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과는 다른 강원도 막장의 비밀, 은퇴 귀촌인의 쉽지 않은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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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개한 목련 아래에서 텃밭을 고르는 노부부. 나이 들어서도 흙일을 하는 게 건강에도, 부부 사이에도 좋다.
산골에 정착한 지 1년이 넘어가면서 일상의 흐름이 자리를 잡았다. 일이 없으면 만들어서 하고, 일이 있으면 두려워하거나 서두르지 않는다. 오전에는 대체로 밭일을 하고, 오후에는 집 주변 계절별로 해야 할 일을 진행한다. 봄에는 나무를 심거나 가지를 잘라주고 무너진 축대 등을 보수하며, 여름에는 비에 대비해서 수로를 정비하고 풀을 베는 일이다.
남은 시간에는 여가 활동을 한다. 자전거로 공작산 고개를 넘어갔다가 오거나, 춥거나 일기가 좋지 않은 날에는 방에서 평로라(제자리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발판)를 타는 게 중요한 일과다. 일주일에 한 번은 자전거로 홍천 읍내에 나가 필요한 생필품을 사온다. 앞으로 새로 집을 지으면 구들을 놓고 화목으로 난방을 해야 하니 조금 더 부지런해져야 할 것이다.
4월에는 막장이 들어 있는 장독 30여 개를 햇빛이 잘 드는 반대편 밭으로 옮겼다. 처음에는 엄두가 나지 않아 중장비의 힘을 빌릴까 생각하다가 직접 해보기로 했다. 먼저 수레가 지나다닐 만하게 길을 내고 장독 놓을 자리를 고른 후 받침대를 설치했다. 그리고 빈 독 하나를 가져다 놨다. 이후로 양동이에 막장을 퍼 담아 나르고 다시 빈 독을 옮기는 방법을 반복했다.
근육이 긴장하고 꾀가 나면 손을 놓고 도랑 옆으로 외롭게 올라간 버드나무를 바라보며 시 한 수를 읊어봤다. 복자기 단풍나무는 초록빛을 숨긴 연노랑 꽃이 만개해 사방에서 벌이 몰려온다. 헌 잎을 떨어뜨리고 새 잎을 내기 시작한 낙엽송은 숲에 널어놓은 누님의 치마처럼 색이 따뜻하고 다정했다. 그러다가 힘이 올라오면 다시 일을 시작하기를 열흘 동안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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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재료들을 버무리는 과정. 생각보다 상당한 인내와 힘을 요하는 일이다.
일이란 그런 것이었다. 장독을 모두 옮긴 날에는 큰 일교차로 오후에 굉장히 센 바람이 불었는데 능선을 따라 이어진 잣나무가 파도처럼 누웠다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오후에 자전거로 도착한 공작산 고개에서 마주친 노을은 더 붉고 선명하게 보였다. 그렇게 보인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날만 유독 노을이 선명했던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일이 끝난 후 건강한 육체와 긍정적 마음 안에서 일어난 관점의 변화일 뿐이었다.
“옛날에는 산에 나무가 어디 있었나? 그러니 산에 가면 사방에 나물이었지.”
공작산 고개를 오르기 전 굽은 등을 추스르며 밭일을 하는 노인을 만났다. 겨울을 버티고 올라온 마늘밭을 정리하던 노인은 내가 산나물 많이 나는 곳을 물어보자 건너편 산을 가리켰다. 원래 산나물을 많이 뜯으려면 묘 주변이나 불이 난 자리를 가보라는 말이 있다. 오전에 햇빛이 잘 들고 큰 나무가 없는 자리에 고사리나 취나물 종류와 같은 산나물이 많다는 뜻이다.
‘입춘에 들나물이 올라오고 입하 전에는 산나물 뜯으러 가세. 토광에 볕들어도 쥐들만 들락거리네. 에야! 님 없어는 살 수 있어도 사흘을 굶으면 살기 힘들어라, 에이야!’
양식이 떨어져 가니 뭐라도 먹을거리를 얻기 위해 산으로 올라간 누님이나 어머니가 손바람을 내면서 산나물을 뜯다가 허리를 펴고 부르던 노래였다. 이렇게 뜯은 나물은 데쳐서 바로 먹거나 아니면 삶아서 말렸다가 겨울에 먹기도 했는데, 이렇게 말린 나물을 묵나물이라고 불렀다. 어려서 나물에 질린 탓인지 지금도 들나물이든 산나물이든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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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밥을 짓고 엿기름으로 식혜를
만드는 과정. 숙련된 과정이 필요하다.
막 담그는 장이지만 2년은 숙성해야
지난주에는 성산 방앗간에 가서 막장을 담기 위해 잘 말린 메주를 빻았다. 막장은 강원도 사람들이 주로 먹던 장으로 강원도를 제외한 타지방에서 먹는 일반적인 된장과는 담는 방식이 다르다. 물론 맛도 틀리다. 나는 충청도에서 나고 자랐기에 메주를 만들고 띄우면 일정 기간 소금물에 넣었다가 꺼내 메주는 된장으로 그리고 소금물은 간장으로 만들어 먹었다. 그런데 강원도에서는 일단 메주를 소금물에 담그는 것까지는 똑같다. 그러나 기간이 지나 메주를 꺼내면 간장만 놔두고 건져낸 메주는 먹지 않고 가축에게 준다. 그리고 먹을 된장은 따로 담았는데 그것이 막장이다.
막장을 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띄운 메주를 가루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보릿가루로 찐 떡이나 보리밥을 준비한다. 다음은 고춧가루인데 서리가 오고 말라서 빛이 바랜 고추들을 버리지 않고 따서 말린 후 방앗간에 가서 빻아온다. 강원도 사람들은 밭에서 거둔 곡식이나 채소들은 허투루 버리지 않고 먹거리에 사용했다. 그리고 고추씨를 분쇄한 고추씨 가루도 필수 재료이다.
이렇게 기본 재료가 준비되면 겉보리를 물에 담가 싹이 약간 나왔을 때 말려서 빻은 엿기름가루를 미지근한 물에 넣고 걸러낸 후 마치 식혜를 만들 듯 아궁이에 불을 조금씩 때면서 끓이지 않고 데우기만 한다. 하루를 재우면 삭아서 엿기름물이 되는데 어머니들이 만들던 식혜라고 생각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메줏가루와 보리밥, 고춧가루, 고추씨로 만든 가루, 그리고 소금을 넣고 잘 섞은 후 최종적으로 엿기름물을 붓고 질척하게 비벼 항아리에 넣어 보관한다. 이것이 막장이다. 막장의 맛은 잘 띄운 메주가 좌우하며, 다음은 이 모든 재료를 얼마나 정성껏 배합하고 간을 맞추느냐에 달려 있다.
사실 도광터에 와서 막장을 만드는 동안 여러 번의 실패가 있었다. 얼마나 애가 탔으면 주변 동네는 물론이고 멀리 서석이나 봉평, 속초까지 가서 막장 잘 담근다는 분들을 만나 비법을 배웠다. 특이하게도 만나는 분들 모두 담는 방법이나 재료의 배합비율이 달랐다. 된장과는 다르게 막장은 일정 지역이나 마을을 중심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오는 독특한 방법이 있었으며 그것이 굳어진 탓이었다. 막장은 말 그대로 막 담아서 바로 먹기 시작한다는 장이지만 적어도 담근 후 2년은 지나야 제대로 된 막장 맛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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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이 잘 드는 곳으로 항아리를 모두 옮기는 데 열흘이 걸렸다. 복사꽃이 피어 봄 분위기를 더해주었다.
강원도 기후에서만 제대로 된 맛 나와
막장이 강원도 이외의 지역으로 퍼져나간 데는 화전민들 역할이 컸다. 특히 강원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양평, 가평, 그리고 제천 지역에도 막장을 담가 먹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정부의 화전 금지정책에 따라 보상금을 받고 산에서 내려온 화전민들은 대부분 강원도 내에 정착했으나 일부는 도계를 넘어 경기도나 충청북도 지역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거기서도 막장을 담가 먹으면서 퍼지게 된 것이다.
“어죽이나 매운탕을 끓이면 꼭 우리 집으로 막장을 달라고 오는 거야!”
“무슨 이유가 있는 겁니까?”
“막장이 민물고기의 비린내를 없애 주고 맛을 구수하게 만들거든.”
예전에 경기도 용문에 항아리를 사러 갔다가 우연히 이주한 화전민과 얘기를 나누던 중 들은 얘기다. 요즈음이야 미디어의 발달로 어느 지역 누구의 특별한 요리라든지 아니면 어떤 지방에만 있는 음식도 방송에 노출되기만 하면 삽시간에 전국구가 되고 따라서 어느 지역을 가도 그 음식이나 먹거리를 만나게 된다. 강원도와 경기 북동부 산간지역의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메밀 막국수도 그 예가 될 것이다. 하지만 막장은 좀 다르다. 강원도의 기후 조건에서 강원도에서 소출되는 밭곡식으로 만들고 숙성시켜야만 그 맛이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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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막장을 옮기고 있다.
“한 60년 전인가? 저 너머 골짜구니에 살던 사람이 한겨울에 눈이 여기 무르팍까지 빠지는데 마을에 내려왔어요. 세상에 그 추운 엄동에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더니 불씨가 꺼져서 왔다고 해서 우리 집에서 불씨를 줬지. 불씨가 없으면 밥을 해먹을 수 있나?”
“불씨는 어떻게 보관했습니까?”
“화로 깊이 불씨를 넣고 위에다가는 돌짜구로 눌러서 보관했지.”
마을 도로가에 나무를 심으러 나갔다가 이 동네 노인에게서 들은 얘기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옛날 시골 어머니들 생각이 났다. 정말 시절이 빨리도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산골에 살다 보면 아궁이에 혹은 석유 등잔에 불을 댕길 때는 당성냥이라고 해서 성냥을 사용했다. 그런데 매번 불을 붙이다 보면 성냥골이 금방 소모되고 조금만 누져도 불이 붙지 않으니 밤새 불씨를 보관했다가 그걸 아궁이에 넣고 나무에 불을 붙였다. 화로에서 꺼낸 불씨와 나무를 아궁이에 넣고 재와 연기를 뒤집어쓴 채 공기를 불어 넣으시던 어머니 생각이 아직도 또렷하다.
꿈이 현실감을 상실하고 꿈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그 꿈이 말 그대로 꿈으로 끝나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에 이로움을 주는 꿈이거나 아니면 자신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단련시키고 좀 더 행복한 삶을 찾기 위한 꿈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 그것을 실천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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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담과 앵두꽃. 농부들은 깨진
기와 한 장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담을 쌓는 데 사용했다.
청춘과 중년의 대부분을 잘 설계된 시간표대로 직장생활을 한 사람이 일터에서 나오면 처음에는 시간적인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무질서한 듯 보이는 일상에서 혼란을 느끼기 시작한다. 규칙에서 해방되면 일시적으로 자유와 행복을 느끼지만 오랜 기간 규칙에 익숙해져 있고 동화되어 오히려 자유가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불편해진다.
다시 그 규칙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특히 막연한 기대감이나 상상만으로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아니면 현실 도피로 부화뇌동해 시골에 땅 장만하고 내려온 사람들에게 시간은 절대 관대하지 않다. 잘 지은 집은 점점 조금씩 퇴락하기 시작하고, 깨끗하게 정리했던 주변 화원이나 텃밭은 차츰 묵정밭으로 변한다. 직장생활을 할 때와는 다르게 산골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스스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근자에 연못에서 개구리 소리가 뜸하기에 올라가 봤더니 물속에는 알에서 나온 산개구리 올챙이와 도롱뇽 새끼들이 바글바글했다. 한 달간 연못에서 소리 지르며 짝짓기하고 알을 낳더니 새끼들이 부화하자 바로 자리를 떴다. 대를 이어주는 의무를 다한 뒤 다시 자기들의 생활 터전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제 남아 있는 올챙이들은 천적의 위험과 맞서며 자신들 힘으로 성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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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빛이 만연한 시골길을 달리는 아내. 히말라야, 아프리카, 유럽, 남미 등 세계 곳곳을 아내와 함께 자전거로 여행하였기에 라이딩에 익숙하다.
'본 기사는 월간산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사진 이남석 자전거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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