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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세상이야기

우리나라엔 왜 이런 사람이 없을까?-'AI 선구자' 앨런 튜링

by 사니조은 2019. 7. 18.


 

찰스 배비지, 폰 노이만으로 이어지는 컴퓨터 선구자 명단에 빠진 이름이 하나 있다. 비운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Alan M. Turing)이다. 누락 이유는 두 가지. 세계대전과 냉전 속에서 재능과 업적이 비밀로 묶인데다 동성애자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튜링은 2% 부족한 학생이었다. 어려운 수학문제를 푸는 특출한 재능이 있었지만 필체는 엉망이고 단순 계산은 자주 틀렸다. 말도 더듬었다. 두각을 나타난 것은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 시절. 인도에 근무하던 부모의 귀국으로 생전 처음으로 온전한 가정의 울타리에서 지내면서부터다. 원시적 컴퓨터 '튜링 머신'을 만든 것도 이 무렵이다.

 

학계의 주목을 받은 그는 아인슈타인 등 당대의 석학들이 모여 있던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초청을 받아 박사 과정을 마쳤다. 원자탄과 현대 컴퓨터의 개척자 노이만이 공동 연구를 종용했으나 거절하고 모교로 돌아온 때가 1938년. 곧 이어 터진 2차 대전에서 그는 수학으로 조국을 구했다. 독일의 암호 체계 '에니그마'를 해독한 것이다. 불침함이라던 비스마르크호의 격침도 그의 암호 해독으로 가능했다. 최초의 컴퓨터 '콜로서스(colossus)'도 만들었다. 영국이 비밀로 부치는 통에 '에니악'에 공식적인 최초의 컴퓨터 자리를 내주었지만.

 

전후 인공 지능 연구에 열중하던 그는 1952년 나락으로 떨어졌다. 동성애가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형벌은 중성화. 지속적인 여성 호르몬 투입은 마라톤 풀코스를 2시간 46분 3초에 완주했던 강건한 신체를 변화시켰다.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둔부가 퍼지자 화학적 거세를 자각한 그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의 심정으로 사과를 집어 들었다. 1954년 6월 7일 청산가리를 주입한 독사과를 베어 먹고는 영면. 42세 나이였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을 보셨나요? 수학 천재이자 전쟁 영웅이었던 앨런 튜링을 다룬 작품입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튜링의 삶을 잘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인 앨런 튜링이 2020년 발행될 영국 50파운드 지폐 초상인물로 선정됐습니다. 스티븐 호킹을 비롯한 쟁쟁한 후보들을 제쳤습니다.

 

저는 영국 중앙은행의 이 선택이 여러 가지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AI)과 컴퓨터 과학 뿐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담겨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앨런 튜링은 인공지능(AI) 컴퓨터의 기초를 닦은 인물입니다. 1940년대에 이미 ‘사람처럼 생각하는 컴퓨터’에 대한 꿈을 키웠습니다. 그가 1950년 발표한 논문 ‘컴퓨팅 기기와 지능(Computing Machine and Intelligence)’ 속엔 현대 AI 컴퓨터의 기본 개념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이 논문에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모방게임을 한 뒤 기계인지, 인간인지 구분할 수 없는 기계를 만들 수 있을까?”란 질문이지요.

 

이 질문 뒤에 흥미로운 전망을 덧붙였습니다.

 

“50년 뒤에는 보통사람으로 구성된 질문자들이 5분 동안 대화를 한 뒤 (컴퓨터의) 진짜 정체를 알아낼 수 있는 확률이 70%를 넘지 않도록 프로그래밍 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튜링 테스트’로 널리 알려진 부분입니다. 이후 수 많은 컴퓨터 제작자들이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앨런 튜링은 또 2차대전의 전쟁영웅입니다. 해독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독일군의 ‘애니그마’ 암호를 풀어내는데 성공한 겁니다. 덕분에 독일 잠수함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지상최대 작전으로 불린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하는 데 튜링의 공은 절대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쟁 영웅이자 수학 천재였던 튜링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남들과 달랐던 성적 취향 때문이었습니다. 튜링은 1951년 동성애 혐의로 맨체스터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이후 화학적 거세를 당하는 수모까지 겪었습니다.

 

튜링은 3년 뒤인 1954년 6월7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자살 도구는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였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한 입 베어문 사과가 매킨토시 종이었다는 얘기도 널리 회자되고 있습니다.)

 

영국인들에게 앨런 튜링은 ‘만지면 만질수록 덧나는 상처’ 같은 존재였습니다. 제 아무리 전쟁 영웅이더라도, 대다수 사람들과 다른 성적인 취향을 가질 경우엔 절대 용납하지 않았던 사회적 폭력을 보여주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 영국 총리 "50파운드 신권 화폐 통해 LGBT들의 기여 기억해야"

 

영국은 튜링 사후 50년인 2013년에야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당시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튜링을 사면하면서 많은 관심을 모았습니다.

 

4년 뒤인 2017년엔 좀 더 의미 있는 조치가 단행됐습니다. 과거 외설죄로 처벌됐던 동성애자들을 사후 방면하는 법이 시행된 겁니다. 영국은 이 법에 ‘튜링법’이란 명칭을 붙이는 것으로 또 다시 그와의 화해를 시도했습니다.

 

영국 중앙은행이 50파운드 화폐에 튜링의 얼굴을 새기기로 한 건 이런 맥락을 그대로 이어받은 조치입니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가 15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올린 글에 그 의미가 잘 담겨 있습니다.

  

그는 “앨런 튜링이 수학과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해낸 선구적인 작업은 2차 대전을 끝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적었습니다.

 

더 관심을 끄는 건 바로 뒤에 이어진 부분입니다.

 

“50파운드 신권을 통해 튜링의 유산과 LGBT들이 우리나라에 기여한 빛나는 업적들을 기억하는 것은 아주 적절한 일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올해 6월 6일 아주 재미있는 부고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누군가 세상을 떠났다는 슬픈 소식을 전하는 '부고'에 제가 '재미있다'는 표현을 쓴 건 이 사람이 숨진 지 이미 65년이 흘렀기 때문. 이 신문에서 이제야 부고 기사를 내보낸 건 NYT에서 부고를 냈어야 하는 사람인데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NYT에서 65년 만에 부고 기사를 내보낸 인물은 (위에 있는 링크에서 보신 것처럼) 바로 앨런 튜링(1912~1954).

 

흔히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라고 평가받는 튜링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선정한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100인'에 이름을 올릴 만큼 컴퓨터 과학 나아가 인공지능(AI) 분야에 지대한 연구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 포스트 팬 위에 있는 사진은 그가 세계 최초 상용, 범용 일레트로닉 컴퓨터인 '페란티 마크 1'으로 동료들과 작업하는 장면입니다.

 

튜링은 영국 케임브리지대 재학 중이던 1936년 논문 '계산 가능한 수와 그것의 결정 문제에 대한 적용(On Computable Numbers, with an Application to the Entscheidungsproblem)'을 통해 '보편적 기계'라는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튜링은 또 기계가 인간과 얼마나 비슷하게 대화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튜링 테스트'를 만들어 1950년 논문 '계산 기기와 지성(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을 통해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이름을 딴 '튜링상'은 '컴퓨터 과학계의 노벨상'으로 통합니다.

 

튜링은 전쟁 영웅이기도 합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도중 영국 정부 요청으로 나치 독일군 암호 해독을 맡아 연합군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그러니 2002년 영국 BBC 방송에서 '가장 위대한 영국인 100인'을 선정하면서 튜링을 포함한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인물인데도 NYT에서 튜링이 세상을 떠났을 때 부고를 내보내지 않았던 그가 동성애자였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당시 영국에서 동성애는 불법이었습니다. 튜링은 결국 화학적 거세형을 받았고 그 영향으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결국 튜링은 1954년 6월 7일 자택에서 주사기로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한 입 깨물어먹고 자살했습니다. 지인들은 튜링이 1937년 월트 디즈니에서 만든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즐겨봤다고 회상했습니다.

 

항간에는 사과를 한 입 베어 문 모양으로 생긴 애플 로고가 튜링 때문이라는 루머도 있었지만 이 회사 공동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아, 그 생각까지는 못했다"면서 관련설을 부인했습니다.

실제로 튜링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건 존 그레이엄커밍이었습니다. 그는 2009년 영국 정부가 튜링에게 사죄해야 한다는 청원을 제기해 고든 브라운 당시 영국 총리로부터 사과를 받아냈습니다. 이어 2013년에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튜링을 사면하기도 했습니다. 영국에서 동성애로 기소 당한 이들을 사면하는 법령 이름이 아예 '튜링 법'입니다.

 

그런데 이제 튜링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등을 지게 됐습니다.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에서 50 파운드 지폐 뒷면 초상 인물로 튜링을 선정해 15일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파운드 지폐 앞면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초상이 들어가니까 서로 등을 진 모양새가 되는 것(이라고 우겨 봅니다).

BOE는 지난해부터 50 파운드 지폐에 얼굴을 새길 인물 선정 작업을 진행했으며 대중으로부터 총 22만7299명을 후보로 추천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중 800명을 1차로 추렸고 다시 최종 후보 12명을 추렸습니다.

 

마크 카니 잉글랜드은행 총재는 이날 맨체스터 과학산업박물관에서 열린 새 지폐 도안 발표회에서 튜링을 새 모델로 고른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는 자기 어깨 위에 많은 이들을 태운 거인이었다"고 치켜세웠습니다.

 

현재 쓰고 있는 50 파운드 지폐는 2011년 첫 발행을 시작했으며 뒷면에는 산업혁명에 업적을 남긴 매슈 볼턴(1728~1809)과 제임스 와트(1736~1819)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BOE는 새 50 파운드 지폐를 2021년부터 시중에 푼다는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