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대모 전주김님이 산행기에 올린 내용인데 금,호남 진행할 때 읽어보려고 퍼온 자료이다.
★이글은 백두대간과 정맥
(특히 호남정맥, 금남호남정맥, 금남정맥등)을
종주하시는 분들께 산경표의 개념을
보다 더 확실하고 정확하게 알려주고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3정맥분기점에 대한
실체를 보충 설명해주고
(필자가 기히 ‘주화산은 없다’라는 글을 오케이마운틴에 올린바 있음)
또한 잘못 표기되어 부르고 있는 산 이름은
바로 잡아서 우리들의 후대들에게
떳떳하게 실체를 밝혀주어 인식케 하는 것이
이 시대에 사는 우리들이 작금에 해야 할
당면한 임무이고 사명이라고 사료되어
이런 글(문헌)을 올립니다.
그리고 이글은 본인이 작성한 것이 아니고
타인의 글을 퍼온 것임을 양지하여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 전주김 삼가 배상-
금.호남분기점의 논란에 대한 나의 견해!
※ 이 글은 개인의 사견임을 전제로 한다
說
3정맥(금남호남정맥=금남정맥=호남정맥의 분기점이
주화산이냐? 또는 주줄산이냐?) 하는 문제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이것은 산경표에 기록된 내용과 산악인들에 의해 확인된 3정맥 분기점의 지명을
각도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산경표에 표기된 3정맥(이하,금남호남정맥. 금남정맥.호남정맥을 3정맥분기점으로 표기한다)를 살펴보면
㉠ 금남호남정맥은 장안산에서 시작하여 마이산에서 끝 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금남정맥은 마이산에서 주화산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기록하였으며
㉢호남정맥은 마이산에서 웅치(곰재)로 이어지는 것으로
기록하여 마이산을 3정맥의 분기점으로 표기 하였다.
산경표가 발견된 후 산줄기를 긋고 답사를 하였던 초창기 답사자들에 의한 3정맥분기점에 대한 지명은
산경표에 나타난 주화산 또는 주줄산을 3정맥의 분기점으로 잘못 판단했기 때문인데
이것은 3정맥의 분기점이 문헌에 나오는 주화산이나 주줄산이 아닌 무명봉(지명이 없음을 일컫는 말로
산악인들이 주로 쓰는 표현)이라는데서 문제는 출발한다
각 종 문헌이나 고지도 등에 나오는 주화산이나 주줄산이 3정맥 분기점의 지명이란 논란에 대해 답사를 마친 분들의 글이나
의견을 종합 해 보면 조약치에서 서쪽방향으로 50여미터 떨어 져 있는 능선상의 이름 없는 무명봉이 "3정맥의 분기점이란 것에 대해
대체적으로 동감하고 있어 논란의 여지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산경표나 고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3정맥분기점이 그 동안 주장되어왔던 주화산 혹은 주줄산이 아닌
무명봉이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므로 잘 못 알려진 부분에 대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이 글을 작성하는 바이다.
주화산 또는 주화산에 대한 설명이 이 문제를 풀어가는데 열쇠가 될 것 같아서 먼저 주절거려 보기로 한다.
.
산경표나 고지도에 나타나고 있는 주화산 또는 주줄산은 지금의 운장산을 말하는 것으로.....
일명"(?)줄((?)崒" 또는"주이(珠耳)로 두 개의 지명을 합하여 "주줄"이란 지명이 탄생한 것으로 보여지며
고지도상에 나타나는 "주화산"이란 지명은 "華"는" 崒"자의 오기로 보여진다.
(?)는 판독하기 어려워 여기에 쓰지는 못 하지만 (?다음에 닭酉를 쓰고 험할줄(崒)자를 쓴 것으로 보아
닭벼슬처럼 험한 산세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삼봉특추줄(三峯特崷崒) 정약용의 한시 "族父吏部公山莊賦得庭前怪石")에
나오는 한 구절로 보아 (?)은 崷로 해석될 것 같은데.. 굳이 뜻 풀이를 해 보자면 "유난히 뾰죽하고
험한(崒)산"정도가 될 것이다)
운장산의 또 다른 지명은 "구절산"이었으나 율곡"이이"와 친구지간이었던 "송구봉"이란 사람이
임금을 알현할 때 눈에서 나는 광채를 본 임금이 진노하여 구절산에 유배를 보내니 구절산의 오성대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송구봉의 호인 운장에서 비롯 되어 오늘날의 "운장산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하 생략하고
주화산 또는 주줄산에 대한 문헌과 지도 등을 통해 지형을 살펴보기로 한다.
1.문헌에 나오는 주줄산과 주화산의 내용을 살펴보면 주화산에 대한 내용은 별반 재미없어 없는 것 같아 여기에 쓰는것은 접기로 하고...
주줄산에 대한 내용은 왕실자료에 많이 나타나므로 요약 해 보면 다음과 같다
19세기경으로 추정되는 "왕실의정치 동전고"의 기록을 살펴보면 전주의 기린봉을 시작으로 주줄산에 대한 위치를알려주고 있으며....
北有麒麟峯一脉至府西北爲乾止山
馬耳一脉西南行北抽爲金溝毋岳西南抽爲淳昌
復興山井邑內莊山長城笠巖山蘆嶺又南爲錦城
山羅州府○自笠巖東抽爲秋月山廣德山東南爲
無等山南至長興天冠山西北廻爲靈巖月出山南
止於萬德尾黃等山東北廻爲松廣鷄足等山○自
熊峙北抽石山一脉逆走爲九峯山珠崒山雲梯山
炭峴梨峙爲大芚山入忠淸界背錦水廻爲鷄龍山
鷄龍一支西下大斷爲板峙起而北峙爲月城山公
州府○月城一支西南抽爲扶餘扶蘇山百濟故都
-참고문헌:왕실의 정치 "동전고"의 본문에서 발췌함-
"산천편"에서는 동서남북으로 표기한 거리를 보여주고 있다.
飛鳳山自佛明山來爲縣主脈珠崒山自鎭安馬耳山來在縣東五十里王師峯自珠
崒山來在縣東五十里大芚山自王師峯來在縣東五十里雲梯山自佛明山來在縣東五十里
南川其源一出珠萃山一出礪山文珠山合流縣南入于全州地橫津龍溪川源出炭峴入公淸道恩津
江鏡浦玉溪川源出全州地柏峙合流龍溪川入于江鏡浦佛明山自王師峯來在縣東三十里
-왕실자료"읍지류 산천"에서-
따라서"동전고"와 "산천편"의 거리표를 "산경표"에서는 복합적으로 사용하여 요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그 밖에 문헌은 사료에 의한 것이므로 여기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2.고지도에는 "주줄산"이나 주화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것은 시대 별 지도마다 지명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동여도18책4열에서는 "주줄산"으로 표기하고 있고
동여도(동국지도수정본)에서는 "주화산"으로 "대동여지도"등에서는 주줄산으로 표기하고 있어 잠시 헷 갈리게 하지만
여러종류의 지도를 비교 해 보면 같은 곳의 지명(현재의 운장산)임을 알 수 있다.
먼저
규장각소유 고지도를 살펴보자
동여도18책4열
규장각이 소유하고 있는 "동여도"로 주줄산으로 표기하고 있으며 3정맥의 산줄기 이음이 뚜렷하다.
청록산 못 미쳐 3정맥의 분기점이 묘한 감흥을 불러오게 한다.
건은치는 전주와 진안을 이어주는 26번 국도가 지나고 있는 목마휴게소가 있는 보룡고개 또는 막은대미고개를
이른 듯 하고 웅치는 구도로인 곰치 또는 곰티재라 불리던 곳의 옛 이름이다.
동여도(동국지도수정본)
규장각소유 지도로 동국지도 수정본인 "동여도"로 주화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 지도에서 보면 더욱 산세하게 3정맥에 대해 기록 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대동여지도에는 주줄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위 지도에 표기 된 구봉산은 성치지맥(참조:박성태님의 신상경표)상 성치산의 오기로 보인다.
지도상 구봉산은 성치산이며 이 산줄기는 금산으로 이어 져 월영산과 갈기봉은 낳는다)
참고: 성치지맥 성치산에서 분기되어 봉화산과 용강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 용담현이 있었지만 ...
현재는 용담댐 수몰로 인하여 용간산은 串이 되었다....
동역도
정상기의 《동국지도》수정본 계통의 하나로서 전라도가 그려 져 있으며,
뒷 면에 湖南이란 지도 이름이 적혀 있다. 일반군현은 노란색 큰 원으로, 수영과 병영이 설치된 곳은
노란색 큰 사각형으로, 군사기지인 진보와 종6품의 察訪이 파견되어 많은 속역을 관장하던
찰방역및 종6품의 監牧官이 파견된 牧所는 노란색 작은 원으로 구별되어 있다.
감영이 일반군현과 다른 기호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으나 본 지도에는 전라도의 감영인 전주가
일반군현보다 조금 크게 표현되었을 뿐이다. 진보와 군현의 경우 읍성이 있는 곳은 성곽 표시를 하여
구분해 주었다. 군현을 비롯하여 중요 지점에 十을 비롯하여 세로로 그어진 선의 수가 다른 문자가
자주 적혀 있다.
十은 십리, 卄은 이십리와 같이 세로의 선이 늘어날 수록 십리 단위의 증가를 의미하며,
도로로 연결된 앞뒤 지점 사이의 거리다.
원본 계통에서 큰 섬으로 그려졌던 順天 남쪽 左水營 서남쪽의 白也串이 본 지도에서는
串(현대의 半島)으로 교정되어 있고, 작은 白也島가 추가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지리지나 그림지도 계통에는 백야곶과 백야도의 정보가 본 지도처럼 나오는 것이 대부분이며,
현대 지도의 입장에서 보아도 사실에 가깝다. 이외의 수정본 계통에서도 이 오류가 사실에 가깝게 수정되는데, 본 지도와 거의 비슷하게 그려져 있는 것은
1770년(영조 46)에 신경준 주도로 제작된 지도 계통이다.
정후조의 〈해주신본〉 계통도 백야곶이 곶으로, 백야도가 작은 섬으로 그려지지만 백야도의 위치가
사실과 많이 어긋나 있다. 제주도의 旌義 서쪽에 호수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원본 계통과 거의 유사한 것이다.
이곳에 이 정도의 크기로 그려질 수 있는 호수는 없는데, 다른 수정본 계통에서 호수나 만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과 대조적이다.
서남쪽 바다에는 大黑山·紅衣(현재의 홍도)·可佳(현재의 소흑산도) 등의 섬이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可佳(島)를 제외하면 실제보다 훨씬 남쪽에 그려져 있다. 수정본 계통 중 이들 섬의 위치가 가장
사실에 가까운 것은 1770년에 신경준 주도로 제작된 지도 계통이다. (이기봉)
-규장각고지도에 나타나 있는 해석문을 옮겨적음-
-내가 보는 고지도-
㉠은 서울대 규장각소유 고지도로서 이기붕님의 해제보기를 옮겨 적은 것이고..
㉡은 지명보기에서 인용한 것으로 珠崷山의 위치를 가리키고 있다.
㉢은 珠(?)山이나 (?)은 판독불가,
㉣은 珠華山을 가리키고 있다.
그 밖에
주줄산으로 표기 된 지도로는
1.좌해지도 전라도편 2.지승 3.팔도분도 호남지 등이 있으며 4.대동여지도
5.대동방여지도 등이 있고, 주화산으로 표기된 지도로는 1.동해도8책4면 2.비변사印방안지도
3.해동지도 용암현과 진안현 등이 있다.
다른지도들은
살펴 볼 시간이 없었으나 살펴 본들..
대등소이할 것이라 판단하여 포기하기로 하였다.
이와 같이 살펴본 결과 주화산과 주줄산(주줄산의 주화산의 오기로 보인다)은 같은 곳이며
현재의 "운장산"으로 보인다.
운장산으로 보는 것은 해동지도 진안현과 용담현의 지도를 보면 주줄산 아래 그려 져 있는 내원암과
숭암사를 근거로 하는 것이고 주줄산 주변에 운일암반일암이 나타나는 것을 토대로 추측한 것이며 숭암사는 현재의 천황사이다.
3.산경표
1~㉠의 주화산과 2~㉡의 주줄산의 표기,㉢의"(?)줄"과 "주이" 3의 금남정맥(호남정맥의 오기로 보임)부분과 표제의 호남정맥 누락 등은 더 연구되어
보다 옳바른 산경표가 나오기를 기대 해 본다
위는
조선광문회 영인본에서 발췌한 것으로 금.호남정맥87쪽과 금남정맥88쪽.호남정맥92쪽을 풀어 쓴 것이다.
한 가지 재미 있는 것은 호남정맥은 제목에서 누락시키고 금남정맥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고의적 실수인지?는 알 수 없는 편집자의 마음 일 뿐이고....
산경표에서는 마이산을 장안산에서 이어 져 오는 금남호남정맥의 끝으로 보았고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마이산에서 3정맥분기점으로 이어지는 중복되는 산줄기를 무시하고 주줄산을
3정맥의 분기점으로 나타 낸 것은 시대적으로 저자의 고심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왜?냐고~~ 금호남과 금남길 걷다보면 호남은 자연적으로....나침판 보면 알아...)
다만, 한 가지...
산경표나 고지도에서 진안의 진산인 부귀산을 정맥길에서 누락시켜 놓은 것이 아쉬운데
이것은 고을의 안위를 위한 군사적 배려였던 것으로 보인다.
(왜? 그런거 있잖여! 북악산이 수 백년만에 입산해제 됐다고..)
여기까지가 지난 일년 동안 고서와 고지도 사이를 넘나들며 주화산 또는 주줄산에 대해
미친 놈처럼 씨름한 결과이다
4. 답사들에 의해 밝혀진 3정맥분기점에 대한 문제점
3정맥을 답사한 분들의 글과 의견을 종합 해 보면 한결같이 분기점에 대한 애매모호한 지명 때문에 어리둥절 한다.
그 것은 아래에 설명하는 내용 때문이기는 하지만 누구를 탓하고 하자는 것은 아니나 좀 더 신중한 판단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 나온다.
산경표가 발견되고 그것을 연구하였던 분들의 노고는 새삼 논할 필요가 없을만큼 위대한 업적이지만
짧은 시간에 역사적인 기록과 고지도를 판독 해 내는데 한계가 있었을 것으로 보아 적지않은 부분에서
오기가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해결해야 한 숙제이므로 3정맥을 선답하고 문헌과 고지도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 해
보다 정확한 결론이 내려지기를 기대 해 보는 마음으로 아래와 같이 개인의 의견을 피력 해 보고자 한다.
5. 3정맥의 분기점의 정확한 지명에 대해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이냐?이다.
어떤 이는 조약치에서 빌려 온 지명을 사용하여 "조약봉"이라 하고....
00문화원과 전주의 모 산악회에서는 주화산과 삼수봉인가? 뭔가 하는 괴상한 표지석을 3정맥 분기점에세워놓아 마치 주화산인마냥 답사자들을 현혹 시킨다
애향하는 마음과 산에대한 열정을 모를리 없지만, 머리에 "주화산"이라 해 놓고 중머리에 (주화산.삼수봉), 하단에 해발568m라 써 놓고 부제에 화살표까지 그려놓은 것은 좋아 보이나 어째 억지춘향으로
보인다.
선비체면에 욕할 수는 없지만 모든 이들이 공감하지 않는다면 하루빨리 철거되어야 할 것이다.
사견임을 전제로 나의 견해를 조심스럽게 밝혀보고자 한다..
아래는 랜덤하우스 50.000/1 지도이다.
상세도를 보면 분기점은 조약치에서 50여미터 밖에 안 되는 지점에 있는 무명봉이다.
조약치에서 동북방향으로 조약골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약치는 국토지리원에 고시된
확실한 지명으로 본다.
또 한
조약치 동쪽방향은 부귀산으로 이어지는 정맥이며 조약치와 연결되어 있는 새봉(전에 산불감시초소가
있었으나 현재는 철거 되었음)과 연결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조약치에서 분기점까지 50여미터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도 없는 분기점에 지명을 붙이자는 것인데....
분기점이라 하여 지명도 없는 무명봉에다 이름표를 붙여줘~~?
더~더욱 억지이다...
그래서 나의 주장은 이렇다.
조약치에서 50여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3정맥분기점에다 또 다른 지명을 붙이느니 현재 불려지고 있는 "조약치"를 사용하여
그냥 "조약치분기점"이라 하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우리는 어떤문제를 해결할 때 너무 어렵게 풀어가는 경향이 있다.
민족의 성격상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고 복잡한 세상을 더욱 더 복잡하게 만들어 놓으면 후손들이 힘들어할 것이다.
만약! 원칙론자가 아니라면 쉽게 생각 해 보자.
아래에 그려놓은 이정표처럼..
교통표지판에서 힌트 얻고 파워포인트에서 배워가지고 그리는데 일 주일 걸렸다.
왜냐구? 누가 묻지도 않을 것이지만....
도표그리는 것 배울려구 뾰삽~그림판에 갔었는데 어려워서 배우기 힘들었는데 우연히 발견한 파워포인트가 내가 배우기는 제일 좋더라~~
어쨋든....
정맥길 이해하는데...
참! 쉽지요~~잉?
더 쉽게 설명하자면 정상이 암릉이라 오를 수 없어서 2~30m정도 우회나 좌회 했다고 생각하면 편한기라...
산경표를 작성한 저자나 고지도를 그리는 환쟁이도 그 점을 염두에 두고 그렸을 뿐!
마이산에서 주화산이 곧 바로 나타나고~~
웅치가 바로 나타나는 것을 풀어내지 못 하는 후배들은 없을 것 이라 판단했을거여~~
랜덤하우스 50.000/1
힘들면 조약치임도 따라서 진행 해요~
정맥길 돌아가는 곳이 한 두군데 던가!!
세봉과 분기점 안부에 조약치가 있다.
이것은 개인적인 소견임을 전제로 한 것이지만,
山. 嶺.峴.峙 등의 산 이름 체계를 모방하여 조약치를 "嶺"로 보았기 때문에 해 본 소리이니!
확대해석은 없기 바람.
더 이상 언급은 머리 아프니까 여기서 접기로 하지만 3정맥의 분기점은 주화산이나 주줄산이 아니라는
것! 만은 확실하게 말 하고자 함이다.
참!
주화산이나 혹은 주줄산이라 고지도에 표기되어 있는 곳은 현재의 연선산에서 운장산을 비롯하여
장군봉까지 망라한 것 인지도 몰라요..
지리산이나 덕유산 등은 산군을 형성하는 전체의 봉우리를 포함시켜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는데....
3정맥의 분기점도 그러한 의미에서 주줄산에 포함시키고 마이산을 분기점으로 내 세웠는지도 모를 일이라..
어쨌든 개인의 소견임으로 정답은 각자의 마음이다..
여기까지 읽어 오시느라 수고들 하셨으니 아래에 보너스 그림 두 장 선물로 드린다.
규작각에서 소유하고 있는 용담현과 진안현의 고지도로 내용과 함께 옮겨 적은 것이다.
지도사용을 허락 해 주신 서울대 규장각에 감사드리면서...
용담현지도 龍潭縣地圖,
용담현은 지금의 전북 진안군 용담면, 주천면, 동향면, 안천면, 정천면 일대에 해당한다.
읍치는 용담면 옥거리에 있었다. 최근 용담댐의 건설로 많은 부분이 수몰된 지역이기도 하다.
평지가 적은 산간 지대에 위치한 궁벽진 고을로 지도에도 회화식 기법을 활용하여 산의
입체감을 부각시켜 표현하였다.
남쪽의 珠?山은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이 분기하는 산으로 이 산에서 북쪽 계룡산까지 이어지는 산줄기가
금남정맥이 된다. 서남쪽의 九峯山은 지명에 어울리게 아홉 봉우리를 그린 점이 이채롭다.
동북쪽의 城峙에는 石棧이 있는데, 고려 때 왜적이 고을을 침략하자 현령 皮元亮이 廉君利, 高允德 등과 함께
현의 남쪽에 울타리를 세워 돌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여섯 곳에 돌을 쌓아 놓고서 왜적이 쳐들어오는 것을
기다려 돌을 떨어뜨려 적을 분쇄하고자 하였다.
이에 적이 방비가 튼튼함을 알고 물러갔다고 한다. 고을의 一西面에 있는 하천은 朱子川이고 一南面에 있는
하천은 程子川이다. 이외도 顔子川이 더 있어서 이를 三川이라 했고 이들을 모신 三川書院도 있었다.
朱子川가에 있는 臥龍巖과 半日岩 등은 뛰어난 경치로 이름난 곳이다.
특히 반일암에는 험준한 절벽 사이로 난 棧道도 그려져 있다.
치 남쪽의 天皇山에는 崇岩寺가 그려져 있다. 현재 남아 있는 天皇寺가 바로 이 절인데,
신라 헌강왕 때 道人 無染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주: 현재는 용담댐으로 인하여 용담현이 수몰되어 지형판단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진안현지도 鎭安縣地圖
진안현은 지금의 전북 진안군 진안읍, 상전면, 부귀면, 마령면, 성수면, 백운면에 해당하고
읍치는 진안읍 군상리 일대에 있었다. 백두대간과 금남정맥의 사이 고지대에 위치한 산간 고을로
북쪽은 금강 수계, 남쪽은 섬진강 수계에 해당한다.
지도는 산지가 많은 고을의 특성을 회화식 기법을 가미하여 표현하였다. 鎭山인 富貴山이 위치한 서쪽을
지도의 상단으로 배치하였다. 특히 이 지역의 명산으로 손꼽는 馬耳山의 모습이 독특하다.
馬耳山(685m)은 마치 말의 두 귀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역암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모습으로 인해 일찍부터 주목되었던 산이다. 신라에서도 西多山이라 하여
小祠를 지냈고, 고려에서도 그대로 행해졌다. 1413년(태종 13) 태종이 남행하여 산 아래에 이르러
제사를 드리고 그 모양이 말의 귀와 같다하여 馬耳山이란 이름을 내렸다.
이 산에는 신라 헌덕왕 6년(681) 慧鑑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金堂寺가 그려져 있고
修行屈, 華嚴屈, 鳳頭屈 등의 모습도 이채롭다. 읍치의 북쪽 上道面에는 태조 이성계가 황산대첩 후
이곳을 지날 때 석공을 시켜 길을 뚫게 했던 銘峴이 표시되어 있다. 읍치의 남쪽 마령면은
靈縣이 있던 곳으로 섬진강 상류 유역권에 해당하는 곳이다 .
주:부귀산의 진안현의 진산으로 중요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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