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의 세계
3월의 봄은 치열하다. 맛의 전투가 끊이지 않는다. 경쟁하듯 향기를 뿜어내고, 엉키고 흩어지며 천 가지의 맛을 낸다. 봄나물이다. 봄나물 중에서도 취가 차지하는 비중은 단연 돋보인다.
취의 종류는 예상외로 많다. 생김새며 맛도 천차만별이다. 채취지역도 다르다. 그러나 ‘나물 취’ 만큼은 예외다. 한반도 전역에 걸쳐 자생한다. 산위에 오르면 손쉽게 만날 수 있다.
이른 봄, 양지바른 언덕에서 만나는 미역취는 속칭 ‘칼 끝 나물’로 불린다. 생명력이 강하고 번식률도 높아 산기슭이나 언덕, 산길 가장자리에 무리지어 자란다. 흔하고 일찍 자라기 때문에 가장 먼저 밥상위에 오르는 나물. 미역취는 이른 봄에 시작, 나물 철이 끝나는 6월 중순까지 채취가 가능하다. 버들잎 같은 잎이 양쪽으로 갈라져 식별하기도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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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가 원산지인 울릉 취는 전국적인 명물이 된 산나물이다. 뱃길을 타고 제주로 건너간 울릉 취는 상품성도 뛰어나다. 산에서 들로 나온 대표적인 나물. 울릉 취는 제주를 거쳐 전남 고흥군에서도 집단 재배되고 있다.
시골장터에서 만나는 취는 대부분 ‘나물 취’다.
나물 취는 암나물 취와 수나물 취로 구분된다. 암나물 취는 줄기가 없고 뿌리에서 2~3개의 잎이 자란다. 수나물 취는 곧게 뻗은 줄기에 잎이 어긋난다.
▶곰취와 병풍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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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물의 여왕 곰취. 곰취는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로 국내 전역에서 자란다. 잎 모양이 말발굽과 비슷해 마제엽(馬蹄葉)으로 불리기도 한다. 맛과 효능이 뛰어나 집단 재배하기도 하지만 깊은 산에서 채취한 것이 최고다. 곰취의 가장 큰 쓰임새는 나물. 날로 먹거나 묵나물로 먹는다. 최근엔 간장 또는 된장을 사용, 장아찌로 만든 상품이 나올 정도로 활용법이 다양하다. 약재로서의 가치도 높다.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기침과 통증을 멈추며 담을 삭이는데 유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의나물과 혼동하기 쉬워 주의해야 한다.
병풍취는 산사람들에게 최고의 나물로 불린다. 곰취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맛과 향이 뛰어나며 다 자란 병풍취의 잎은 직경 30㎝가 넘는다. 깊은 산에 무리지어 자란다.
▶당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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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귀의 어린순은 나물로 먹고 뿌리는 약재로 사용한다. 피를 생성하거나 보하는데 효능이 커 혈에 관련된 부인병 질환에 두루 쓰이고 있다.
학술적으로 당귀는 산형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로 정의되며 잎과 뿌리를 모두 유용하게 사용한다. 향이 독특해 목욕할 때 쓰기도 한다. 8∼9월에 자주색 또는 흰색 꽃이 피며 암당귀와 수당귀로 구분한다. 어린 순은 쌈으로 먹거나 나물로 먹는다. 뿌리나 순을 차로 달여 마시거나 술을 담그기도 하고 말린 뿌리를 가루로 내어 다식을 만들기도 했다.
▶원추리
원추리는 봄과 함께 온다.
이른 봄, 언 땅을 녹이며 뾰족한 잎 새를 내미는 어린순은 하루가 다르게 잎을 키운다. 어린 순은 끓는 물에 데쳐 나물로 먹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국거리 또는 김치재료로 사용하기도 한다. 원추리는 뿌리와 잎 꽃 등 어느 부위도 버릴 것이 없다. 뿌리는 녹말로 만들어 먹기도 했는데 구황식물로 요긴하게 사용됐다. 꽃잎을 우려내 차를 만들거나 쌈으로 먹기도 한다. 요리문화가 발달된 중국에서는 말린 꽃을 황화채 또는 침채라고 하여 귀중한 요리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약초로서의 기능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근심을 잊게 하는 ‘망우초’ 답게 신경질환 계통에 주로 많이 사용된다. 우울증을 치료하거나 해독제로 사용되기도 한다.
▶다래순
다래순은 일반화 된 나물이다. 그러나 약초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한방에서는 다래순에 위암과 식도암 유방암 간염 관절염을 치료하는 성분이 있다고 말한다. 다래순은 초봄에 싹이 올라올 때 딴다. 가지에서 5∼10㎝ 가량 자랐을 때가 채취 적기이다.
어린 순을 끓는 물에 데쳐 우려낸 뒤 곧바로 무쳐먹기도 하지만 떫은 맛 때문에 묵나물로 먹는 것이 좋다. 대량 채취가 가능하며 섬유질과 칼슘 비타민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곤드레 밥
별미로 먹는 산채 나물 밥. 산채에 식이섬유와 비타민, 칼슘, 단백질이 풍부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나물밥이 웰빙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정선을 중심으로 알음알음 입소문을 탄 곤드레밥은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큰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곤드레밥집도 늘어나는 추세다.
곤레밥은 말린 곤드레를 물에 불렸다가 들기름에 볶은 뒤 쌀과 함께 지은 것으로 향과 맛이 뛰어난 것이 특징. 곤드레로 만든 전과 된장찌개 등도 일품이다. 고등어 등 생선 조림을 할 때 무청 대신 넣기도 한다. 곤드레는 나물취와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잎에 윤기가 있고 줄기에 솜털이 있다. 강원도 정선지역을 중심으로 폭넓게 자생하고 있다.
▶강원도의 산채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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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산채밥상은 질펀하다. 요리법도 다양하다. 무치고 볶고 조려내는 기법도 탁월하다. 한 가지 산채로 다양한 맛을 내는 것도 일품. 백두대간을 따라 형성된 인제 양구 평창 정선 등에서 다양한 산채를 즐길 수 있다. 산채의 종류도 다양하다. 계절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어디에서건 일곱 가지 이상의 산채는 늘 만날 수 있다.
곤드레와 고비 고사리 참취 누룩치 다래순 얼레지 망초 산마늘 두릅 엄나무 순 등은 건채(묵나물)로 만날 수 있고 이를 재료로 한 나물밥과 전 등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병풍취와 우산나물 단풍취 박쥐나물 등 생소한 이름의 나물도 강원도 산채밥상에선 어렵지 않게 만난다. 강원도의 산채밥상은 풍성하다 못해 신비롭다.
산야초는 무엇보다도 혈액 정화능력이 뛰어나다. 풍부한 비타민과 미네랄, 섬유소가 장을 비롯한 내장의 기능을 활발하게 하고 신진대사를 왕성하게 하여 피를 깨끗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산야초는 대부분 이뇨와 통경 성분을 지니고 있으며 해독, 소염, 강장, 해열, 진통 등 마치 만병통치약과도 같은 효능을 발휘하는데, 이는 산야초가 함유하고 있는 다양한 영양소가 복합적인 상호작용에 의하여 효과를 발휘하는 때문으로 보인다.
민간요법에서 각종 임상실험과 체험을 통해 항암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산야초만 해도 100여 가지 이상이 되는데, 자주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바위옷, 번행초, 돌나물, 닭의장풀, 짚신나물, 쇠뜨기, 꿀풀, 뱀딸기, 까마중, 쇠비름, 수염가래꽃, 예덕나무, 화살나무, 구지뽕나무, 상황버벗, 영지버섯, 운지버섯, 송이버섯, 표고버섯, 느타리버섯, 소루장이, 달래, 냉이, 쑥, 곰취, 미역취, 개미취, 참취, 머위, 느릅나무뿌리껍질, 겨우살이, 산죽, 천문동, 으름덩굴, 가시오가피, 석창포, 와송, 광나무, 마름열매, 일엽초, 백화사설초, 어성초, 삼백초, 노나무, 차전자, 석위초, 구기자, 오미자, 산수유,
산야초에는 뿌리의 삼투압작용과 잎의 광합성 작용을 통해 흡수한 대지의 생명력과 태양에너지가 그대로 농축되어 있다. 산야초가 좋은 이유, 산야초가 건강을 유지하게 해주고 회복 시켜주는데 큰 힘을 발휘하는 원천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산야초를 대할 때 어떤 산야초가 어떤 병에 효과가 있다는 식으로 산야초를 약의 개념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산야초가 치병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풍부하고 다양한 영양소와 섬유질이 복합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체력을 보강함으로써 자연치유력이 강화된 결과이지, 산야초가 가지고 있는 어떤 성분이 약성을 발휘함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함승시 교수가 이끄는 강원대 식품생명공학부는 산야초의 약리적 효능에 관한 연구발표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나는 각종 산야초가 강한 항암효과가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함교수팀은 국산 산나물 21가지의 즙으로 발암물질인 Trp-p-1, B(a)P, 2-AF 등의 활성억제 효과를 실험한 결과 취나물을 비롯한 냉이, 곰취, 씀바귀, 잔대순, 쇠비름, 개미취, 민들레, 질경이 등 10 종류는 이들 발암물질의 활성률을 80% 이상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으니 참으로 놀랍지 않는가?
하잘 것 없어 보여 천대하던 풀과 나무들이 과연 그런가 하고 의아해 하지 않는가? 이외에도 이들은 이번 실험을 통해 고들빼기, 방가지똥, 부추, 솔거지, 무릇, 개비름, 원추리, 참나물, 달래, 솜대 등도 상당한 항암효과가 있음을 밝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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