주변으로 분산됐다. 그 갯벌을 막아서 들어선 공항의 최대 적은 버드 스트라이크라지만 철새들에게는 그야말로 지옥같은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갯벌에서 먹이를 찾으려고 많은 새떼들이 날아오는 장면은 가히 장관이다. 생명에 대한 신비와 자연계의 생태계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훌륭한 생태관광학습지가 될 것임이 틀림없다. 인천 국제 공항의 비약적인 발전과 함께 자연과 인간이 같이 공존하는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

 

 

사니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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