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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세상이야기

매월당 김시습

by 사니조은 2012. 4. 20.

본관 강릉(江陵). 자 열경(悅卿). 호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청한자(淸寒子)·벽산(碧山). 법호 설잠(雪岑). 시호 청간(淸簡).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이다.

 

서울 성균관 부근에 있던 사저(私邸)에서 부친 일성의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신동·신재(神才)로 이름이 높았다.

3세 때 보리를 맷돌에 가는 것을 보고

비는 아니 오는데 천둥소리 어디서 나는가, 누른 구름 조각조각 사방으로 흩어지네(無雨雷聲何處動 黃雲片片四方分)라는 시를 읊었다 하며,

 5세 때 이 소식을 들은 세종에게 불려가 총애를 받았다.

 

15세 되던 해에 어머니를 여의고 외가에 몸을 의탁했으나,

 3년이 채 못 되어 외숙모도 별세하여 다시 상경했을 때는 아버지도 중병을 앓고 있었다.

 

이러한 가정적 역경 속에서 훈련원 도정(都正) 남효례(南孝禮)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나

그의 앞길은 순탄하지 못하였다.

 

이어 삼각산 중흥사(重興寺)에서 공부하다가

수양대군이 단종을 내몰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하여, 책을 태워버리고 중이 되어 이름을 설잠이라 하고

전국으로 방랑의 길을 떠났다.

 

북으로 안시향령(安市香嶺), 동으로 금강산과 오대산, 남으로 다도해(多島海)에 이르기까지 9년간을 방랑하면서

《탕유관서록(宕遊關西錄)》 《탕유관동록(宕遊關東錄)》 《탕유호남록(宕遊湖南錄)》 등을 정리하여 그 후지(後志)를 썼다.

 

1463(세조 9) 효령대군(孝寧大君)의 권유로

잠시 세조의 불경언해(佛經諺解) 사업을 도와 내불당(內佛堂)에서 교정 일을 보았으나

1465(세조 11) 다시 경주 남산에 금오산실(金鰲山室)을 짓고 입산하였다.

 

2년 후 효령대군의 청으로 잠깐 원각사(圓覺寺) 낙성회에 참가한 일이 있으나

 누차 세조의 소명(召命)을 받고도 거절, 금오산실에서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었고,

《산거백영(山居百詠)(1468)을 썼다.

 

이곳에서 67년을 보낸 후 다시 상경하여 성동(城東)에서 농사를 지으며 《산거백영 후지》(1476)를 썼다.

1481(성종 12)에 환속(還俗), 안씨(安氏)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러나 1483년 다시 서울을 등지고 방랑의 길을 나섰다가 충남 부여(扶餘)의 무량사(無量寺)에서 죽었다.

 

그는 끝까지 절개를 지켰고, ·(儒佛) 정신을 아울러 포섭한 사상과 탁월한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하였다.

1782(정조 6) 이조판서에 추증, 영월(寧越)의 육신사(六臣祠)에 배향(配享)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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