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36차
<미시령~상봉~신선봉~진부령>
○ 2019.11.9(토)
○ 양산박님과 함께
○ 18km(?)/10시간 55분
<신선봉 가기 전 암봉에서>
<신선봉에서>
0605 진부령
0731 이정표(마산 1.8km,진부령 4km) / 알프스스키장 건물
0843 삼거리 / 이정표(마산봉 30m / 병풍바위 1.0km / 알프스 리조트 1.9km)
0845~0900 마산봉
0916 삼거리(좌 암봉 새이령 / 우 병풍바위) / 노랑색 안내 팻말
0926~0950 병풍바위
0957 삼거리(좌 마산봉 / 우 새이령,암봉) / 노랑색 안내 팻말
1058 암봉1 / 준.희님 팻말(889)
1113 암봉2
1132 새이령/돌탑/ 대간령 이정표 / 새이령 안내문
1206 헬기장 / 삼각점(설악415 2007재설)
1420 신선봉
1443 화엄재 (좌 화암사 / 직진 상봉)
1609 첫번째 출금 안내문
1646 두번째 출금 안내문
1700 샘치골교 / 산행종료
산행기>>>>>>>>>>>>>>>>>>>>>>>>>>>>>>>>>>>>>>>>>>>>>>>>>>>>>>>>>>>>>>>>>>>>>>
백두대간 시작을 2006.3.25 이화령~하늘재 구간을 시작해서 오늘 그 끝맺음을 나는 것이니 무려 13년 7개월이 넘었다.
올해 9정맥도 끝맺음을 할 예정이다.
미시령 단속을 피해 깜깜한 밤에 도망치 듯이 끝맺음을 하기가 싫어 1+9를 마무리할 때 마지막으로 갈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올해 백두대간 졸업을 앞 둔 양산박님이 같이 가자고 한다.
전일 10시쯤 잠실에서 만나 양산박님 차로 출발,설악휴게소에서 차박+아침 식사를 한 후 진부령에 새벽 6시에 도착한다.
6시가 되어도 깜깜하다.
기온은 영하 1도.
들머리가 어디인 지 잠시 해맨다.
진부령 미술관 옆 군부대 초소에 사병이 우리의 행동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듯하다.
미술관을 좌측에 두고 도로 따라 내려가니 진부령 졸업 사진 찍는 표지석이 보이고
그 표지석 옆 우측 도로따라 올라간다.
올라가자 마자 바로 좌측에 산 속으로 들어오라고 표지기가 보인다.
진부령 마지막은 마을 길을 빙빙 둘러 가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포장된 도로가 반시계 방향으로 돌라가고 산속으로 잠시 들어가 지름길처럼 가로 질러 올라가는 것이다.
다사 도로따라 올라간다.
그러다 좌측 어느 곳에 또 올라가야 하는 지점을 놓쳐 도로 따라 올라가다 좌측 적당한 곳에서 올라간다.
올라가니 또렷한 길이 나오고 잠시 더 가니 마을이 나타난다.
앞에 향로봉이 보이기에 알바 의심이 들기도 했다.
이정표 있는 곳에서 우틀해서 마을 도로따라 지나간다.
이 길들이 산자분수령을 따른 백두대간의 길인 지 의구심이 들 정도,,,
더구나 학교를 지나 우측에 저수지 같은 물웅덩이도 보이고,,,
좀 더 가니 흉물스럽게 방치된 건물과 스키장 시설물들이 보인다.
진부령의 전경
좌측 미술관 옆에 진부령 공원(?)이 있고
들머리는 좀 더 도로따라 앞으로가 내려가면 도로 우측에 커다란 진부령 표지석있다.
그 우측의 도로따라 올라가면 된다.
고성군에서 운영하는 진부령미술관은 동해의 수려한 경관이 한눈에 보이는 진부령(529m) 정상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미술관이다. 지난 2000년 고성읍 출장사무소 건물을 개조해 진부령문화스튜디오로 개관하였고, 2005년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4개 전시관을 갖춘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미술관 옆에 있는 표지석
이것은 도로 기준으로 볼 때 향로봉 쪽에 있는 것
이 표지석은 도로 기준으로 볼 때 마산봉 쪽에 있는 것
이 표지석 우측의 도로 따라 올라간다.
진부령.강원도 인제군 북면과 고성군 간성읍 사이에 있는 고개.높이는 520m이다.
칠절봉(七節峯 1,172m)과 마산(馬山 1,052m)을 연결하는 산줄기의 낮은 부분으로 간성읍 흘3리에 위치한 고개이다. 관동지방과 영서지방을 이어주는 주요 교통로로서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과 인제군 북면을 직접 연결한다. 추가령(楸哥嶺) · 대관령(大關嶺)과 함께 3대 영(嶺)에 속한다. 『여지도서』 간성군 관액조에 "군의 서쪽 45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를 비롯한 조선 시대의 고지도에는 간성과 인제가 경계를 이루는 산줄기에 묘사되어 있다. 진부령은 진벗령, 조장(朝場), 그리고 조장이 변음된 조쟁이 등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진부'의 유래는 찾아보기 힘들다. 고개 길이는 약 60㎞ 정도로 1981년 국도로 승격되었다. 진부령의 이름을 딴 진부리(陳富里)가 영하취락을 이루고 있다. 고개 남쪽의 마산과 이어지는 곳에는 이 지역의 유리한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조성된 알프스 스키장이 있다. 이곳은 진부령 스키장이라고도 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스키장인데 많은 적설량으로 유명하다.
마을이 나타나고
좌측에 향로봉도 보인다.(사진에는 안보인다)
작은 봉 두개 사이의 가운데 움푹 들어간 곳에서 우틀
마을도로따라 마을로 진입
여기서 우틀해서 마을도로따라
이 길이 대간길인가 의구심이 들기도 하고
학교 뒤로 가야 하는데 앞으로 지나간다.
웬 물웅덩이???
백두대간을 시작한 2006년
그 해에 중단되었다고 한다.
30년간 운영했으면 먹을만큼은 먹었을텐데 쓰레기만 남겨두고,,,
여기까지 이 세밀도가 정밀하게 그려진 것임을 알게 되었다.
마산봉 올라가는 길은 이미 가을도 가고 을시년스런 겨울 초의 모습이다.
마산봉을 올라가면서 마산봉에서의 전망은 기대하지를 않았다.
몇 개의 전위봉을 둔 마산봉을 낑낑대고 올라가니 마산봉 정상 가기 전 이정표에서 우측으로 가야 병풍방위라고 알려준다.
이정표 근처에 배낭을 두고 마산봉 정상으로 올라가니 깜짝쇼가 벌어진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전경이 펼져지고 있었다.
저 멀리 금강산도 또렷이 보인다.
설악산 대청과 중청도 보이고,,,
그리고 그 우측의 저 뾰죽봉은???그래 맞다.서북 능선의 귀때기청아닌가.
그 우측으로 안산도 보이고.
전경을 한참 즐기고 다시 출발.
그 다음 목적지 병풍바위의 정상은 가지 않아도 된다.
병풍바위 정상을 가지 않고 좌측으로 우회하는 길도 있지만 우리는 병풍바위로 올라간다.
정상에 가서 가지 않았으면 얼마나 후회를 했을까?
예상대로 전망이 좋다.
마산봉에서의 전망도 좋지만 이 곳 병풍바위의 전망도 너무 좋다.
더구나 털진달래의 꽃봉우리기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한 겨울을 앞둔 이 시기,이곳에서 털진달래 군락이라니,,,
소담하게 이쁜 진달래꽃이 칙칙한 겨울 산을 덥힌다.
병풍바위에서 신선봉과 상봉을 바라본다.
신선봉까지 가는 길은 멀어보인다.
신선봉에서 상봉은 바로 지척이고,,,
마산봉-병풍바위-대간령(큰새이령)-신선봉-화엄재-상봉,,,그리고 미시령,,,
오늘 차를 가지고 왔기에 천천히 즐기며 진행한다.
작은 돌탑과 이정표 등이 있는 대간령,,,
잠시 쉼을 하고 출금을 넘어 신선봉으로 올라간다.
신선봉 가는 길의 암봉들,,,제법 바위타는 재미가 좋다.
좋은 전망도 즐기고,,,
시간을 물쓰듯 하며 천천히 진행~~~
바위봉이 있으면 무조건 올라가 전망을 즐긴다.
점점 시야가 터지는 듯한 분위기,파란 하늘과 흰구름,,,
헬기장을 지나 너덜 상단 끝,신선봉 정상에 올라 전망을 즐기고 있는데 동쪽에서 몰려온 안개로 점점 시야를 가린다.
좀 있으면 걷히겠지,,,
그러나 점점 더 걷힐 분위기가 아니다.
화엄재로 내려가면서 화엄재에서 좌측 화엄사 방향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나 홀로 갔으면 아마도 상봉을 거쳐 미시령으로 내려 갔을 것이다.
상봉에 가 봐야 안개로 볼 것도 없고 미시령 단속도 피하고 화암사 근처의 단풍도 즐기자는 제안,,,
화암사 가는 길,,,상당히 먼 느낌,,,
가파르고 길도 있는 듯 없는 듯 이어지고,,,
계곡도 만날 듯하다 또 헤어지고,,,
화암사 올라가는 도로 만나기 직전의 계곡 근처 가기 전의 화려한 단풍,,,
올해 가장 단풍다운 단풍으로 기억할 것 같다.
여기서 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잔대
여기가 마산봉 직전의 삼거리
병풍바위는 우틀해야 하고 마산봉으로 갈려면 직진.
마산봉에서
마산봉에서 바라 본 금강산
미시령을 기준으로 금강산과 설악권이 구분하는 것은 어떤 근거인 지???
마산봉에서 바라본 대청과 중청
우측 서북능선의 궤때기청봉
좌측 가리봉도 살짝보이고 가운데 뾰죽한 안산도 보이고
가운데 좌측 대암산인 듯
병풍바위 삼거리
우측 병풍바위로
병풍바위 정상에서
안산과 용대리
좌 귀청 / 우 가리봉
병풍바위에서 바라 본 북쪽 방향
병풍바위에서 바라 본 마산봉
가야 할 신선봉과 상봉
대청-중청-귀청-안산
털진달래 군락지
다시 향로봉과 금강산 방향
병풍바위 삼거리 2
새이령(대간령)가는 길에
889봉에서 준.희님 팻말 수선 후,,,
얼마 전 홀대모 주관 하에 기념행사를 가졌었다.
신선봉과 상봉
지나온 병풍바위의 모습
좌 병풍바위 / 우 마산봉
가야 할 길
암릉 전시장
가운데 솟아 있는 운봉산
마산,병풍바위와 신선봉의 안부인 새이령(대간령)
새이령이란 남쪽의 미시령과 북쪽의 진부령 사이에 있는 고갯마루라는 뜻이란다.
대간령은 그 사이(간)의 큰 고개(대)을 한자화한 명칭
다시 출금을 넘어
삼각점이 있는 헬기장
팥배나무
점점 날이 맑아지나 보다 했는데
향로봉,,,우측의 금강산은 구름에 가려 안보인다.
그냥 사진으로 감상~~~
신선봉가는 길,,,
바위타는 맛도 있고
지나 온 길들
같은 곳이라도 시각에 따라 달라져 다른 맛을 자아낸다.
신선봉
신선봉 헬기장
동해에서 마산봉 방향으로 가로 놓인 임도길이 보인다.
동해 쪽에서 구름이 몰려온다.
가야 할 상봉
신선봉에서
작품 활동에 열중인 양산박님
대간 졸업 동기생이네요.ㅎㅎ
구름이 상봉을 덮어버리고,,,
화엄재
화암사 쪽으로 내려가면서 단풍 구경하기로 하고 내려간다.
온갖 풍상을 겪은 나무들이 많다.
슬슬 단풍이 보이기 시작~~~
첫번째 출입금지
두번째 출입금지~~~
가운데 화암사가 보이고
금강산화암사禾巖寺
벼가 나오는 바위의 전설(?)이 있는 절,설악동 신흥사 말사라고 한다.
여기서 산행 마치는 걸루 하고,,,맘씨 고운 여자분의 도움으로 델피노로 가서
택시타고 차 회수하고~~~
화암사[ 禾巖寺 ]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이다. 769년(혜공왕 5)진표(眞表)가 창건하여 이름을 금강산 화엄사(華嚴寺)라고 하였다.
사적기에 의하면, 당시 금강산으로 들어온 진표는 금강산의 동쪽에 발연사(鉢淵寺)를, 서쪽에 장안사(長安寺)를, 남쪽에 이 절을 각각 창건했는데, 화엄사라고 한 까닭은 이곳에서 《화엄경》을 강하여 많은 중생을 제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화엄경》을 배운 제자 100명 가운데 31명은 어느 날 하늘로 올라갔으며, 나머지 69인은 무상대도(無上大道)를 깨달았다고 한다. 또 진표는 이 곳에서 지장보살을 친견하고 그 자리에 지장암(地藏庵)을 창건하여 이 절의 부속 암자로 삼았다고 한다.
그 뒤 941년(태조 24)월영암(月影庵)을 창건했으며, 1401년(태종 1)지장암을 동쪽으로 옮기고 미타암(彌陀庵)으로 이름을 바꿨다. 1623년(인조 1) 불에 타자 1625년 중건하였다. 1628년에는 광명(廣明)이 지장보살상을 조성했으며, 안양암(安養庵)을 창건하였다. 그러나 1635년 산불이 일어나 다시 불탔다. 이에 동쪽 20리 지점으로 임시 이전했다가 1644년(인조 22)에야 옛터에 중건하였다.1662년(현종 3)에도 화재가 있어 중건하였고, 1716년(숙종 42)에는 산적들이 불태워 버렸다. 이듬해 승려들은 동쪽으로 10리 가량 떨어진 무릉도(武陵島)에 초옥을 짓고 거주하다가, 1721년(경종 1) 옛 절터로 돌아와 중건하였으며, 해성(海城)은 안양암을 중수하였다.
1760년(영조 36) 대웅전과 향각(香閣), 승당이 불 타자 승려들이 협력하여 이듬해 승당을 세웠고, 1762년에 대웅전과 향각을 중건하였다.
1794년(정조 18)에는 화성 도한(華城 道閑)이 약사전에서 나라를 위한 기도를 주야 21일 동안 올렸는데, 기도가 끝나자 방광(放光)이 뻗쳐 그 빛이 궁궐의 뜰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이에 정조는 제조상궁(提調尙宮) 최(崔)씨를 이 절에 파견하여 도한을 궁궐로 데려 오도록 하여 경위를 듣고 크게 감격하여 이 절을 가순궁(嘉順宮)의 원당으로 삼았으며, 요사채 2동을 지어 주었다.그리고 1796년에는 미타암의 화응전(華應殿)을 정조의 원당으로 정하여 관음보살상과 정조의 친필 병풍 6폭, 연(輦)을 하사하고, 절의 사방금표(四方禁標)를 정해 주었다. 이로써 이 절은 창건 이래 가장 큰 사역(寺域)을 형성할 수 있었다.그러나 1860년(철종 11) 산불로 암자까지 모조리 소실했으며, 춘담(春潭)이 중심이 되어 중건에 착수하였다. 전국 여러 곳을 다니며 시주를 모으고 왕실의 도움을 받아 화엄사와 안양암을 중건했으며, 수봉(穗峰)은 탱화를 조성했다.
1864년(고종 1) 다시 산불로 소실하자 불타지 않은 승당에 임시 법당을 마련하고 지내다가 이 해 지장탱화와 신중탱화, 현왕탱화를 조성 봉안하였다.
그리고 화재를 면하고자 풍수지리에 입각해서 남쪽의 화기를 지닌 수암(秀巖)과 북쪽의 코끼리바위의 맥이 상충하는 자리를 피하여 100m 아래에 절을 짓기로 하였다.
1872년수봉이 새 터에 법당과 영각(影閣), 누각, 요사채를 중건했으며, 1882년(고종 19)자허(耔虛)와 선월(船月)이 철원 장구사(長久寺)에서 아미타여래좌상과 약사여래좌상을 모셔와 봉안하였다.1893년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안양암이 붕괴되었고, 1894년축성(竺星)이 중수했으며, 1909년영운(影雲)이 안양암에 칠성각을 건립하였다.
1912년에는 사찰령(寺刹令)에 따라 전국 31본산 중 건봉사(乾鳳寺)의 말사가 된 뒤부터 화암사라는 이름을 공식 명칭으로 사용했다. 1915년 9월 다시 불타서 1917년 중건하였다. 그러나 1950년 6.25 때 크게 파손되어 건물 1동만 남게 되었다.1953년 휴전 뒤에 건봉사 극락암에 있던 한 비구니가 정착하여 머물렀다. 1986년에는 주지로 부임한 양설(良說)이 중창하여 다시 큰 절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물로는 대웅전과 명부전, 삼성각, 인법당(因法堂), 금강루(金剛樓), 일주문, 미타암(彌陀庵), 요사채 등이 있다. 특별한 문화재는 없다.수암에 얽힌 설화가 전한다. 수암에는 구멍이 하나 있었는데, 끼니 때마다 그 구멍에 지팡이를 넣고 세 번 흔들면 2인분의 쌀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기를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욕심 많은 한 객승이 이를 보고 ‘3번 흔들어 2인분의 쌀이 나오면, 300번 흔들면 200인분의 쌀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팡이를 마구 흔들었다. 그러나 구멍에서는 피가 나왔고, 이후 쌀도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화암사 [禾巖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이번의 산행은 백두대간을 마무리했다는 의미가 있는 산행이다.
언제가는 가야 할 산행 코스였기에 살에 박힌 가시 뺀 느낌이다.
택시를 타고 진부령으로 가서 차를 회수해서 백담사 입구 황태해장국으로 한 잔하고 집으로~~~~
다음 사진들은 양산박님이 보내준 사진
여기가 두번째 암봉
새이령(대간령)
사니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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