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매년 오고 싶은 나라"
박경림(박): 먼저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그간 어떻게 지내셨어요?
히딩크(히): 러시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지내면서 경기와 팀 운영 하느라 바빴지. 1년 만에 한국에 오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감회가 새로운데?
박: 저는 감독님이 한국을 떠난 뒤 아들 민준이를 낳았어요. (휴대폰으로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며) 소식은 들으셨죠?
히: 그러게. 경림, 너는 아이를 낳은 뒤에 더 예뻐진 것 같아. 근데 최근 3년간 너무 외모가 극단적으로 변하고 있는 거 알고 있나? 2007년 결혼할 당시에는 가장 날씬해서 예쁘더니, 작년에 와서 얼굴 봤을 때는 임신 3개월이라 정말 많이 통통해졌었고. 지금은 다시 어찌된 까닭인지 살이 쏙 빠졌다. 지나가다 보면 얼굴을 잘 못 알아볼 정도로 매년 모습이 변하는 것 같아. 남편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사는 것 같다. 널 보니 기분이 좋다.
박: 전주 가시는 건 2001년 11월 국가대표팀의 세네갈 평가전 이후 처음이시죠?
히: 그렇지. 전주 가는 건 8년 만이야. 날씨가 너무 좋고, 또 히딩크 재단의 시각장애인용 축구장 4호 건립을 위해서 가는 것이라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지.
박: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축구 감독 중 한 명이 히딩크 감독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감독님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요?
히: 벌써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게 9년째인데 매년 오고 싶은 곳이 바로 한국이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아름답고 내겐 따뜻함이 배어있는 곳이야. 사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부터 이곳이 좋았던 건 아니었어. 문화적으로도 나와 너무 달랐고, 한국 사람들이 내가 일하는 방식에 적응하거나 받아들이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으니까.
나는 내가 일하는 방식이 국제적인 스탠다드를 지켰다고 생각하는데 또 그 차이가 적지 않더라고. 서로의 간격을 좁히는데 시간이 적지 않게 걸렸지. 각자 역할에서 열심히 하면서 문화적인 차이가 좁혀졌고, 그래서 좋은 결과도 난 것 같고. 일년에 한 두 번은 꼭 한국에 올 생각이야. 한국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좋아.
광명역 도착
▶ "인기? 그게 뭐 중요해? 순간을 즐겨"
박: 참 제가 감독님 옆에 있으면서 놀라는 것이 월드컵이 벌써 7년 전의 일인데 감독님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는 것 같거든요. 솔직히 한국에 올 때 인기가 식으면 어떻게 하나 이런 걱정은 해본 적 없으세요?
히: 글쎄, 나는 살면서 인기가 크게 중요하지 않았는데? 인기에 연연해서 살고 싶진 않아. 그저 내가 좋아하고 함께 지내고 싶은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면 되는 거지. 인기의 하락, 상승은 유명인으로선 언제든 있는 일이니까.
사람들과 함께 하고 뭔가 의미있는 것들을 함께 달성하고 이런 것들이 더 중요해. 한국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하고 고맙게 생각하지만, 인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아니야. 지금도 길거리를 지나가면 나와 사진찍고 싶어하고 손도 흔들어 주는 국민들을 보면 정말 감사하지.
박: 러시아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으로 계시는데 그곳에서도 이렇게 감독님을 좋아하나요?
히: 러시아 사람들 역시 축구 강국에서 감독을 영입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아. 2002년 월드컵 전 한국의 사정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나를 통한 성공에 대해서도 불확실하게 생각하고 있고. 내가 사람들에게 적이나 경쟁 상대가 아니라 같이 뭔가를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때부터 마음의 문을 여는 것 같아.
코치로서 파워를 악용하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면 적대감이 없어진다고나 할까. 한국 국민들이 더 정은 많은 것 같아. 또 우리가 과분했던 특별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고.
박: 한국 국민들의 반응과 어떻게 다른데요?
히: 리액션이 다르지. 한국 사람들은 상대방 얘기에 리액션이 훨씬 좋아. 적응도 빠르고. 또 어떻게 보면 호불호도 굉장히 분명하고.
박: 달변가로도 유명하시잖아요. 히딩크 감독님은 책을 많이 읽으세요?
히: 글쎄, 나는 독서를 좋아하긴 하는데 사람 사이에서는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경림이가 오늘 어려운 질문을 많이 하네.(머리를 긁적이며 웃음) 말을 잘하려면 다른 사람들의 요구나 원하는 바가 뭔지를 정확히 알아야되거든.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지. 그 사람의 진심을 잘 전해 들을 수 있어야 하고. 사람들이 나한테 말을 잘한다고 좋은 평가를 내려주는 사람도 있지만, 정해놓고 좋은 말들을 하는 것은 아니야. 그저 즉흥적으로 내 마음 속에 그때그때 드는 생각을 얘기하는 편이야.
천안 아산역
▶ "삼촌 No 오빠 Yes"
박: 오늘 이렇게 기차에 오붓하게 있으니까 삼촌이나 아빠 같은 느낌을 더 많이 받는데요. 앞으로 "히딩크 엉클"로 불러도 되나요?
히: (눈웃음 지으며) 삼촌은 무슨. 오빠(brother)로 부르는게 낫지. 농담이야.
박: 감독님의 명언 중 하나가 예전 독일 월드컵에서 호주 대표팀을 맡았을 때 일본을 꺾은 뒤 "한국의 명예 시민으로서 일본을 꺾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기억나세요?
히: 한국은 일본과 특수한 관계라는 걸 난 잘 알고 있지. 두 나라 사이의 특별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나온 얘기였고, 그렇게 화제가 될 줄은 사실 몰랐어. 그걸 원했던 것도 아니었고.
박: 나중에 혹시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러시아 대표팀 감독으로서 일본을 이긴다면 이같은 멋진 말씀을 해주실 건가요?
히: 글쎄, 그런 얘기가 떠오를 지는 모르겠는데. 하지만 꼭 이겨야겠지. 러시아 팀을 맡고 있지만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 예를 들면 코스타리카를 상대로 싸워도 이겨야 하고. 스포츠는 일단 이겨야 해. 물론 중요한 건 정당하게 이겨야하지. 만약 러시아가 한국을 상대로 싸운다 해도 나는 어떻게든 이기려고 노력할 거야. 경기에서 정정당당하게 치열하게 열심히 싸워서 이기는 것, 그게 바로 스포츠인으로서의 숙명이지.
박: 최근 한국이 월드컵 예선에 통과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히: 멀리서도 무척 기뻤지. 선수들도 잘 뛰었고 붉은 악마도 축구 대표팀을 잘 서포트 했어. 러시아 대표팀은 아직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는데 열심히 노력해서 티켓을 따내야지. 러시아 선수들은 노력을 많이 해야 돼.
당분간 러시아에 남는다
박: 만약 러시아 대표팀이 예선을 통과하게 되면 향후 한국과 평가전을 치를 의향이 있으세요?
히: 벌써 축구협회와 얘기중이야. 같은 그룹에 배정된다면 불가능하지만 다른 그룹에 속한다면 시도해볼까 해. 12월 이후에 날짜를 잡아서 한국과 러시아가 친선 경기를 가지면 한국에 또 올 수 있겠지.
박: 좀 껄그러운 질문이 될 수도 있는데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과 러시아가 붙는다면요?
히: 좋은 경기가 될 것 같은데?
박: 박지성 선수 얘기를 빼놓을 수가 없어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박지성 선수가 맨유에서 뛰면서 첼시 팀의 히딩크 감독과 경기를 붙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얘기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히: 음, 나도 기사를 본 적이 있어. 내가 지성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안 만났던 것이 좋았다고 했다면서? 우리가 만나서 뭔가 극적인 게임을 보여주길 원했던 팬들도 많았을 것 같은데.(웃음)
박: 첼시 팀을 맡고 나서 FA컵 우승까지 이끌었는데 월드컵 끝나면 첼시로 돌아갈 생각이 있으세요?
히: 아니. 나는 러시아에 당분간 계속 남아있을 계획이야.
박: 한국으로는 안 돌아오세요?
히: 이렇게 매년 오고 있잖아.(웃음) 물론 시합 때문에 오는 건 아니지만 나는 매년 한국에 돌아올 계획을 세우고 있어. 히딩크 재단을 만들고 시각장애인용 축구장을 건립한 것도 한국과 끊임없이 같이 일하고 싶어서지.
논산역
▶ 남북단일팀 감독 생각있다
박: 최근 허정무 감독이 "히딩크 감독 이후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들은 한국 축구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언급해 논란이 있었는데요. 이 얘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많은 축구팬들이 감독님이 다시 한국 대표팀을 맡기를 바라고 있잖아요.
히: 글쎄, 우선 허정무 감독의 얘기에 대해서는 난 동의하지 않아. 나 이후에 감독들이 대표팀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처음 내가 한국에 왔을 때는 16강에 드는 것이 목표였는데 그것보다 성적이 좋자 사람들이 나에 대한 평가를 좋게 내리기 시작했지.
사람에 대한 평가, (인기도 마찬가지고) 오르락 내리락이 있는 것이 정상이야. 성공을 했다가도 실패할 수 있고, 그게 일반적인 거지. 한국 축구대표팀은 지금 정상적인 경로에 있어. 축구 강국들도 게임에서 어처구니 없이 질 때가 많은데 뭘. 월드컵은 사람들의 관심이 너무 많은 경기니까 압박과 부담감이 클 수 밖에 없지.
박: 2004년 7월 CNN과의 인터뷰에서 "남북 단일팀이 만들어지면 한국을 다시 한번 맡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 생각은 변함 없으세요?
히: 오늘 조사 많이 해왔네.(웃음) 맞아. 나는 여전히 그럴 의향이 있고, 또 남북 관계에 대해서도 관심있게 보고 있어, 그런 상황이 주어진다면 내가 도움이 될수 있다면 언제든 다시 그런 일을 해볼 생각이야. 정치적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스포츠가 가능하게 만들 수 있거든.
박: 제가 마지막으로 객관식 질문을 준비했는데요. 다음의 4경기 중 감독님이 생각했을 때 가장 짜릿했던 경기 하나만 꼽아주시죠.
① 2002년 한·일 월드컵 한국:이탈리아 ② 2006년 독일 월드컵 호주:일본 ③ 유로2008 8강전에서 네덜란드:러시아 ④ 2009년 FA컵 첼시:에버턴
히: (2분간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한 끝에) 순위를 매기기가 정말 힘든데? 호주:일본 전도 짜릿하고 쾌감을 주는 경기였고, 한국과 이탈리아 전도 대단한 경기였어. 모두다 똑같이 중요하고 또 똑같이 흥분됐어. 그 당시에는 그 경기가 최고이고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던 것 같아.
익산역 도착
▶ 시각장애인 구장은 여친의 아이디어
박: 이번에 한국에 오신 것은 히딩크 재단 시각장애인용 축구장 3, 4호(수원·전주) 개장을 위해 방문하셨는데요.
히: 축구 감독으로서가 아니라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의미있는 인연을 맺을 수 있게 됐지. 어느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침대 위에서 엘리자베스가 일어나자 마자 그러는 거야. 한국을 위해서 뭔가 뜻깊은 일을 하자고. 일로만 왔다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랑을 준 한국 사람들을 어떤 방법으로든 돕고 싶다고 하더라고. 눈이 안 보이는 사람들도 공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전용 구장을 만들면 어떻겠냐고 아이디어를 내줬어. 그 말을 듣고 무릎을 쳤지. 그래서 4년 전부터 준비했고 벌써 4호가 개장됐어. 참, 뜻깊고 가슴 뿌듯한 일이야.
박: 노후에 한국에 살 계획은 없으세요?
히: 음 솔직한 답변을 하자면 한국은 노후에 세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살고 싶은 아름다운 나라 중 하나야. 아마 죽을 때까지 1년에 1~2번은 한국에 올 거야. 그리고 몇 개월 살다가 또 다른 곳으로 가겠지. 영원히는 아니고. 고향인 네덜란드에서 노후를 계속 보내고 싶은 생각은 없어.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곳에서 즐길 거야.
박: 감독님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히: 응. 나는 엘리자베스가 심심해 할 수도 있으니 이제 자리로 돌아가야겠다. 민준이 잘 키우고 다음에 더 예쁘고 행복한 모습 보여줘. 아기가 아빠를 닮아서 잘생겼던데?
이런이런. 히딩크 감독과의 만남에서 버라이어티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본능이 튀어나와 버렸다. 인터뷰 도중 갑자기 OX 퀴즈를 낸 것이다. 히딩크 감독은 답을 선택한 뒤 부연 설명까지 해주는 친절함을 보여줬다.
1 한국 감독일 때 언어 장벽 때문에 히딩크 감독을 피하는 선수가 있었다?
NO물론 영어 대화가 어려운 선수들도 많았지만 우리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많았다. 통역도 있었지만 바디랭귀지나 나만의 수신호로 선수들과 대화했다. 시간이 갈수록 선수들의 영어 실력도 늘었고, 나 역시 웬만한 한국어는 알아들을 수 있게 됐다.
2 히딩크는 박지성의 맨유 이적을 반대했다?
NO오히려 찬성했다. 지성이 맨체스터로 가고 싶어한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그를 돕고 있었다. 다만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가면 기량이나 컨디션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천천히 가길 바랬다. 만약 지성이 한국에서 다른 팀을 거치지 않고 맨유로 곧장 갔다면 엔트리 멤버가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요즘 펄펄 뛰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 기분이 좋다.
3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마친 뒤 히딩크는 한국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YES맞다. 나는 떠나고 싶지 않았다.
4 은퇴 후 한국에 살고 싶은 생각이 있다?
NO 왜 그런지 설명을 잘 들어야 한다. 한국에 살기 싫다는 뜻이 아니라 나는 한국 아닌 다른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노후를 보낼 계획이다. 러시아도 좋고 런던도 좋고, 또 고향인 암스테르담도 좋다. 여러 나라에서 아름다움을 즐기고 싶고 한국도 그런 후보지 중 하나다.
5 러시아 여자가 한국 여자보다 예쁘다?
YES러시아 여자의 미모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하지만 남자들은 모두 못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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