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이야기/세상이야기

독이 있으면 약이 있듯 善惡은 서로 의존한다

by 사니조은 2019. 10. 16.



제50회 동인문학상 수상 작가 최수철(61)은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거의 40년이 되는 동안 제가 동인문학상 후보에 아마 가장 많이 오른 작가가 아닌가 싶은데 결국 받게 됐다"며 웃었다. 그는 서울대 불문학과 재학 중이던 198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지금껏 장편소설 9권과 단편집 8권을 내면서 이상문학상과 김유정문학상을 받았지만, 동인문학상 앞에선 번번이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그는 지난 5월 출간한 장편 '독(毒)의 꽃'(작가정신)으로 수상하게 됐다. "소설을 쓴다는 게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그야말로 '독과 싸우는 일'인데, 문학상 수상은 소설 제목 '독의 꽃'처럼 어려운 와중에 꽃을 피우는 일처럼 느껴진다. 어느덧 50회가 될 정도로 역사 깊은 상을 받게 돼 심사위원회에게 감사드린다."

조선일보

소설가 최수철은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악을 독처럼 섭취하지만 스스로 해독(解毒)할 줄 알기 때문에 삶의 꽃을 피운다"고 말했다. /장련성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소설 '독의 꽃' 제목은 샤를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을 패러디한 것이라고 했다.

"보들레르는 악마성이나 악으로 규정되는 것에 대해 특별한 시선을 던진 시인이었다. 우리가 경원하려는 악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상적이지 않은, 깊은 가치와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에 '꽃'이라고 했다. 악에는 죽음과 관련된 인간의 본질이 들어 있기 때문에 인간이 삶에서 악을 밀어내려고 하지만 사실은 악이 생존 경쟁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악이란 것도 실존적 꽃의 모습이다. 외부의 공격을 막기 위해 몸에 '독'을 품어야 하는 생명체들은 저마다 한 송이 '독의 꽃'이다."

―이 소설은 '태어날 때부터 독을 몸에 지니게 되고, 세상의 풍파를 겪으며 그 독을 더욱 키우고, 그 독을 약으로 사용하고, 그러다가 독과 약을 동시에 품고서 죽음에 이르게 된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이 세상에 독 아닌 것이 없으니, 독은 우리 모두의 일용할 양식이야"라고 외친 주인공을 통해 무엇을 얘기하고자 했나.

"독이 있으면 약이 있듯이, 악과 선은 서로 의존한다. 선악의 순환을 이해함으로써 개인이 선악 사이에서 실존적, 윤리적 균형을 잡자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중독(中毒)은 개인이 일상에 마비된 것이고, 해독(解毒)은 자기 자신의 각성을 뜻한다. 독이 약이 될 수 있고, 약이 독이 될 수도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이미 다 한 얘기다. 독과 약의 차이는 얼마나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아나필락시스 쇼크'라는 게 있다. 인간이 처음 벌에 쏘이면 몸속에 벌침 독에 대한 항체가 만들어지는데, 다시 벌에 쏘이면 항체가 즉각 반응해서 더 심한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난다. 독이 약이 됐다가, 그 약이 다시 독이 되는 역설이다."

―이 소설은 '이 세상은 독과 약으로 이루어진 뫼비우스 띠'라며 삶/죽음이나 선/악 이분법을 초월하려고 한다. 사회적으로 '독'의 의미는 무엇인가.

"범죄가 발생하면 '독'으로만 볼 게 아니라 그 '독'이 퍼지게 된 사회 환경을 봐야 한다. 범죄자는 독 그 자체가 아니라 중독된 사람이라고 봐야 그를 위한 사회적 치료약을 찾을 수 있다."

―이 소설은 독에 관한 백과사전처럼 독극물 정보를 많이 담고 있다.

"독을 연구한 약학 서적부터 '독살의 세계사' 같은 책에 이르기까지 숱하게 읽었다. 하지만 독에 관한 정보가 인간의 삶에서 상징적 의미를 지니도록 했다. 등장인물과 스토리텔링에 예전보다 더 많이 신경 썼다. 결국 상징소설·환상소설·추리소설·연애소설이 뒤섞인 '총체 소설'이 됐다. 이제야 소설 쓰기가 무엇인지 알 듯하다."

[선정이유서] '독의 꽃'… 문학의 본령을 일깨우는 소설

문학이 인간의 본성을 엿보게 하고 삶의 뜻을 지피게 하는 최적 장소라고 한다면, 최수철의 '독의 꽃'은 문학의 본령을 일깨우는 소설이다. 작가는 집요히 독에 참척하여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해독물(害毒物)을 그러모아 한 인간의 연약한 몸에 쉼 없이 주입하곤 그 귀추를 주시하고 밝히며 그 기록의 축적을 장구히 유위 변전하는 드라마로 엮어내었으니, 그 까닭은, 우리 삶에 미만한 온갖 불의와 부정에 대해 때마다 시시비비를 가리고 다투는 일도 중요하겠으나, 그보다는 그것들을 인간의 내장 깊숙이 잠재하는 불가피한 마음의 병으로 수령하여 그 내력과 사연과 반결(盤結)을 조밀히 살핌으로써 내부로부터 이해하고 저 스스로 해독(解毒)될 가능성을 찾고자 함이라. 그럼으로써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문제를 허위단심으로나마 제 앞가림으로 깨치고 풀도록 인도하니, 책장을 덮으며 마음이 새뜻해진 독자는 옛 시인의 어법을 빌려 이렇게 말해도 좋으리라. "모든 독을 내 안에 품었으니, 마침내 누리가 맑게 개도다." /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



[박해현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